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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Oct 19. 2019

표현, 필터

나를 표현하고, 필터로 다듬기

기타를 배우고 싶으면 기타학원을 찾고,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미술학원을 찾고, 

글을 쓰고 싶으면 글짓기 학원을 찾고,

수학을 배우고 싶으면 수학학원을 찾는다. 

필요한 모든 지식을 기존의 것으로 공급받아 채운다.

그리고 어느 수준의 교양을 쌓는 정도에서 그친다.

아무리 배워도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자기 문장을 내지 못하고

자기 공식을 내지 못한다.

기존의 지식을 공급받는데

자기 표현은 계발하지 못한다.


아래 그림에는 두 가지 사람이 그려져 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어린 시절이 있고, 자기 마음이 있고,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성격이 있고, 기질이 있고, 특징이 있고, 경험이 있고, 추억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을 한 사람의 마음속에 고유하게 품고 살아간다. 누구나 마음속에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성인이 되어 우울한 사람도 아기때는 세상 행복하게 웃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라면서 그 씨앗을 발현하는데, 어떤 색의 씨앗을 꺼내었는지, 또 어떤 색의 씨앗을 아직 꺼내지 않았는지가 사람마다 모두 다를 뿐이다. 뭔가를 잘 하지 못하겠다면, 그것을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발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아직 씨앗인 채로 품고 있는 것 뿐이다.

기존의 개념으로 둘러싸기 : 자기 표현을 발현하기

제도권의 교육은 이전에 만들어진 개념의 틀을 제공한다. 개인의 기질과는 무관하다. 기존의 개념이란, 위 그림에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막과 같다. 겹겹이 쌓인 막에 가로막혀 자기 색깔을 끝내 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겹겹이 쌓인 막을 뚫고 자기 색깔을 발현하는 사람도 있다. 


제도권이 제공하는 교육, 기존의 지식과 개념이란 일종의 필터 (filter)다. 내가 꺼내어 내놓는 것을 보다 정밀하게 다듬는 역할이다. 위 그림의 왼쪽 사람처럼, 필터가 나를 단단히 뒤덮는 동안 내가 나를 꺼내지 않으면 그 씨앗은 자기 안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한편, 필터가 없이 자기표현만 하다보면 설익은 결과만 얻기 쉽다. 바퀴를 재발명 하는 식이다. 그러니 자기 표현도 필요하고, 필터도 필요하다. 교육은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다. 필터만 있으면 자기가 없어지고, 자기 표현만 있으면 설익은 채가 된다. 보통의 아이들은 자기 표현만 있고, 보통의 어른들은 필터만 있다.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리는 비뚤빼뚤한 그림을 보자. 공룡이나 엄마아빠 얼굴을 그릴 때, 거기에는 어떤 제약도 조건도 없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자기 표현만 있다. 설익었지만 그래도 자기 표현이다. 나이가 들면서 겹겹의 지식이 필터로 나를 둘러싸면서 자기 표현은 줄어들고, 어느 나이가 되면 자기 표현하기를 그만둬버린다.


다섯 살의 표현이 있고, 열 살의 표현이 있고, 열다섯살의 표현이 있고, 서른 살의 표현이 있다. 그때그때의 감정과 관심사와 생각이 전부 다르다. 그것을 꺼내는 표현이 먼저 있고, 그것을 다듬는데에 기법이나 지식이 사용된다. 필터는 그것을 통과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고, 자기 표현이 없이는 어떤 고급 기법이나 지식도 의미가 없다. 


글을 쓴다고 하자. 처음 쓴 글을 초고라고 한다. 처음 작성한 글이므로 문맥도 엉성하고 앞뒤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냥 쓴다. 그런 후에 고친다. 퇴고라고 한다. 고치면서 글이 발전해간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지식도 빌린다. 그런데 초고가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표현이 먼저 오고, 지식이 나중에 온다.


프로그래밍에는 pseudo code (의사코드) 라는 것이 있다. 파이썬이나 자바 같은 특정 언어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모국어를 사용하든 어떤 기호를 사용하든 간에 프로그램의 로직을 일단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실제로 구현을 할 때에 특정 언어의 문법으로 다듬는다. 컴퓨터에게 어떤 작업을 시키겠다는 표현이 먼저 오지 않으면, 프로그래밍 문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이 부리는 어떤 기예에서도, 거기에는 표현이 있고 필터가 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 개념의 필터에 둘러싸였고 자기 표현을 잃어버린지 오래라면, 혼자 있는 공간에서 필터를 벗고 아무 표현이나 꺼내놓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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