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호영 Jul 24. 2019

유교 문화의 해악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흔히 유교 문화권에 있다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넓게 보면 베트남까지를 유교문화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네 나라중에서도 가장 유교 문화의 잔재가 넓고 깊게 퍼져있다. 심지어는 유교의 본산이라고 하는 중국보다도 더 철저하게 유교 문화가 우리 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조선 왕조 500년의 긴 시간동안 유교중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교 문화권의 국민들의 특징은 근면 성실과 법질서에 대한 순종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장점들이 다른 타 아시아권에 비해서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는 시각이 있고, 나 또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도리어 창의성과 혁신성을 강조하는 시대에는 단점이 되기도 하고, 또한 조선 왕조 500년동안에 이어온 양반 엘리트 문화가 유교와 결합되어 우리 사회의 치명적이면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청산되어야 할 유교 문화를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가장 큰 해악은 연공서열과 나이에 따른 서열을 매기는 문화이다. 흔히 우리는 어려서부터 장유유서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 먼저 나이를 먼저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은 사람이 으레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여기고, 반대인 상황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기업들과 공무원 조직에서 나이와 경력에 따라서 봉급이 올라가는 호봉제라는 제도를 택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나이 혹은 경륜이 그 사람이 성과와 비례하는 경우가 있었겠지만, 지금 현대 사회 특히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인력들이 그 연봉에 맞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명예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느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업과 개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현상이다. 미국의 회사에서는 누구도 나이를 묻지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과 젊은 상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나이 혹은 경력의 길이가 그 사람의 연봉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나이 혹은 경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연봉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굳이 명예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내보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자신의 성과에 따라서 빨리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야망이 있는 젊은 사람들은 좀더 노력할 수 있는 동기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가 좀더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없애야 할 것이 연공서열과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없애야 할 해악은 허례허식과 체면문화이다. 이러한 문화는 반드시 유교에서 왔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유교를 신봉하는 조선 왕조 양반 엘리트 문화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조선 왕조시대에는 흔히 예를 숭상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쓸데없는 논쟁은 조선 현종시대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간 예송 논쟁이다. 왕가의 상을 3년상으로 할것인지 1년상으로 할것인지를 가지고 대차게 싸우고 사화까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 애도하는 것을 1년이나 하는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3년할지 1년할지를 가지고 목숨을 거는 나라가 제대로 될일이 있을까? 실리보다는 대의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조선왕조 500년을 지나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살아남아 있다. 체면때문에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사거나, 호화로운 결혼식을 하는 그런 사례가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많이 없어졌고, 좀더 사람들이 실용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남을 의식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고, 이러한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번째로 없애야 할 해악은 부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가지는 문화이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많은 동화책과 위인전을 통해서 가난한 선비와 청백리에 대해서 배워왔다. 학문에 정진하고 재물을 탐하지 않는 태도를 고상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마음에 그리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리고 머리속에 있는 "사농공상"이라는 직업적 서열을 가지고 있다. 학문을 하는 교사, 교수, 청렴한 공무원들은 숭상을 해야하는 대상이고, 돈을 탐하는 상인들은 장사치라는 이름으로 폄하해도 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것이 부동산 투자와 재테크이다. 직장인들이 모이면 언제나 하는 이야기는 어느 동네 아파트 값이 얼마나 올랐고, 앞으로 어디가 유망한 지역이 어디인가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한다. 조선시대에는 달랐을까? 양반들은 장사치라는 이름으로 상인들을 멸시했지만, 자신들은 권력을 통해서 대토지를 소유하고 많은 노비를 통해서 부유한 삶을 누렸다. 조선 시대의 양반 엘리트의 위선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관료 자본주의 성향을 띠게 된다. 사기업의 혁신을 통한 이윤추구는 천하고 악한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팽배해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교수나 고위 공무원이 되기 원하지, 장사를 하거나 기업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70만명이나 있다고 하는 공시족이 이러한 문화를 증명하고 있다. 


네번째로 없애야 할 해악은 권위주의이다. 유교사상에서는 기본적으로 질서와 권위에 대한 순종을 중요하게 여긴다. 군사부일체, 임금에 충성하고, 교사와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논리는 지배계급이 피지볘계급을 종속시키고 지배를 편리하게 만드는 아주 근본적인 원리이다. 유교 문화권 국가들이 비교적 사회가 안정적이고 치안이 좋은 이유가 이러한 이유때문인것 같다. 하지만 권위주의가 도를 넘어섰을때 민주주의 기본 이념과는 배치된고,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혁신을 방해하게 된다. 유교 사상은 지배계급이 정해져 있는 왕조시대에는 적합한 통치 이론이지만,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지도자를 국민이 뽑는 민주주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는 사상이다. 또한 기업의 관점에서도 기업과 종업원의 관계를 대등적인 계약관계가 아닌 주종의 관계로 변질시키는 것이 유교적 가치관의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과 종업웝이 관계는 언제든지 상호 필요에 따라서 계약 관계가 끝날 수 있는 합리적인 관계여야 하지만, 우니나라의 기업 문화는 기업과 종업원의 관계를 종속적인 관계로 변질시켰다. 권위주의에 의존한 문화를 가진 기업은 상명하복의 문화, 그리고 자유로운 토론이 없는 경직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창의성에 기반한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권위주에서 탈피했고, 많이 탈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잔재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교 사상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기술의 혁신이 하루 다르게 세상을 바꾸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존에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안정을 중요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우리나라의 진보를 더디게 만들고 있는것 같다. 문화라는 것이 누군가 갑지기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택동이 중국에서 문화 대혁명을 통해서 중국의 문화를 바꾸려고 했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부터 조금씩 바꾸는 태도를 견지할때 우리 사회가 좀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부터 변화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글을 써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