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승자독식이 가져올 미래
중국 정부가 자국 1위 기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BYD가 5월 역대 최고 실적인 38만 2476대를 판매하자 중국 산업부는 “가격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공식 경고했습니다. 자국 기업의 성공을 막으려는 이 기묘한 상황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줍니다. 바로 승자의 저주 2.0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원래 경매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경쟁자를 이기려다 과도하게 입찰해 결국 손해를 보는 현상을 뜻합니다. 하지만 BYD가 보여주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한 기업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겠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새로운 현상입니다.
BYD의 파괴적 가격 정책은 위협적입니다. BYD는 지난 5월 22개 모델에 최대 34% 할인을 단행했습니다. 씨갈 모델은 2년 전 1067만 원에서 770만 원으로 무려 300만 원이나 떨어졌습니다. 배터리부터 리튬광산까지 수직통합으로 통제하는 BYD는 협력업체에 10% 추가 가격 인하까지 요구하며 기존 경쟁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BYD의 가격 파괴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전기차 대중화를 앞당기고 소비자에게 합리적 가격의 친환경차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성과가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해친다는 점입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을 살펴보면 115개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실제 수익을 내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구체적 수치로 드러납니다. 중국 상장기업의 25%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5년 전의 두 배에 달합니다. 창청자동차 회장 웨이젠쥔이 “자동차계의 헝다가 존재한다”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BYD 혼자 질주하면서 다른 업체들이 고사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혁신 동력의 상실입니다. 가격 경쟁에 매몰된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며 장기 경쟁력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무한 가격 경쟁이 R&D 투자를 저해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시장 점유율을 위해 미래의 혁신 역량을 담보로 잡히는 전형적인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충격파는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7개월 연속 출하량 감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술 선도 기업조차 BYD의 가격 공세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더욱 복잡합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BYD 식 가격 경쟁에 뛰어들지 프리미엄 차별화 전략을 고수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BYD 아토 3가 국내 출시 첫 달 수입 전기차 판매 1위(543대)를 기록한 현실이 이런 선택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에 말려들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차별화에 실패하면 시장을 내줘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유럽의 대응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중국 전기차에 최대 48% 관세를 부과했고 미국도 25% 관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과 BMW 같은 전통 강자들마저 중국 시장 일부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의 기업 전략이 전 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경제 블록화를 가속화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승자의 저주 2.0 현상은 정부와 기업에게 현실적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키우려 하지만 동시에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중국이 BYD를 견제하듯 말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합니다. 당장 실적을 위해 가격을 깎으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5년 후에도 같은 전략이 통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BYD 현상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21세기는 독주하는 순간 생태계가 무너지고 결국 자신도 추락하는 시대입니다. 중국 정부가 자국 1위 기업을 제재하는 역설은 이런 깨달음에서 나왔습니다. 진정한 승자는 경쟁자와 함께 파이를 키우는 자입니다. 기술력이나 가격 경쟁력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지혜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