회사는 존속시키고 인재만 영입합니다
1/ 지난 8월 2일, 구글이 Character AI의 핵심 멤버들을 영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가 주목받은 이유는 창업자를 포함한 핵심 인력들을 영입하면서도 Character AI 법인 자체는 존속시키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2/ Character AI의 공동 창업자인 노암 샤지르와 다니엘 드 프레이타스는 전체 직원의 약 20%와 함께 구글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글은 이 과정에서 라이선스 비용으로 30억 달러를 지불한다고 합니다. 2023년 3월, Character AI는 Andreessen Horowitz의 주도로 1억 5천만 달러의 신규 자금을 유치했으며, 당시 기업가치는 10억 달러로 평가받았습니다. 불과 1년 반 만에 3배 가까운 기업 가치를 구글로부터 인정받은 셈입니다.
3/ 실리콘밸리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인수합병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AI 스타트업에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며 핵심 인력과 회사의 중요한 자산을 확보하되, 기존 회사 자체는 존속시키고 있습니다. 올해 3월 마이크로소프트는 Inflection에 6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며 무스타파 슬레이만 등 핵심 인력을 영입했습니다. 6월에는 아마존이 Adept에 3억 3천만 달러를 지불하며 핵심 인력을 흡수했습니다.
4/ 이러한 거래 구조는 규제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반독점법은 오랫동안 빅테크 기업들을 괴롭혀 온 문제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독점 이슈로 인해 블리자드 인수 발표 후 1년 10개월 만에 공식 합병을 완료했으며,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는 규제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어 약 10억 달러의 해지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8월 5일에는 미국 사법부가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5/ 미국 및 영국 규제 당국은 빅테크 기업들의 이러한 거래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Inflection 거래를 조사 중이며, 영국의 반독점 규제 당국은 아마존과 Anthropic 간의 투자 계약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6/ AI 스타트업들이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현상은 고무적이나, 문제는 남아 있는 회사들입니다. 창업자를 포함한 핵심 인력들이 빅테크로 흡수된 상황에서 Character AI, Inflection, Adept 같은 회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이러한 거래가 생태계 관점에서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7/ 한국에서도 이러한 계약 구조가 유행처럼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생 AI 스타트업들은 인재와 소프트웨어 코드가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라이선스 비용 지불을 통해 스타트업의 핵심 자산을 소유하고 핵심 인력을 영입하는 거래 구조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자회사의 숫자를 줄이라는 한국 규제 당국의 압박을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8/ 2024년 들어 촉망받던 AI 스타트업들이 대거 빅테크에 흡수되는 양상이 지속되자, 일부에서는 AI 거품론이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의 대세적인 시각이 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대형 조직을 떠나 새로운 창업에 나섰던 창업자들이 다시 대형 조직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러한 시각이 과장된 것만은 아닙니다.
9/ 분명한 것은 AI 기술이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아직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 모델은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빅테크는 AI 개발자들에게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피난처이자 동아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