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마트 기기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편이라서 내 첫 스마트 기기가 아이팟 터치였는지, 스마트폰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소한 스마트 기기라는 자각을 갖고 사용한 것은 아이팟 터치였다. 이걸 산 것은 어떤 마트에서였던 것 같다. 대뜸 사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주셨다. 그렇게 아이팟 터치를 처음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큰 화면에 얇고 가벼운 기기가 놀라웠다. 그때까지 썼던 것들은 아이리버 E10, E100, 2G폰 정도였다. 아무리 큰 화면을 강조한 핸드폰이라도 아이팟 터치보다 작았다. 큰 화면을 가진 전자기기라면 pmp, 전자사전, psp 정도였으니 그 사이즈와 무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버의 자그마한 화면에 애니, 소설을 넣어서 보다가 아이팟 터치를 손에 쥐니 기술의 발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서는 어느샌가부터 이런 기술의 발전은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아이폰 6S도 iOS 15로 올라가는 마당에 조금 더 빠르고 느리고, 카메라가 하나 더 달리고 안 달리고의 차이다. 아이패드로 4k 영상 편집을 하며 랜더링 속도를 재면서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한다’는 말을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2G 폰으로 mp3 음악을 듣고, 전자기기로 영상을 즐기고, 버튼이 전혀 없는 터치스크린 전자기기(pda 같은 느리고, 부정확하고, 어색한 ui를 가진 것 말고)를 사용하고. 단 십 년 내에 이 모든 변화를 따라잡으며 살아온 인간이 대단할 정도다. 이제는 잘 느끼기 어렵다. 모든 스마트폰이 마치 ‘자동차는 바퀴가 4개’라는 기본적인, 이데아적인 Bar 형태를 찾은 지금, 하드웨어적인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물론 실생활을 더 변화시킨 건 소프트웨어적인 진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팟 터치를 통해 처음 앱스토어에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와이파이존이 흔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학교 면학실에서 이걸로 아주 재밌게 놀았다.
당시 다운 받은 앱들이다. 내 앱스토어 첫 이용은 World War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어로 된 앱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을 하고, 구글 어스도 보고 했다. 구글 어스를 참 좋아했다. 사방이 막힌 숨막히는 공간에서 전세계 곳곳을 사진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와이파이 망이 워낙 후져서 느리긴 했지만. 그리고 뭐 게임도 있고 하다. Doodle Jump라는 게임을 즐겨 했다. 한 번씩 2G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했던 터라 네이버를 데스크탑 페이지 그대로 볼 수 있던 것에 놀라워했다. 그때 사용 방식은 주로 갖고 노는 것이었다.
하나 잊기 힘든 기억이 있다. 근방의 성범죄자를 지도상에서 볼 수 있는 앱이 있었다. 면학실에서 공부를 하다 이 앱을 다운 받아 주변에 있나 없나 보는데 뒤에서 감독 선생님이 왔다. 뭐하냐면서 내 아이팟을 가져갔다. 근데 뭔가 부끄러웠다. 공부는 안 하고 성범죄자가 주변에 있나 없나 살피고 있다니. 예의 없게도 나는 선생님에게서 아이팟을 휙 낚아챘다. 선생님은 많이 화를 내셨다. 그거 정말 예의 없는 행동이라며 혼을 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학생의 사생활 같은 게 없었던 시기답다고 생각한다. 면학실에서 공부 안 한 학생이 잘못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그 시기적인 생각이다. 공부를 하든 말든 학생이 알아서 하는 것 아닌가.
또 하나, 앱에 관한 기억.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앱이 있었다. 아마 GPS와 가속도계 같은 걸 이용하는 것 같았다. 당시 아이팟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화면에 아이팟을 가져다 대면 밤하늘에 별자리가 화면에 뜨는 방식이었다. 이걸 어머니와 같이 보려고 했는데 거의 뭐 제대로 작동을 안 해서 크게 실망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생각도 들었다.
CCTV앱도 많이 썼다. 무슨 불법 몰카가 아니고 길거리나 관광지, 해변, 산에 설치된 CCTV, 자기 식당이나 키우는 동물을 보기 위해 서버를 빌려 쓰는 앱이다. 그러니까 보라고 올려 놓는 CCTV를 봤다. 여러 앱을 썼는데 한국의 CCTV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외국의 사람들 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굉장히 즐겨 봤다. 그 비좁고 갑갑한 책상에서 외국의 장면을 볼 수 있다니. 공부할 때 틀어 놓고 한 번씩 보면서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아이패드로 한 번씩 유튜브 CCTV나 Walk around 영상을 보곤 한다. 가만히 앉아서 갈 수 없는 장소를 볼 수 있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카카오톡을 처음 썼던 때가 있다. 당시만 해도 데이터가 많이들 부족하고, 와이파이 망도 잘 없고, 스마트폰도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해서 모바일 메신저를 많이 쓰지 않았다. 카카오톡을 설치하고 쓰긴 했는데 할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카톡 외에도 여러 메신저가 있었다. 카톡이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를 하고, 여러 귀여운 이모티콘이 나오면서 대세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페이스북을 했다. 트위터도 했다. 또 펜팔 사이트를 아이팟으로 종종 이용했다. 외국 친구들이 쓰는 메신저 앱도 쓰고 했다. 그러다 아마,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아이팟을 등한시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으로도 다 되는데 굳이 아이팟 터치를 하나 더 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내 첫 스마트폰이 뭐였을까. 기억이 잘 안 난다. 시기를 보면 갤럭시U였던 것 같다. 그 다음 옵티머스 LTE도 썼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아니, 사실 어쩌면 스마트폰을 쓰면서 아이팟 터치를 하나 더 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하나 더 기억에 강력히 남은 것이 있다. 아이팟 터치를 쓰면서 해킹을 했다. 갤럭시는 루팅, 아이팟/아이폰은 해킹이었다. Jail break라고 해서 탈옥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탈옥해서 지금의 제어센터 같은 기능도 쓰고, 위젯도 썼다. 강력한 커스텀이 가능했다. 폰트나 시간 위치도 바꾸고, 여러 게임 같은 앱을 무료로 다운 받기도 했다. 제법 재밌는 일이었다. 요즘도 탈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굳이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할 만한 기능이 다 되고, 불편한 게 없다. … 잠시 떠올리려 했는데 정말 없다. 지금 아이폰으로도 충분히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팟 터치를 썼던 때는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기억이 거의 없는 고등학생 때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지금도 아이팟 터치는 잘 있다. 충전만 시키면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여전히 탈옥 상태고, 커스텀이 많이 되어 있다. 용량이 부족해서 앱 같은 거 대부분 지워 버리고 음악만 남아 있던 것 같다. 뭐 이제와서 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이팟 클래식이야 그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지만 아이팟 터치는 굳이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사용했고, 추억이 많이 담긴 물건이다. 그래서 남겨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