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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May 14. 2021

아이팟 셔플

역대급 편리함과 최악의 불편함

2017년경 아이팟 셔플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새 상품도 65000원밖에 하지 않은, 애플 기기 치고 굉장히 저렴한 제품이었습니다.

굉장히 작은 MP3 플레이어입니다. 손가락 마디 정도의 사이즈에 무게도 정말 동전 몇 개 든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아주 앙증맞은 외관입니다. 후면에는 클립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옷깃에 매달거나, 바지춤에 달고 다니면 정말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편리합니다.


용량 또한 앙증맞은데 2기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팟 클래식의 80기가와 비교하면 무려 40배입니다. 음원 파일이 10메가라고 보면 그래도 200곡 정도는 들어갑니다. 그 모든 곡을 아주 빠르게, 시원하게 들려주니 작지만 강한 아이팟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플 공식 표어가 ‘작은 마에스트로’입니다. 굉장히 귀여우면서 할 일은 충실히 잘 해내는, 작은 마에스트로 그 자체였습니다.


제 생각에 선 달린 mp3 플레이어로서는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상 생활은 물론, 운동을 할 때도 옷깃에 물려 놓으면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기를 보는 사람들은 단박에 눈치 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래 확인은 어떻게 하느냐, 버튼이 하나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그리고 상단부 컨트롤러를 좌우로 옮기면 끄거나, 셔플 재생하거나, 순서대로 반복 재생을 합니다. 작은 불빛으로 배터리 상태도 알려줍니다. 전면부 버튼으로는 볼륨 조절, 곡 넘김, 재생 정지를 할 수 있습니다. 버튼 잠금도 가능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심플 심플 하는데 이 정도 심플이 아니고서야 누가 심플을 논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정도 심플이 되면 미니멀리즘 한다고 집도 없이 노숙하는 꼴이 됩니다. 정말 불편합니다.


하지만 불편함에도 저는 꽤 오랫동안 즐겨 사용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간편함 뿐 아니라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감성’입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애플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이팟 셔플의 용도가 분명히 보였습니다.


용량이 작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팟 셔플은 그런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정성스레 음악 목록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 시기에 마음에 들어하는 곡을 엄선하여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그 곡들을 셔플 재생, 또는 반복 재생으로 듣는 것입니다. 약간의 부지런함이 필요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곡 사이에서 듣고 싶은 곡을 꾸역꾸역 찾아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엄선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가 아닌, 아이팟 자체가 엄선 플레이리스트의 현신인 것입니다. 쓰면서도 느끼는데 이 정도 되면 앱등이 중에서도 정신이 약간은 이상한 상앱등이 같아 보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맛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자그마한 기기를 들고 다니며 이어폰을 꽂아 들으면 기분이 묘합니다. 요만한 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신기하고, 쓰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엄선한 곡이기 때문에 굳이 목록에서 넘기거나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오는 대로 가릴 것 없이 쭉 들으면 됐습니다. 저야 그렇지만 보통은 디스플레이가 없는 것이 아주 큰 단점이겠습니다. 저의 눈은 이미 애플에 씌어버렸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게만 되었습니다.


외관 사진을 한 번 더 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폰 단자 구멍도 있고, 버튼도 있고, 클립도 있습니다. 그런데 충전은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아니어도 그렇다고 해주세요). 옛날 초기 엠피쓰리 플레이어들은 건전지를 쓰곤 했습니다. 그러다 전용 충전 단자가 달린 충전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micro 5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팟에는 그 무지막지한 30핀 단자가 보통이었습니다. 이 미니멀한 기기, 작고 여린 아이팟 셔플에는 그런 무시무시한 단자를 물릴 수가 없었나 봅니다.

