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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이 소환한 아데바요르의 '레전드 세리머니' 스토리

by 스포츠파이 Apr 05. 2025

지난주 K리그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경기는 바로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였습니다.


서울이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경기 내용도 재밌었지만, 후반 46분에 터진 서울 정승원의 동점골 이후 원정팀 대구 원정 응원석까지 달려가 손을 귀에다 갖다 대며 “야유 더해봐” 라는 식의 세리머니를 해 대구팬들을 도발하는 장면은 지난주 최고의 임팩트를 가져다준 장면이었습니다. 세리머니를 위해 경기장 반대편 대구 원정석까지 뛰어가는 동안 정승원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최준과 김진수를 보며, 서울 양쪽 풀백 최고의 오버래핑이라며 평가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해당 장면은 이번 경기 선수 소개부터 대구팬들로부터 엄청난 야유를 받은 정승원이 동점골을 넣은 이후 팬들에게 갚아준 측면이 큽니다. 물론 이 경기 이전부터 정승원은 대구FC팬들과 악연이 깊었죠.

정승원은 2016년 대구FC에서 데뷔해 한때 2021시즌까지 6시즌을 대구에서 뛰며 김대원, 정치인과 함께 실력 있는 2선 자원으로 큰 기대를 받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2020시즌 후 연봉 인상을 원하던 정승원의 요청을 팀이 받아주지 않고 연봉 조정까지 가는 촌극을 벌이며 선수와 팀 모두 마음이 상하는 사건이 발생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21시즌 당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평상시 마스크를 써야 했는데, 음식점에서 밥을 먹느라 마스크를 내린 정승원을 대구팬들이 사진을 찍어 방역수칙 위반이라 SNS에 올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가 핼러윈 기간이었고 직전 경기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에게 0:5로 패한 뒤였던 터라 ‘개념 없는 선수가 핼러윈 축제를 즐기느라 코로나 방역수칙을 어겼다.’ 라는 식의 여론이 커뮤니티에 퍼지며 선수 입장에선 굉장히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팀이나 팬들에게 마음이 떠난 정승원 역시 그 이후 SNS에 공개적으로 팀을 떠날 것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거나 이적한 이후에는 팀을 비하하는 단어가 포함된 글을 남겨 대구팬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남기고 팀을 떠납니다. 이외에도 사진 초상권 문제를 두고 대구팬과 다투는 등 자잘한 사건들이 많았는데, 2025년 3월 29일 이런 대형 도발을 대구팬들에게 날린 겁니다.


축구 커뮤니티에선 정승원의 이번 세리머니를 보며 세계 축구사에 도발 세리머니로 한 획을 그은 선수가 소환됐습니다. 바로 2009년 당시 맨시티 소속으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아스날 관중석을 향해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한 엠마뉴엘 아데바요르입니다.


정승원이 소환한 전설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아데바요르는 한국팬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선수입니다. EPL을 즐겨보는 팬들은 아스날과 맨시티 소속으로 많은 골을 넣었던 공격수로 기억할 것이고, 2006년 월드컵 당시 토고 소속으로 대한민국 대표팀과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 때만 해도 AS모나코 소속으로 유망주 평가를 받던 아데바요르는 2006년 겨울 이적시장에 아스날로 이적하며 EPL 무대를 밟습니다. 이적 첫 해엔 티에리 앙리와 데니스 베르캄프, 로빈 반 페르시 등 스타급 공격수들에게 가려져 벤치 멤버로 뛰었지만 2007-08시즌 앙리와 투톱 콤비로 뛰며 48경기에서 30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AC밀란을 상대하며 번뜩이는 활약을 펼쳐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2008년 이적시장에서 AC밀란이 아데바요르 이적에 관심을 보였고, 밀란의 러브콜에 텐션이 오른 아데바요르는 아스날에 급료 인상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아스날은 당시 신축구장 공사 때문에 긴축 재정에 들어간 상태였고 이미 1년도 안된 시점에 대폭 인상된 주급으로 재계약을 맺은 상황이었습니다. 팀 입장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아데바요르의 요구를 거절했고 아데바요르는 감독 불화설, 팀 이탈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아스날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는 아데바요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대신해 당시 유망주였던 벤트너와 에두와르도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선택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아데바요르는 “여름휴가를 보내고 팀으로 돌아와 감독과 미팅을 했는데, 그는 '더 이상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했어요. 저는 '와... 제 자리를 위해 싸울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감독은 '아니, 네가 팀에 남는다면 리그 스쿼드에 들어갈 수 없고, 챔피언스리그 스쿼드에도 들어갈 수 없고, 컵대회 스쿼드에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라고 회고했습니다.


