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호주에서 노점상을 시작하다. (1)

준비 스토리

by Linda




스물아홉

누군가는 죽기로 결정하고

누군가는 떡볶이를 먹기로 결정하는 나이


나는 호주로 왔다.



2019년 12월 5일, 대규모의 산불이 호주를 뒤덮던 날에 나는 브리즈번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워킹홀리데이에 일명 ‘막차’를 타러 왔고 내 첫 번째 행선지는 농장이었다. 그것도 일명 헬불처라고 불리는 호주 퀸즐랜드 지역에 있는 카불처라는 곳이었다.


성공 스토리였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도 한국에서 들고 온 돈을 축내며 헬불쳐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시간만 보냈다.


몇 달간 꺼지지 않았던 대규모 산불 때문에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도 더 줄어들어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어만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월부터 코로나까지 터지는 바람에 일거리가 없음에도 지역 이동도 못하고 농장에 갇힌 신세가 되었었다.


호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함께 워홀을 온 남자 친구, J 뿐이었다. 서로 믿고 의지하기엔 조금 어설픈 동갑내기인 우리가 호주에서 제일 먼저 겪은 일은 사기를 당하는 일이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가진돈을 모두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부터 누가 봐도 망해있었다.


그나마 J가 우버 배달이라는 것을 발견해서 70불짜리 자전거로 매일 배달을 뛰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야 할 위기에서 벗어났다. 힘든 시기, 어쩌면 우리 인생에 제일 바닥을 쳤던 시기를 함께 견딘 덕분에 우리는 아주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오해하지 말라. 이건 로맨스가 아니라 장사이야기이다. 돈독이 오른 사이가 됐다는 말이다.



어쨌든 각설하고 본론만 말하자면 내게 호주는 아주 뭣 같은 나라였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당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농장으로 향하는 하루 일과는 내가 한국에서 살던 삶이랑 너무 달라서 마치 현실이 아니라 어떤 기묘한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인내심이 바닥을 쳤을 때 코로나가 터져버려서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지 못해 견디다 보니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해서 농장에서 벗어나 시티로 가게 되었고 호주 대학원에서 전체 학비의 50%에 달하는 장학금 오퍼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호주라는 나라에 아는 사람들이 생겼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이왕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왔고 비자연장을 위해 농장에서 인고의 시간도 보냈으니 한 번 지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호주 정부가 뜯어가는 돈!!

이 돈이 너무 아까웠다. 피같이 번 돈 이제는 좀 모아 본다 싶으면 득달같이 뜯어가는 세금들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거기에 장학금을 받았어도 학비가 정말 비쌌고 그렇다고 그 값어치를 하는 퀄리티의 수업도 아니었기에 억울해서 뭐라고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시급으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으니 한 번 장사를 해보기로.



뭐 장사를 시작한 엄청난 이유가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고 그냥 진짜 돈을 엄청 벌고 싶어서 장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돈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호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넛을 팔아보고자 메뉴 개발만 6개월을 했다. J가 베이커리를 배운 적이 있고 한국에서도 호주에서도 직업이 바리스타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테이크아웃 집을 렌트하려 해도 최소 5만 불이 필요했기다. 집도 차도 없는 떠돌이 신세인 우리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메뉴만 개발해 둔 채 우리의 꿈은 한 발 두 발 멀어져만 가는 듯했다.



돈을 조금 모은다 싶으면 학비를 낼 시기고 다시 더 모은다 싶으면 비자 신청비를 내야 할 시기고 다시 좀 모은다 싶으면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날려먹고 (엥?)


사업 아이템도 있고 건강한 육신도 있는데 사업을 시작할 돈이 없어서 돈을 못 버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다소 우울한 마음을 안고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상들이 보였다.

운명 같았다. 가제보와 테이블 몇 개만 펼쳐두고 장사를 할 수도 있다니! 이거라면 우리도 가능할 것 같았다.


마켓 이름을 사진으로 찍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당연하게도 모든 설명은 영어로 되어있었다. 나는 중고등 6년에 걸친 영어 교육과 파파고에 의존해 최대한 정보를 해석해 냈다. 그 시절 우리에겐 챗지피티가 없었다.


대충 머리를 짜내어 해석해 보니 누구나 신청 가능한 곳이었고 보증금도 없어서 자리값으로 80불만 내면 장사가 가능한 곳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더니

드디어

드디어!!

진짜 소자본으로 시작 가능한 사업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켓에 필요한 물건들 서류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메뉴는 도넛에서 크로플로 바뀌게 되었고 거의 스무 개 남짓하던 메뉴들은 세 개로 줄어들었다.



여기까지가 우리 가게 welcome to croffle이 시작되기 전, 우리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