바로 이런 케이블을 사용했습니다. USB A타입 to 3.5mm 단자 케이블입니다.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앙증맞은 아이팟은 앙증맞은 케이블로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블 자체의 길이도 아주 짧았습니다. 또 고속 충전 같은 게 안 됐습니다. 위에는 보조배터리에 끼워놨는데, 보조배터리의 저속충전 모드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권장 충전 방식은 컴퓨터, 노트북의 USB단자에 꽂아두는 것입니다. 그 작은 전류를 조금씩 빨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충전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2시간, 3시간은 걸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애플 스티커 한 장을 줍니다. 이조차도 앙증맞습니다.

이 나름의 감성을 즐기며, 근 1년 간 즐겁게 사용했습니다. 이전 아이팟 클래식 글에서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같이 들고 다니기 어려운 점이 불편해서 안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건 그런 단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온전히 아이팟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휴대에 전혀 불편함도 없었고, 디스플레이가 없는 것도 나름의 매력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결국 팔아 버렸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수리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던 이어폰

갤럭시 기어 아이콘X 2018입니다. 나오자마자 거의 바로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품 파는 곳이 잘 없어 삼성 디지털프라자 몇 곳에 전화를 돌리며 찾아 샀습니다. 당시 저는 갤럭시노트를 쓰고 있었습니다. 무선 이어폰을 하나 받아 쓰게 되었는데 이게 완전히 혁명적이었습니다. 브리츠 제품인데, 그 당시에는 무선 이어폰을 쓰던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배달/용달 일 하시는 분들의 블루투스 넥밴드, 이어폰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제 무선 이어폰은 하얀 색에 이어버드가 꽤 두터운 편이어서 보는 친구들이 보청기 같다, 요다 같다, 이상하다고들 했습니다. 그렇지만 꿋꿋이 썼습니다. 이유는 편해서였습니다. 선이 없는 것이 이렇게 편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성에서 무선 이어폰 신제품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신기능으로 무장한 제품이었습니다. 터치패드로 볼륨 조절, 곡 넘김까지 가능했고, 주변소리듣기 기능, 그리고 4기가의 내부 용량이 있어 자체 음원 재생이 가능했습니다. 아아, 아이팟셔플이 떠날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선이 없는 편안함을 한 번 맛보니 어디 다니면서 도저히 선이 있는 이어폰을 못 쓰겠는 겁니다. 특히 선에 옷이나 팔이 닿아 나는 슥슥 소리가 거슬렸습니다. 그리고 아이팟 셔플의 강력함인 휴대성도, 아예 음원 재생 기기 자체가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이어폰이 자체적으로 음악을 재생하는데 아이팟이 무슨 소용이냐 이겁니다. 이렇게 아이팟 셔플을 보냈습니다.


갤럭시 기어 아이콘 X 2018은 정말 좋지 못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수리 문제로 한 달을 애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쓰고 싶으니 남겨두겠습니다. 이외에도 제품 홍보에 운동 기능을 자랑했습니다. 런닝 코치도 되고, 운동 측정 기능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한 번 제대로 써보자며 삼성 헬스를 열심히 이용했습니다. 엉망이었습니다. 달리는 속도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고, 빨리 달려라, 천천히 달려라 하는 말이 거의 맞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간 측정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착이 있었고, 꽤 오래 썼습니다. 무엇보다 무선 이어폰의 맛을 보니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이폰11과 에어팟 프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피트니스 기능은 애플워치를 통하고 있습니다.


제게 아이팟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셔플 4세대입니다. 클래식도 있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셔플과 함께한 시간이 더 인상깊었습니다. 컬러풀 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말입니다. 어제 아이팟 클래식 배터리를 교체하긴 했지만 사실은 지금 저에게 더 적합한 기기는 아이팟 셔플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래를 수천 곡씩 넣어두고 일일이 듣는 것이야 아이폰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 굳이 엠피쓰리로 음악을 듣고자 할 때에는 엄선한 곡만 넣어두는 셔플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아이팟 클래식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일이 잘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물론 커버플로우의 ‘감성’은 또 놓칠 수 없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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