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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Nov 10. 2023

좋아졌다 싫어졌다

나는 다시 15년 만에 비 오는 날이 좋아졌다. 지금 비가 내리는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비오는 날을 화창한 날보다 좋아했다. 어느 날엔 기숙사 친구들을 꼬셔서 비를 흠뻑 맞자고 꼬신 날이 있다. 야자가 끝나는 11시에 정문으로 나가자고. 폭우가 내리면 정문을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폭포처럼 변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밭밑을 감돌던 빗물이 좋았다. 지금은 그때 누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내려서 안경을 자주 닦으면서도, 속옷까지 젖으면도 꺄르르 웃던 소리가 생생하다.


그러다 대학에 오고나서는 비가 싫어졌다. 같이 비맞을 친구들도 없고, 작은 원룸에 처박혀서 미래를 상상하면 어찌나 불안한지, 게다가 비라도 오면 더 서글퍼졌다. 비는 특히 도서관에서 시험공부 공부할 때, 야간 수업 몇 개 들을 때에, 버스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할때 자주 내렸다. 더 이상 비맞기 싫다는 생각도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대학원까지도 비를 싫어한 기억이 생생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비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무뎌졌다.


오늘은 빗소리를 더 듣고 싶어졌다. ASMR을 잠자기 전에 듣는 습관이 있는데 주로 장작타는 소리를 재생한다.  소리만 들어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변화무쌍한 작은 불은 화면속에서도 신나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장작소리보다 빗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는데도, 이제 막 그쳤는데도 잠자기 전까지 더 듣고 싶어졌다. 빗소리를 들어도 춥거나 짜증나지도 않았다. 싫었던 것들도 다시 반가워 할 수 있는게 새삼스럽다. 앞으로도 나는 이랬다 저랬다 여러번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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