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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Jul 27. 2019

모기

© ekamelev, 출처 Unsplash


 1
 점점 날씨가 더워지니 우리 집을 방문하는 모기의 숫자가 늘었다. 그럴수록, 나의 근심은 한층 깊어졌다. 아! 언제쯤이면 이 미칠듯한 가려움과 새벽마다 찾아오는 앵앵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선했던 5월이나 6월 무렵에는 방안에 모기가 들어와도 한 마리 정도였다. 한밤중, 어디선가 모기의 앵앵 소리가 들리더라도 한 마리를 처리하고 나면, 마음 편하게 팔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6월 말 무렵부터는 두 마리 정도는 죽여야 잠을 자야 할 만큼 모기 숫자가 늘더니 7월이 되니 모기를 4마리 처리해도 불안한 마음으로 자야 했다.

눈만 감고 누워 있다가 귀에 작은 앵앵 소리가 나면 눈을 번쩍 뜨고 즉시 방안에 환하게 불을 켠다. 눈을 부라리며 모기의 비행경로를 쫓는다. 모기에 대한 동물 행동학적 견해는 “모기는 동물에게서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숨어서 동물의 피를 빨 기회를 노린다"라는 것이다. 이론에 따라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찾아본다. 베개와 매트에서 시작하여 파란 하늘 벽지를 따라 천장까지 올라가 본다.

 어떤 깨달음이 온다. 요즘 모기는 닌자 훈련을 받았어. 불이 켜지는 순간 모습을 감춰버리는구나. 온몸에 스텔스 도색을 했구나. 가시광선 영역에선 탐지가 안되네. 아님 해리포터의 마법 망토를 걸쳤거나. 10분 정도 탐색을 시도하다가 모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다시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밤 새 뜬 눈으로 지새울 수는 없으니깐. 앵앵 소리가 가장 커질 때, 즉 나의 귀에 가장 가까이 붙었을 때 잠에서 깨기로 결심하고 눈을 감는다.

 꿈을 꾼다. 마법 양탄자를 타고 높은 빌딩 위를 나는데, 기분이 상쾌하다. 야호! 이대로 지구 반대편 쪽으로 날아가자! 서해를 지나 상하이, 칭다오 찍고 유럽으로 가는 거야. 그런데, 서해를 지날 무렵 마법 양탄자에 문제가 생긴다. 양탄자 한쪽이 마력이 떨어졌는지 자꾸 축 쳐지는 것이다. 나는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고, 심장이 쫄깃해짐을 느꼈다. 나는 수영을 잘 못한다. 고소 공포증도 있다. 앗! 따끔하다. 이게 뭐야! 나는 눈을 뜨고 어둠 속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정신줄을 놓았을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모기는 기습한 것이다. 황급히 불을 켜보지만 모기는 존재를 감춰버렸다. 아까 전 깨달음을 다시 복습했다. 닌자 훈련받은 모기가 온몸에 스텔스 도색을 하고 해리 포터의 마법 망토를 쓰고 공격한 것이다. 아! 원통하고 분하다! 또 당했다! 나는 다시는 모기에게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눈을 감아본다. 이번엔, 기필코, 모기 날갯짓 소리가 가장 가까울 때 모기를 처치하리라!

 하지만 나는 모기를 이길 수 없었다. 밤에는 지구력이나 인내력에서 모기가 나보다 10배는 강했다. 그놈은 피를 한번 빨지 못했다고 해도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았다. 터미네이터처럼 끝장을 볼 때까지, 공격한다. 운 좋게 전기모기채로 감전사시켜도, 나를 보며 웃는다.

“아윌 비 백.”

 밤새 4번 정도 잠에서 깨고 자기를 반복하면, 다음날 혈액 속 혈구들이 죽는소리가 들린다.

2
 나는 방어 전략을 세웠다. 네이버 지식쇼핑에서 모기장을 주문했다. 아주 큰 사이즈로. 방 전체를 다 덮을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이 정도 크기 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도 모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독서할 때는 책에 집중하고, 잠을 잘 때는 꿈나라에 집중할 수 있다. 전자 모기약은 사용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로 화학약품에 대해 불안감이 생겼고, 전자모기향이 증발하면서 나는 냄새에서 불쾌감이 들었다. 저 냄새를 맡은 모기는 사지가 마비되어 죽을 텐데, 나의 폐는 안전할 수 있을까? 또 모기약을 새로 갈아 넣을 때마다 비닐포장지를 비롯하여 유해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모기장이 가장 좋았다.

