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우리 회사 동기 중에는 사주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입사 전에는 사주 카페에서 일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동기들끼리 모이는 송년회 자리에서는 다들 앞다퉈 그에게 새해 사주를 물어보곤 했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인데, 나도 궁금한 마음에 그에게 사주 풀이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만세력 앱을 켜고 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입력했다. 그런데 나온 사주를 풀이하던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내 사주에 '원진살'이 있다고 했다.
찬찬히 들어보니 원진살(怨嗔煞)은 굉장히 안 좋은 살이었다. '원망할 원'과 '성낼 진'을 써서 '원망하고 화를 내게 된다'라는 뜻. 성격이 예민해 불평불만이 많은 것은 기본이고, 사랑하는 이와 서로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쉽게 말해 사랑하는 이와 가까이 있으면 미워하고, 멀어지면 그리워하는 살이란다. 심지어 돈이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살 중에 유명한 '역마살'이나 '도화살' 같은 경우, 요즘엔 좋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던데. 이놈은 좋게 해석될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잠시 인생을 돌이켜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를 알겠다. 내 성격이 이렇게 예민한 것도, 돈이나 사랑이 꼬이는 것도 모두 이 원진살 탓이라는 거.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라면, 굳이 마음고생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재미 삼아 본 사주였지만, 나는 어느새 '이렇게 된 이상 막 살자!'라며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는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앨범을 뒤지다 본 내 출생증. 거기에 적힌 출생시간은 내가 알고 있던 시간과 달랐던 거다.
그에게 태어난 시간을 바꿔서 다시 한번 사주를 봤다. 시간이 달라지자 사주도 다르게 나왔고, 다행히 원진살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이야기하길, 보통은 사주가 나쁘게 나와도 잘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사주는 사주일 뿐인데, 그걸 말하게 됨으로써 안 좋은 사주가 진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뀐 사주에도 여전히 원진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나쁜 살이 있었는데 말해주지 않은 것일지도. 그렇다면 더더욱 사주는 사주일 뿐이다.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