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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25. 2024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어

자매라서 거리두기

"이번달까지만 지내고 내년에는 독립했으면 좋겠어"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동안에는 너를 내쫓는 것 같아서 죄책감 때문에 나가달라고 말 못 했어. 나는 이 집을 좋아하고, 내 생활이랑도 아주 잘 맞은 곳이야. 이제 이 말도 그만하고 싶어."


동생은 덤덤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반응이 안타까워서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해 봤다. 나가서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는 예시를. 정신적인 독립, 혼자 살면 싸우지 않게 되고, 언젠가 우리는 다 각자 지내야 한다는 등. 이미 여러 번 말해왔던 대화였다.


"응 알겠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고 말해줄게. 언니는 언니 할 말을 한 거야. 내 미래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어."


동생은 의외로 덤덤했다.


동생은 내 말을 회피하기만 하면 같이 지내게 되는 것이었고, 나는 짐 싸서 바깥에 내다 버릴 일이 없기에 이런 대화는 늘 지겹게 반복됐다. 그러면서 동생은 나름대로 눈치를 보고, 나는 눈치 주는 나쁜 언니로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없다고 나는 징징거리듯이 말해온 것 같다. 그건 우리 가족 모두가 아는 일이다. 오늘은 마음을 굳게 먹고 웃음기 없이 마지막으로 통보하듯 말했다.


물론 내 잘못도 있다. 동생의 상황이 나아지면 언젠가 나가겠지 하고 불편한 마음을 순간순간 넘겼다. 그런 상황은 몇 년이 지나도 제 발로 찾아올 리 없었다. 이걸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다. 애초에 동생과 동거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했을까. 애매하게 내년, 3년 내로, 결혼 전이라고 말해뒀기에 결국 그런 날은 오지 않고 동생이 먼저 나가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자매 둘이 의지하며 안전하게 살길 바라셨을 것이고, 동생은 언니와 같이 살면서 돈을 모으는 최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가족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이제 혼자 살고 싶다고 해서 이기적인 딸로 보일까 봐, 매정한 언니로 비칠까 벌벌 떨고 있다.


이제야 나가달라고 말하는 건, 내가 절대로 갖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원망'하는 마음이다. 가족들에게 비난받을까 두려운 마음보다 '엄마 때문에, 동생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게 됐잖아'라고 말하는데 더 후회할 것 같다. 그러려면 이제 모두의 사정을 다 봐가면서 어정쩡한 선택을 하면 안 된다. 가족을 등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내가 가지고 있는 부담을 털어내고 싶다. 내가 나쁜 딸이건, 나쁜 언니건 말이다. 내가 나쁜 게 진짜라고 해도 현실은 '내가 혼자 지내는 삶'이 다가오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아직도 죄책감과 미안함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계속 곱씹어서 마음을 잔잔하게 하고 싶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내 행복은 동생의 불행과 심지어 행복과도 별개다.


어느 날 친구가 이 일로 고민하는 나를 두고 엄마를 대신해 이런 문자를 보내줬다. 나는 이 말이 좋아서 백 번은 읽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겨우 네 문장뿐인데.


"둘째야 잘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독립하는 거 늦은 거 아니다.

언니한테 그동안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꼭 말하고 나와라."


"첫째 딸, 드디어 둘째가 세상에 한 발자국 더 내딛나 봐.

많이 성장한 것 같아. 같이 축하해 주자. 언제 같이 내려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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