 모기장이 택배로 배달된 저녁 이후, 며칠간은 꿀잠으로 행복했다. 저녁 10시가 되면 모기장 안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 모기의 날갯짓 소리는 들렸지만 모기에 물리지는 않았다. 모기장에 매달려서 나의 피를 빨지 못해 애간장이 타는 모기를 상상하며 기분 좋은 잠을 잤다. 이대로 여름이 지나간다면 모기는 산란을 실패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기장이 배달되고 5일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수확한 양파를 바람에 말린다고 베란다에 방충망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활짝 개방된 큰 창문으로 모기 대군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방충망을 닫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에게 따졌다.

“어머니, 방충망은 왜 열어 놓으셨어요?”
“바람 좀 쐐야지 양파가 안 썩지.”

어머니는 경전에 시선을 둔 채 당연한 이야기를 하듯 대답하셨다.

“방충망은 닫아도 바람 잘 들어와요.”
“안 그렇다. 바람 세기가 미세하게 달라.”
“어휴. 어머니도 참.”

그때,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으셨다.

“혹시, 닫았냐?”
“그럼. 당연히 닫아야죠. 모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요.”
“안 그렇다. 모기향 피워두면 열어놓은 방충망으로 모기가 도망 나간다.”
“어머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모기가 왜 나가요? 밖보다 안이 안전하고 먹을 것도 많은데.”

 어머니는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그분은 어느새 베란다에 들어가셔서 내가 닫은 방충망을 다시 활짝 열어놓으셨다.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안전한 나의 모기장 안으로 피신했다. 모기장이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책상에 앉았다. 어차피 나만 안전하다면, 괜찮은 거다. 어머니도 모기에 시달려봐야 방충망의 고마움을 아실 터였다.  

 착각이었다. 어머니는 모기에게 물려도 잠을 잘 주무셨다. 숙면을 취하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나는 다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밤이 되자 내 방 모기장의 미세한 틈으로 모기가 서너 마리 들어왔다. 어떻게 미세한 틈이 생기는지 잘 모르겠다. 모기장이 워낙 크다 보니 모기장과 바닥이 닿는 부분에, 구겨진 천 사이로 모기가 들어왔으리라 추측만 할 뿐이었다. 모기장이 크다 보니깐 그런 틈이 생긴다고 해도 어딘지 일일이 체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모기장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작은 주름이 생기는 것인데, 그것을 매번 확인한다는 것은 편집증 환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랍에 넣어둔 전자모기향을 꽂았다. 친환경 모기퇴치 시대는 끝났다고 푸념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3
 악! 짧은 비명을 내지르고 나는 눈을 떴다. 불을 켜니 다리에 4군데 엉덩이와 등에 3군데, 머리와 목에도 모기가 물었다. 전기 모기향을 머리맡에 피워뒀음에도 불구하고 모기는 죽지 않고 모기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의 피를 빨았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직 12시였다. 일찍 일어나도 아직 아침까지는 6시간가량 남았다. 조명등을 들고 몸에 빛을 비춰 보니 벌떼에 물린 것처럼 온몸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미칠 듯 가려웠다. 물파스를 틈틈이 발랐다. 모기가 물린 곳이 가려운 이유는, 모기가 피를 빨기 위해서 히루딘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효소를 넣는데 그것이 우리 몸의 히스타민과 반응하기 때문이다. 히루딘은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모기가 안심하고 피를 마실 수 있다. 모기가 우리 몸에 집어넣는 것이 세균은 아니지만, 다른 생명체가 허락도 안 맞고 내 피를 빼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전자 파리채로 보이는 모기는 모조리 잡고 다시 잠이 들었다. 깊은 잠은 못 잤다. 잠이 들려고 하면 어디선가 모기가 내 귓전을 맴돌았다.

