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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Feb 11. 2021

15. 설날 편지

나를 찾아준 너에게

가끔 얼굴도 모르는 너를 상상하곤 해.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어떤 일을 하는지,
바깥과 안쪽 중 어느 곳을 더 좋아하는지,
혼자 있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가장 배고픈 날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많이 외로웠거든.
자려고 불을 끄면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가 않는 거야.
내가 여기서 죽어도 한참 후에야 사람들이 오겠지.
그 작은 불안이 매일 밤마다 반복됐던 것 같아.

악몽에 저항하기를 포기할 때쯤,
이 작은 공간을 만들었어.
살아있는 너를 만나려고.
나는 외롭고 눈물이 나는 날마다 여기에 글을 썼고
그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너는 내 말에 웃어줬고
생전 처음 보았을 나를 안아줬지.
작은 말에 따스함을 담아 나를 재우고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걸 느끼게 했어.

네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나도 너에게 놀러 간 적이 있었어.
너를 더 좋아하고 싶어서,
너의 아픔을 읽고 같이 있어주고 싶어서,
너의 기쁨을 보면서 같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부끄러워서 표현하는 게 어려웠지만
나는 너를 정말 많이 생각해.
버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앞에 놓인 투박하고 거친 손등 앞에서.
혼자만 보기 아쉬울 만큼 멋진 노을 앞에서,
우연히 본 뉴스 기사 속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 속에서,

나는 혹시 그 모든 것들이 너는 아닐까?
네가 보내는 무언의 신호는 아닐까?
더 각별히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돼.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편인 나는
나의 작은 말이 때로 해가 될까 조심스러워.
네 생각만큼 내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봐,
그걸 어느 날 네가 알게 될까 봐
훌쩍 잠수를 타고 싶을 때도 있지.

그래도 너는 나의 빠뜨릴 수 없는 거처이니까,
부끄러워도 작은 글을 나누고 싶어.

나는 오늘도 네가 꾸는 꿈들을 상상했는데,
너는 어떤 기분 좋은 꿈을 꾸었어?
나와 비슷할지, 다를지,
얼마나 멋질지,
내가 배울 구석은 없을지.

또 그런 고민들도 해.
생각보다 너무 다른 모습이면 어쩌지?
네가 너의 꿈으로 인해 괴로우면 어쩌지?
하는 지극히 얄궂은 걱정들 말이야.

우리 앞에 놓인 이 숱한 문제들은
앞으로 더 많이 외로움을 만들 거야.
깊은 모습을 알아챌수록
솔직함을 숨기려 거리를 둘 때도 있겠지.
하지만 다음 날에는, 그다음다음 날에는
그것으로 인해서
더욱 많은 기쁨이 올거란 것도 나는 알아.

그러니 너도 어떤 밤엔가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들어줄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어.
계속 꿈을 꾸고
살아서 아침을 만나고
평범한 하루 끝에
슬며시 잠이 들었으면 좋겠어.
그동안 숨이 막히던 나를 네가 살려냈던 것처럼.
또 다른 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그동안 나랑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먼 길을 함께 걷자.

.
.
.
.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설날에.
산뜻한 기운이 충만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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