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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Nov 20. 2019

익숙한 생산고리 루프

아는 것을 반복생산하면서 모르는 것을 흡수하기

나는 끈기가 없나보다. 모르는걸 공부할 때는 집중도 잘 못하고 금세 질려서 나가떨어진다. 나는 머리가 나쁜가보다.

글을 쓴다든지, 수식을 쓴다든지, 코드를 작성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하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자. 작업물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할까?


아래 그림을 보자. 세로축은 난이도 (difficulty), 가로축은 작업의 양 (amount)이다. 왼쪽으로 갈수록 추상적이거나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다. 파란 점이 있는 이 위치에서는 일이 어려우므로 양을 늘리기 어렵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구체적이고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빨간 점이 있는 이 위치에서는 일이 쉬우므로 양을 늘리기도 수월하다. 시험기간에는 바둑TV도 재미있다는 농담이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에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쉬운 일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래 그림의 파란 점이 있는 영역보다 빨간 점이 있는 영역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다. 그러니 파란 점이 있는 영역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으면 높은 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음직 하다. 파란 점이 있는 위치의 일은 추상적이거나 복잡하거나 어려우므로, 아무나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업물을 꾸준히 내놓는 사람들은 일의 고리 (loop)를 만든다. 빨간 점 위에 있는 고리들을 보자. 아래 그림에는 마치 전자기장을 묘사해놓은 것 같은 고리가 있는데, 이것은 한 사이클의 완결된 일을 의미한다. 글이라면 한 줄의 문장, 한 문단의 글, 한 권의 문서일 수 있다. 음악이어도, 그림이어도 마찬가지다. 작은 크기의 일은 작은 고리로, 큰 일은 큰 고리로 표현하였다. 


고리는 이미 내가 완결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한 문단짜리 글을 여러번 쓰다 보면 그 내용이 다 다르므로,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필요한 지식이 획득된다. 지식을 획득하려고 일부러 덤비는게 아니라, 나에게 익숙한 작업을 반복해 돌다 보면 내가 모르던 지식이 휩쓸려들어온다고 본다. 내가 모르는 지식은, 내가 모르기 때문에 손을 뻗어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지식은 내가 능동적으로 획득하는게 아니라, 나에게 편한 작업물의 생산고리를 만들어 빙빙 돌리는 와중에 내게로 쓸려들어오는 것이다. 

모르는 지식을 흡수하는, 익숙한 생산고리 루프

여러개의 작은 고리 만들기를 반복하다보면, 중간 크기의 고리나 큰 크기의 고리를 만들 만큼의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한 문장을 편하게 쓸 수 있으면 한 문단을 편하게 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한 권의 책을 편히 쓸 수 있게 된다. 양적인 면 말고 질적인 면으로 조금 욕심을 부려서, 내용상으로 더 추상적이거나 더 복잡하거나 더 어려운 일을 해보자. 그림에서 초록색 점의 영역이다. 거기서도 작은 고리를 만들어 돌리다보면 해당 영역의 지식이 휩쓸려 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몸에 체화된다. 익숙한 루프를 빙빙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아주 추상적이고, 아주 복잡하고, 아주 어려운 일을 해보자. 파란색 점의 영역이다. 남이 쓴 연구논문을 펼치면 내가 아는 단어는 거의 업속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다. 거기서는 큰 고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모르는 것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으로 작업의 고리를 만들어 빙빙 돌려야 내가 모르는 바가 자연히 휩쓸려 들어오는데, 작업의 고리를 아예 만들지 못하므로 낱개의 지식을 일일이 상대하다가 금세 질려 나가떨어진다. 추상적인 개념을 있는 그대로 상대하려 들면 그렇게 된다.


어려운 논문을 읽으면서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누구나 그렇다. 그러니 해당 지식과 유관하면서 나에게 아주 편안한 작업물 생산고리를 먼저 작게 만들어보자. 한 줄의 글이 될 수도, 한 마디의 음절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추상성을 다루는 수학자나 물리학자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먼저 펜으로 적는다. 손으로 먼저 일일이 만들어내고, 그 다음에 이해가 '된다'. 나에게 익숙한 작업물 생산고리를 돌리는 와중에, 추상적인 개념들이 구체적인 세상으로 끄집어내려지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게 될 내용은 대학원에서 3~4년 정도 공부한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내용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을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연 자체가 터무니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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