 다음 날, 나는 모기 방어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전자 모기향은 소용이 없었다. 우리 방에 들어오는 모기는 화학전에 내성이 생긴 생물이었다. 모기장도 한계가 분명했다. 작은 틈이 있다면 기가 막히게 그 틈을 찾아내는 영리한 생물이었다. 그때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 들었다. 모기장 안에 모기장을 하나 더 치는 전략이다. 모기장이 하나라면 모기가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두 개라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중 방어 체계인 셈이다. 나는 네이버 지식쇼핑에 들어가 3인용 사이즈로 중간 사이즈 모기장을 하나 구매했다. 모기장은 다음 날 CJ 택배로 도착했다. 모기장 안에서 모기장을 하나 더 설치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폭소를 터뜨리셨다. 어머니는 혀를 차며 지나갔지만 더 이상 별말씀은 하지 않았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모기장을 설치하고 마음 놓고 푹 잠에 들었다.

4
악! 아악! 나는 미친 듯한 가려움에 비명을 지르고 이불을 던지고 일어났다. 두둥. 참새처럼 통통한 시커먼 모기가 이중 방어 체계를 허물고 모기장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모기를 퉁겼다. 모기가 피떡이 되어 손가락에서 묻었다.

아! 실패다. 실패야. 나의 피를 빤 모기는 목숨을 거둬 복수는 했지만, 이중 방어 체계는 실패였다. 모기는 모기장을 두 겹으로 한다고 해도 틈을 찾아냈다. 어쩌면 이렇게 영리한 것일까? 모기는 어떻게 이런 틈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일까?

해가 뜨자,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비장한 마음으로 펼쳤다. 적을 알지 못하면 전투에서 적을 이길 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모기를 진정한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모기에 대해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점을 자책하며, 모기에 대해 정보를 모았다. 모기는 어떻게 나의 피 냄새를 맡고 나를 찾는 것일까?

검색 결과 모기는 눈으로 나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모기는 머리 쪽과 턱 쪽에 있는 더듬이로 나를 찾았다. 그 더듬이에는 엄청난 후각세포가 있었다. 내가 호흡을 할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땀에서 나는 락트산 같은 화학물질을 맡고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 냄새를 맡은 암컷 모기는 좀비처럼 본능에 이끌려 돌진하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모기의 후각을 교란시켜야 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답은 선풍기였다.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흩어지게 하고, 나의 피부가 내뿜는 락트산 같은 화학물질 냄새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선풍기 날개가 돌 때 소음이 발생하여 잠이 빨리 드는 것을 방해하긴 하였지만, 수면 중에 가려움과 함께 여러 번 깨는 일보다 비교할 수없이 좋았다. 이중으로 모기장을 친 상태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자는 것, 그것이 내가 모기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꿀잠을 잤다. 모기는 바람을 맞아 후각을 잃고 나에겐 평화의 밤이 찾아온 것이다.

5
 모기와 싸우면서 든 생각은,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체는 인간과 닮은 것이 아니라 모기와 비슷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알을 낳기 위해 동물의 피를 취하는 모기처럼, 오로지 인간의 피가 필요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오는 것이다. 우리와 대화가 안 통하고, 동정심이나 자비도 모르는 녀석들이다. 외계 생명체는 인간의 불편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고 미친 듯 달려든다. 인간도 그것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나자 자비와 동정을 잃는다. 인간은 외계 생명체가 없던 평화로운 일상을 갈망하고, 외계 생명체는 인간의 피를 갈망한다. 결국, 인간은 외계 생명체를 멸종시킬 수 있는 전염병 세균을 발견하고, 외계 생명체는 인간의 세균 폭탄을 막고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아! 인류 만세! 이 와중에도 나의 종아리에 모기 두 마리가 사이좋게 앉아 피를 빨고 있다. 따닥! 나는 두 손으로 모기를 사정없이 때리고 피떡이 되어 손바닥에 붙은 모기를 바라본다.  오래간만에 성공한 사냥을 만족할 틈도 없이 종아리살이 엄지손가락만큼 부풀고 가려움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젠장! 모기 같은 생명체들은 세균 폭탄 맞고 죽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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