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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Dec 11. 2024

대화에서 지지 않는 법

책리뷰 최재천의 숙론

대화에서 지고 이기는 건 없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그동안 지지 않으려고 대화를 했는지, 그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상대를 폄하하는 일이 많았는지 '최재천 교수의 숙론'을 읽고 되돌아 보게 되었다. 심지어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확신했었다. 왜 그럴까? 저자는 우리의 토론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간장 종지 같은 마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다. 가치 판단이 있을 수밖에 없는 대화를 할 때 (정치, 종교 같은) 다른 의견을 들으면 진심으로 기분이 상해버린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니고 특정 인물들이 있음. 하지만 뚱하게 앉아있는 내 꼬락서니를 보자니 얼마나 어른스럽지 못한지 낯 뜨겁다.


처음엔 상대의 말투 때문이 기분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어느 정도 지금도 맞다고 생각한다.) 대화 상대가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말문을 잘 닫았다. 더 이상 감정이 상할 일을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 같으니 거기서 이야기가 끝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로 가장 친밀한 몇몇과 하게 됐다. 문제라면 문제고 아니라면 아니지만, 최근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깊게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대화로 관계 맺고 싶은 게 아니라 깊은 대화는 누구와도 해보고 싶었다.  스킬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그러다가 최근 최재천 교수의 숙론을 읽고 나서, 내가 토론하는 법을 잘못 배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나와 상대해 준 모든 분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최재천 교수는 우리 사회에 토론이 희박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한다. 그마저도 토론이라고 하면 찬반이 명확하게 대립되고,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토론은 깊이 숙고하며, 함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이미 변질된 토론이라는 단어보다 숙론을 쓰자고 제안한다.


어릴 적부터 토론 수업을 많이 했다. 딱 최재천 교수가 우려하는 방식대로 했다. 그래서인지 토론 같은 대화가 시작되면 내가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내가 맞다'는 결론을 먼저 내놓기 때문에 여기서 밀리면 진다는 기분마저 든다.


 토론을 하다 보면 상대의 입장을 듣고 의견이 변할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른 채로 충분히 존중받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선택지는 없고 찬성과 반대로만 나뉜 어릴 적 토론과 비슷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면이 보였다. 나는 그걸 퉁쳐서 '무례한 말투'라고 치부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니 대화가 협력적일 수가 없다.


요즘엔 의식적으로 대화할 때에 내 기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 기분이 먼저 상해버리면, 그게 존중받지 못해서인지, 내가 졌다는 기분 때문인지 들여다보곤 한다.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옛 습성 때문에 기분이 픽 상했다가도 다시 괜찮아지는 경우가 생겼다. 어른이 되어서 토론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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