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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데미안 Jul 08. 2023

7월 8일 토요일

말의 품격

더운 여름을 맞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강화도의 워터파크를 급하게 다녀왔다. 하루 전달 계획하고 준비하여 후다닥 다녀왔다. 첫째 아들 녀석의 가장 친한 친구도 불러서 나 홀로 아이들 셋을 데리고 호기롭게 다녀왔다. 혼자서 아이들의 놀이와 음식과 샤워/환복까지 다 챙기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워하는 녀석들을 보니 마음이 즐거웠다.


그런데, 이 즐거웠던 마음도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손상되는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이 워터파크는 입구에 짐을 내려놓고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와서 짐을 실을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도 짐을 한편에 모두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짐 위에 앉아있으라 하고 나는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갔다. 우리 짐은 크고 작은 가방을 모두 포함하면 한 7~8개가량 되었다. 그런데 트렁크에 짐을 싣는데 가방 2개가 비는 것이 아닌가? 짐 위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아이들은 짐이 사라진 것도 몰랐고, 내가 워터파크 안에서 짐을 안 챙긴 것인가 싶어서 몇 번을 다시 들어가 돌아보았다. 그 어디에도 나의 짐 2개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나의 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들 친구 녀석의 짐이었다. 사실 가방에 들어 있던 것은 젖은 수영복과 구명조끼, 고기불판, 새로 산 아이들 물총, 그 외 간식 여러 개였다. 아깝긴 하지만 뭐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진상을 알고 싶어 관계자에게 말씀을 드리고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CCTV 속의 나는 분명히 잃어버린 2개의 가방을 양 어깨에 메고 다른 짐들과 함께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주차장에 간 사이 우리 짐 앞으로 다른 차량이 들어섰고, 60~70대 되어 보이는 한 어르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짐 쪽으로 와서 가방 2개를 들고 본인 차량의 트렁크에 싣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에는 우리 뒤쪽으로 가서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의 짐을 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사려 없이 짐을 가져갈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복잡한 환경에 물놀이로 피곤하신 어르신임을 감안하면 실수할 수도 있지 싶었다. 그래서 그분들이 집에 가서 물건을 잘 못 가져온 것을 확인하면 워터파크에 연락을 할 테고(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럼 나와 연결되어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연락처를 남기고 다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개운하게 씻고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워터파크에서 연락이 왔다. 짐을 가져간 사람과 연락이 되었다고 그래서 연락처를 공유해 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동시에 양쪽으로 연락처를 공유했다고 하여 일단은 연락을 기다려 보았다. 어쨌든 나의 잘못 보다는 상대 쪽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앞선 것이다.


약 15분여쯤 지났을 때 CCTV 속 아버님의 자녀분이 문자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워터파크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경비실에 맡겨둘 테니 주소 남겨주세요.”


이 문자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화가 났다. 이유는 2가지였다.

하나, 빈 말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미안하다는 말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심이 아니더라도 정황과 맥락 상 인사치레라도 말이다.

둘, 워터파크에서 연락을 받았다? 집에서 짐을 풀어보면 당연히 자기 짐이 아닌 것을 알았을 텐데 그러면 먼저 워터파크에 연락해서 짐 분실자를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별일 아니기에 주소를 남겼고,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은 꼭 남기고 싶어서 한 줄 추가하였다. 잠시 후 날 선 메시지가 되레 날아왔다.



문자를 보니 아버지의 자녀 되는 분이 일 처리를 위해 연락을 한 것이었고, 짐관리를 잘 못해서 아버지가 착각한 것이 아니냐는 듯한 반문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굉장한 호의를 베풀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권리로 누린다는 예의 없음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매우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다 자리를 바꿔 노트북을 열었다.


사과를 받고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보다는 정확한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호의’나 ‘예의’라는 단어를 쉽게 거론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마음은 좀 편치 않았다. 나랑 연락이 닿은 그분도 피곤한 상황이었을 테고 내일 또 일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귀찮고 짜증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첫 문자에서 ‘미안’이라는 2글자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짐을 다시 찾아 다행이라는 마음만이 남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것 같은 말은 참지 말고 해 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요즘이기에.. 나의 예민도는 하루 자고 내일 다시 판단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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