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호주에서 노점상을 시작하다. (2)

첫 번째 일요일 (1)

by Linda


테이블 두 개 놓고 빵을 파는 작은 노점상이라도 갖출 것은 갖춰야 했다. 필요한 물건들만 산다고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없었다. 장사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메뉴를 개발하고 가게명을 정하고 어떻게 팔지 생각하는 일? 이런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단 문을 연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사가 가능한 허가증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첫 단추도 정부의 허가를 받는 일이었다.


호주에서 개인이 음식 장사를 하려면 무조건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ABN 신청을 신청해야 한다. 한국에서 개인사업자등록을 하는 과정과 같다. 구글에 Apply for ABN Number를 검색하고 Sole trader로 신청하면 된다.


두 번째로 Food safety superviosr를 따야 한다. 이건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 따야 하는 기본적인 위생 자격증인데 온라인으로 딸 수 있다. 제대로 손 씻는 방법, 재료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 등등 기본적인 위생에 관한 것을 알려준다. 마지막에 동영상도 찍어야 하는데 이때 나를 감독해 준 사람이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아는 요리사나 음식장사를 하는 분이 계시면 도움을 받으면 좋다. 나는 일하고 있던 가게에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과정이 바로 food business registration 신청이다. 한국에서 음식점들이 받는 식품 관련 영업허가증과 비슷한 등록증인데 1,2,3년 단위로 신청이 가능했다. 코로나 기간에 장사를 시작해서 좋았던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신청비가 무려 면제! 공짜였다.



"이건 또 뭐야? "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나는 하루 만에 온라인으로 위생교육을 듣고 영업허가증을 받기 위한 사업자 등록(ABN)도 마쳤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관문인 영업허가증이었다. 처음 보는 어휘가 한가득인 신청란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계속 건물 도면도를 내라고 하는데 천막을 치고 그 밑에 테이블 두 개 놓고 장사하는 노점상한테 건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내가 보았던 즐비하게 늘어져있던 노점상들은 전부 어떻게 허가를 받은 것이었을까? 난생처음 영업신고서를 작성하면서 그것도 영어로 작성하다 보니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속으로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건물 도면도를 첨부하지 않으면 신청서가 넘어가 지가 않아서 나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피피티를 이용해 천막과 테이블을 그리고 설명을 첨부해서 보냈다.


일주일 뒤 내가 살고 있는 주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으니 날짜를 잡아서 직접 보여달라는 말이었다. 이때 나는 내가 잘못 적어내서 그런 줄 알고 메일로 더 자세하게 설명을 첨부해서 답장을 보냈다. 나의 어린아이 같은 메일에도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답변이 돌아왔다.


"귀하의 자세한 부연 설명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인스펙션을 필수 절차입니다. 가능한 날짜를 담당관과 상의해 주세요."


"제일 빠른 날이요."


그렇게 제일 빠른 날짜인 열흘 후 인스펙션을 받게 되었다. 열흘! 열 시간이 아닌 열흘이다. 이게 호주에서는 제일 빠른 날에 속한다.




빠르든 느리든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점검날이 왔다. 나는 인스펙션을 위해서 베란다에 천막과 테이블등 모든 재료를 세팅했다.


이사한 집에 넓은 베란다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가게를 차려놓고 어떻게 장사를 할 건지 설명만 하면 되었기에 진짜로 크로플을 구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나 구워줄 테니 먹어보랬는데도 싫다며 그냥 확인할 것들만 확인했다.


"우리 뭐 걸리는 거 없어?"

"응 다 괜찮네."

"그럼 바로 장사해도 돼?"

"허가증이 메일로 갈 거야. 그거 받고 해."

"빨리 나오는 거지?"

"응. 빨리해 줄게."


그렇게 일주일 뒤 메일로 영업허가증이 날아왔다. 열흘이 아닌 일주일이라니 빠른 일처리가 참 고마웠다. 눈이 빠져라 이것만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허가증을 받자마자 마켓에 신청서를 넣었다. 제발 저희에게 장사할 수 있는 자리를 주세요.


"어? 벌써 됐다."


당연히 일주일 넘게 걸릴 거라 생각했던 신청서가 다음날 바로 처리됐다. 이제 정말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후로 모든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수백 번 이미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일이었기에 필요한 재료도 메뉴도 시간계산도 끝나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만큼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가격을 정해야 해."



일요일에 장사를 해야 하는데 토요일 밤까지도 우린 가격표에 가격을 적지 못했다.


"얼마로 하지?"


"6불?"


"저번에 4불 하자며"



어떤 날은 6불을 받을까 싶다가 어떤 날은 싸게 4불만 받자고 했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치 내가 산 비트코인 가격처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암흑기를 선사해 준 비트코인 이야기도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더 풀어보고 싶다. 물론 그때면 제발 성공스토리로 바뀌어 있길 바라본다.