아데바요르가 훈련을 위해 팀 훈련장을 방문하자 팀 관계자들이 그의 출입을 막기까지 했죠. ‘팀을 나가라’는 명확한 사인이었던 겁니다. 결국 급하게 다시 이적할 팀을 찾아야 했고 다행히 맨체스터시티가 손을 내밀어준 덕분에 2009-10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팀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데바요르도 아스날에 급료 인상을 계속 요구한 이유는 있었습니다. 당시 토고에 남아있던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아데바요르 한 명만 바라보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심지어 아데바요르는 그의 이복형제까지도 부양을 책임질 정도라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아데바요르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나 미국 빈민가 출신 프로 스포츠 선수, 연예인들이 흔히 겪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데바요르의 요구가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스날의 보드진이나 감독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가정사를 이유로 예외를 둔다면 팀의 기강이나 재정 정책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를 받아줄 이유는 없었습니다.


맨시티 이적 후 4라운드 만에 다시 만난 친정팀

맨시티로 이적한 아데바요르는 2009-10시즌 초반부터 매 경기 득점을 만들어내며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줬고, 4라운드인 9월 12일 자신을 내보낸 아스날과 맞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경기는 초반부터 매우 격렬했는데요. 하지만 홈 팀이었던 맨시티가 승기를 잡았고 2:1로 앞서던 후반 숀 라이트 필립스의 크로스를 아데바요르가 헤더골로 연결하며 결정적인 쐐기를 박습니다. 그리고 골인 것을 확인한 아데바요르는 아스날 원정 응원석까지 전력질주 후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손을 펼치며 역사적인 도발 세리머니를 장식합니다.


이 세리머니는 단순히 아데바요르가 돌아이라 감정적으로 저지른 사건은 아닙니다. 경기 전부터 아데바요르에게 아스날 팬들이 지독한 야유를 퍼부었는데, 선수 자신뿐 아니라 아데바요르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가족들을 향한 욕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죠.


"제가 경기장에 나설 때부터 피가 끓었어요. 전 동료들과 경기를 하게 되고, 전 소속팀과 경기를 하는 거잖아요? 당연히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난 여전히 아데바요르야. 난 여전히 뭔가를 잘 해내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아스날 팬들은 경기장에 와서 제 응원곡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아데바요르, 아데바요르, 그에게 공을 주면 그는 골을 넣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노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노래는 제 부모님을 공격하는 노래였습니다. 그 순간 '나를 아무리 모욕해도 되지만. 부모님은 안돼.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들은 절대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뭔가를 돌려줘야 했습니다.”


당시 아데바요르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인터뷰입니다.

경기는 4:2로 맨시티의 승리로 끝났고, 상대팀 팬들을 대놓고 도발한 아데바요르는 4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데바요르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최근 인터뷰에선 “후련했다.”라며 전혀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불미스러운 사태? 서사를 만드는 재미?


NBA에서 팬들과 직접 주먹을 주고받은 디트로이트의 론 아테스트 사태처럼 최악의 난동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이런 형태의 스포츠를 통한 복수의 서사는 해당 스포츠 팬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최고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2025년 정승원의 세리머니를 보고 2009년 아데바요르를 떠올리는 것처럼 앞으로 K리그 팬들은 FC서울과 대구FC가 맞붙을 때마다 이번 사건을 떠올릴 것이고, 두 팀의 대결은 K리그를 대표하는 더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정승원은 원정팬을 직접적으로 도발하거나 소요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 징계 없이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만약 징계를 받았다면 오히려 팬들의 원성(물론 대구팬들은 반대하시겠지요?)을 살 뻔했습니다. SNS 상에서도 숏폼 영상으로 이번 사건을 접하고 두 팀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됐다는 팬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경기력과 선한 영향력이 물론 우선시되야겠지만, 이런 형태의 도발과 도파민을 자극할 수 있는 스토리도 스포츠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해당 글은 4월 4일 발행할 글을 브런치에 다시 올린 글입니다. 

https://v.daum.net/v/YhdS2cts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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