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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Jun 25. 2019

비닐봉지 없는 세상을 꿈꾸며


 만두를 구워 먹으려고 하는데 식초가 없다. 그냥 먹어도 되지만, 만두는 식초 넣은 간장에 찍어먹어야 제 맛이다. 잽싸게 동네 식료품 점에 뛰어갔다.  3리터짜리 큼직한 식초 한 병과 소금 한 봉지를 샀다. 내가 계산할 차례가 되자, 계산대의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비닐봉지도 드릴까요?"

 비닐봉지 가격이 30원이다. 어차피 카드로 계산하니 잔돈을 불편하게 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낭비였다. 비닐봉지는 집으로 가져가자 마자 쓸모를 잃고 아파트 재활용 분류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식초와 소금을 양손에 들고 다니는 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좀 불편하면 어떤가. 

  "그냥 들고 갈게요. 요즘 환경 문제가 심하잖아요."

  "그렇죠. 요즘 플라스틱 문제가 심하긴 심하죠."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한숨을 쉬셨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비닐봉지를 잔뜩 먹고 죽은 고래이야기를 들으신 것일까. 여하튼, 이런 이야기에 한숨을 쉴 정도면, 환경 문제에 민감한 아주머닌가 보다.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양손에 물건을 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나는 아주머니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나는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지금 해결책이 영 없는 건 아니에요."

  "그래요?"

 아주머니가 한 손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관심을 보였다.  

  "꿀벌부채명 나방 애벌레에 답이 있어요. 꿀벌부채명 나방은 벌집에 알을 낳는데, 부화한 애벌레는 벌집을 갉아먹고 자라요. 벌집은 밀랍으로 되어 있는데, 밀랍과 폴리에틸렌이 화학구조가 똑같다고 해요. 과학자들은 그 점을 떠올리고, 애벌레에게 비닐봉지를 먹였죠. 그랬더니 비닐봉지가 에탄올로 변했다는 겁니다."

 "오! 놀랍네요."

  짧게 감탄사를 내는 아주머니 얼굴에서 기쁜 표정이 나왔다. 나도 기분이 좋아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벌레가 그것을 완전히 소화를 시켰다는 점이죠. 폴리에틸렌이 분해되지 않고 나온다면 또 다른 미세 플라스틱 오염을 유발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플라스틱이 백 퍼센트 알코올로 변했다는 겁니다."

 "그런 건 어떻게 아셨어요?"

 "인터넷 기사에서 봤어요. 평소에 과학 뉴스를 많이 보거든요."

 "그렇군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아주머니는 휴대폰을 꺼내어 검색하셨다.

 "네. 꼭 한번 찾아서 읽어보세요."  

 나는 웃으며 커다란 사과 식초 병과 소금 봉지를 양손에 나눠 들었다. 양손으로 나눠 들으니 비닐봉지에 넣고 가는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대로 비닐봉지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와도 충분히 적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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