어쨌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백종원 선생님이 추천한 원가계산율을 따라서 가격을 책정하기로 했다. 결국 크로플 하나당 호주 달러 3.5불이라는 제일 작은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정말 싼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가격을 책정하고 나서도 여긴 호주고 인건비나 세금이 한국과는 다르다고 백종원 선생님의 계산법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J의 롤모델이 백종원 선생님께서 저렇게 가격을 책정하라고 결정해 줬는데. 일단 싸게 많이 팔면 된다는 마음을 안고 개시 첫날을 기다렸다.






대망의 일요일.

첫날이니 마켓이 운영되는 5시간 동안 딱 130개 정도만 팔아보기로 했다. 크로와상 도우를 미리 준비해 가야 했기에 필요한 개수를 예측하는 것도 일이었다. 우리는 알맞게 발효된 크로와상 도우를 큰 통 세 개에 차곡차곡 나눠 담았다. 그 외에 텐트, 테이블, 의자 등등 모든 준비물도 다 직접 들고 가야 했기에 짐을 잘 쌓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도 다 준비가 되어서 다행이다."


"그러게"


수레 위에 차곡차곡 쌓인 짐을 보니 폭풍 같았던 지난 일주일이 떠올랐다. 일요일 마켓에 내야 하는 80불은 잔디밭에 천막을 칠 수 있는 자격을 줄 뿐 아무것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필요한 것들을 빠짐없이 들고 가야 했다. 그래서 하나의 빠트림도 없게 하기 위해 텐트, 접이식 테이블, 발전기, 와플메이커 등등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작성해서 한 번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런데도 빠진 것이 있었다.


"푸드세니타이저!"

"그거 없어?"

"없어. 어쩌지?"


호주에서 음식을 팔려면 손소독제뿐만 아니라 음식 소독제라는 것도 구매해야 했는데 그걸 잊은 것이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자리를 배정받은 후인 수요일이었다. 한번 예약한 자릿세는 환불이 안되었기에 이제 와서 장사를 일주일 미룰 수도 없었다.


"마트에 없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근처 마트를 뒤져보았지만 다들 음식 소독제가 아닌 손소독제만 팔고 있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으로 엄청난 배송비를 지불하고 음식 소독제를 주문했다.


"제발... 제발.."


만약 시간 내로 배송이 오지 않는다면 개시도 못해볼 판이었다. 혹시라도 집에 사람이 없어서 다시 반송될까 봐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택배기사님을 기다렸다.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도 금요일 오후에 배송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거 하나 때문에 개시도 못해보고 자릿세만 날리는 건 아닌가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제야 정말 진짜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라고 마침표가 찍히면 좋았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해결해야만 하는 정말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우리에게는 이것들을 전부 싣고 마켓까지 갈 차가 없었다. 차를 위한 돈은 전부 학비로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당분간 차를 구매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으면 졸업 때까지 호주 정부에 돈만 바치다가 끝날게 뻔했다. 한 살이라도 젊고 아직 열정이 어쩌면 열정을 가장한 분노가 남아있을 때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다리는 사용하기로 했다. 차가 없으면 걸어서 가면 되지. 일요 마켓을 발견한 그날부터 우리는 그 주변에 셰어가 가능한 집을 알아보았다. 장사를 위해 집도 이사하고 손수레도 하나 구매했다.







첫 번째 수레



짐이 수레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에 마켓 시작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 수레를 끌고 나와서 여러 번에 걸쳐서 옮겨야 했다. 그냥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끌고 가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아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게다가 중간에 기찻길과 비슷한 트램길을 지나가야 했다. 첫날이라 요령이 부족했기에 기찻길을 건너던 중에 수레가 넘어지고 말았다. 허겁지겁 물건들을 주어 담는데 하필 소스통 하나가 길에 있는 홈 사이에 턱 하니 걸리는 바람에 트램이 오기 전에 그걸 꺼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글로 쓰니 엄청 불쌍한 장면 같은데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되려 웃음이 났다.


와플기계도 넘어져서 기계가 고장 났을까 봐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런 일로 개시도 해보기 전에 부정 타고 싶진 않았다. 만약 그때 기계가 고장 나서 장사를 못했다면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울상을 짓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장사 기록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와플 기계는 멀쩡하게 작동했다.



그렇게 가는 길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일요일 오전 9시 정각에 맞춰서 무사히 첫 개시를 할 수 있었다. 30.5살, 호주에 온 지 1년 6개월 만에 비록 일주일에 하루뿐일지라도 우리의 가게가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