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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 Jul 05. 2021

서른 살, 호주에서 노점상을 시작하다. (2)

첫 번째 일요일 (1)




장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산 후에

베란다에 노점을 설치해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메뉴도 더 연구해보고

이런저런 짓들을 하다 보니 소규모로 시작한다 해도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그리고 호주 정부는 정말 쓸데없어 보이는 자격증들을 돈 받고 발급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도 다 따다 보니 돈이 또 들었다.




이사한 집에 넓은 베란다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만난 지는 5년이 넘었더라도

함께 산 지는 이제 겨우 1년 된 남자 친구에게

매일 돈돈돈 거리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날까지도 얼마에 크로플을 팔지

결정하지 못했기에

우리의 대화는 계속 돈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 하는 노점상을 준비하는 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금액을 투자했기에

가격을 고민할 때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고 싶었다.


우리 둘 다 “내가 이렇게 고생한 게 있고 투자한 게 있는데 그 금액을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에

가격을 낮게 책정하자니 너무 속이 쓰렸다.



어떤 날은 6불을 받을까 싶다가 어떤 날은 싸게 4불만 받자고 했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치 내가 산 비트코인 가격처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암흑기를 선사해 준 비트코인 이야기도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더 풀어보고 싶다.  

물론 그때면 제발 성공스토리로 바뀌어 있길 바라본다.



어쨌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백종원 선생님이 추천한 원가계산율을 따라서

가격을 책정하기로 했고


크로플 하나당 호주 달러 3.5불이라는

호주에서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정말 싼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가격을 책정하고 나서도

여긴 호주고 인건비나 세금이 한국과는 다르다고

백종원 선생님의 계산법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쩌겠는가 남자 친구의 롤모델이 백종원 선생님께서 저렇게 가격을 책정하라고 결정해줬는데

그냥 싸게 많이 팔면 된다는 마음을 안고 개시 첫 날을 기다렸다.








대망의 일요일.


우리가 가는 일요 마켓은 9시부터 2시까지 딱 5시간만 운영하는 곳이었다.


첫날이니 5시간 동안 딱 130개 정도만 팔 기로하고

미리 준비한 크로와상 도우를 큰 통 세 개에 나눠 담아 들고 갔다.

그 외에 텐트, 테이블, 의자 등등 모든 준비물도 다 직접 들고 가야 했다.


일요일 마켓은 정말 딱 자리만 제공해주는 대가로 80불을 받는 것이었다.

여기에 보험비까지 내서 총 95불을 하루 장사를 위해 내야 했다.

그리고 보증금이 없는 대신 2주 치 자릿세를 한 번에 계산해야 했다.


일단 자릿세까지 지급하고 나면 무를 수 없기에

우리는 텐트, 접이식 테이블, 발전기, 와플메이커 등등

필요한 물품을 자리를 지원하기 전에 전부 미리 구매했다.


그런데 아뿔싸, 호주에서 음식을 팔려면 손소독제뿐만 아니라 음식 소독제라는 것도 구매해야 했는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자리를 신청한 후인 수요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근처 마트를 뒤져보았지만 다들 손소독제만 팔고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으로 엄청난 배송비를 지불하고 food sanitiser를 주문했다.



만약 금요일까지 배송이 오지 않는다면 일요일에 개시도 못해볼 판이었다.

혹시라도 집에 사람이 없어서 다시 반송될까봐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집에서 택배 기사님만 기다리며 꼼짝 안했는데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도 금요일에 배송이 왔다.


그제야 정말 진짜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라고 마침표가 찍히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게는 이것들을 전부 싣고 갈 차가 없었다.

차를 위한 돈은 전부 학비로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빠져나 갔기 때문에 당분간 차를 구매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으면 졸업 때까지 호주 정부에 돈만 바치다가 끝날게 뻔했다.

한 살이라도 젊고 아직 열정이 (어쩌면 열정을 가장한 분노가) 남아있을 때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업 시작 한 달 전부터 집도 일요 마켓이 열리는 곳 근처로 이사했고

짐을 옮기기 위한 손수레도 하나 구매했다.



짐이 수레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에 마켓 시작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 수레를 끌고 나와서 여러 번에 걸쳐서 옮겨야 했다.





첫 번째 수레




그냥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끌고 가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아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게다가 중간에 기찻길과 비슷한 트램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하필 그때 수레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겁지겁 물건들을 주어 담느라 진땀을 흘렸다.


심지어 소스통 하나가 길에 있는 홈 사이에 턱하니 걸리는 바람에 기차가 오기 전에 그걸 꺼내느라 애먹었다.


글로 쓰니 엄청 불쌍한 장면 같은데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되려 웃음이 났다.


하필 와플 기계도 함께 떨어지는 바람에 기계가 고장 났을까 봐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수레가 엎어지는 해프닝 덕분에 한바탕 웃고 마저 짐을 옮길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기계가 고장 나서 장사를 못했다면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울상을 짓고 있겠지만 다행히도 와플 기계는 멀쩡히 작동했다.



그렇게 약간의 트러블이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일요일 오전 9시 정각에 맞춰서 무사히 첫 개시를 할 수 있었다.



30.5, 호주에   1 6개월 만에 

비록 일주일에 하루뿐일지라도 “우리의가게가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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