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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bae lee Feb 04. 2024

An Ode to Kakao Ventures (1)

Closure 가 필요했던, 애정했던 직장

2024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새 직장으로 옮겼구요. 지난 6~7개월이 빠르게 지나갔네요.

작년 하반기는 바쁜 듯 바쁘지 않은, 바쁘지 않으면서 바쁜, 쉼의 기간이었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며, 그리고 소소한 행복 달성 및 신체건강 보전에 리소스 투입을 최대한 많이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6개월이 그만 순식간에.


퇴사는 했었지만, 감사하게도 5% 정도의 업무를 연말까지 유지해 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카카오벤처스의 파트타이머로 잔류하며 더 마음 편하게 funemployment 의 기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금흐름이 낮아진 대신, 일을 줄이고 시간을 많이 벌었으니, such a good deal. 그러다가 이제 드디어 다음 거취가 정해진 시점인 2024년 2월이 되어서야 송별회 환송도 받고, 마음 속의 떠나보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분들은 계속 연락하고 지내겠죠.)




사실,

카카오벤처스가 직장으로 어땠는지에 대한 “찐” 후기를 쓸 지를 몇 개월간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하늘 아래 완벽한 사람 없고, 조직 없으며, 국가도 없고, 절대 없지요.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이직을 하기로 한 데에는 결국 뭔가의 부족함, 또는 아쉬움이 있기에 운신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압도적으로 장점이 더 많았던 회사와 팀과 함께 하면서 저에겐 적어도 한국에서는 최고의 직장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경험을 하고 나온 곳이기 때문에, 이 글의 목적과 영향을, 그 어떤 인지도 높은 회사의 뒷담화를 세상에 전하거나 또는 꼬투리를 잡힐 만한 화살로 돌아오게끔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모회사를 상장사로 두었기 때문에, 특히 관심을 많이 받는 “국민 브랜드” 와 엮여 있는 자회사이기 때문에, 한 때 멤버로서 저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 온전히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정리 및 결심을 해 나가기 위한 어떤 과정으로서, 미니시리즈 에필로그 같은 느낌으로, 적어 봅니다.


저는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어찌 보면 미친 듯이 순진한 생각을 갖고 이 업계에 처음 입성했습니다. 2014년 까지 엔지니어로서의 삶에만 치중해서 보내왔던 과거 30여년의 시간은, 그리고 SKY/카이스트/포스텍 등 국내대학 출신이 아닌 해외지방대 출신으로서의 저는, 한국의 벤처캐피탈 업계의 상황과 분위기를 아예 몰랐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 때의 시대적 특성 상) 정보도 적었으며, 그렇다고 인접산업 또는 그 원류인 금융업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상태로 순수히 “호기심과 열정과 전향적인 의지” 만을 어필해서 구직에 성공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심사역이라는 역할을 해 볼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얻었다고 만족하고 안도하면서 (거의) 원점/바닥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흑백카메라 뷰파인더로만 (네 말이 안됩니다만… 최대한 유사한 비유를 하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총천연색으로,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들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기 시작한, 그런 제 3의 눈이 떠진 느낌.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한 번도 ‘아 회사 가기 싫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입장이었던 거죠.

돌이켜 보면, 세상에 이런 직업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30대 (또는 운 좋으면 20대) 직장인으로서, 각종 산업과 각처의 기업체 대표이사들을 만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물론, 여의도의 각종 자본시장의 전문가들, 컨설팅펌과 자문사들, 언론사, 정부부처, 재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펀드 비즈니스이다 보니 펀드에 출자를 할 수 있는 수준의 dispensable income/asset 을 보유한 사람들과 기업/기관의 사람들을, 본인이 준비만 된 시점이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또 원한다면 밤낮 없이 원하는 만큼 거대한 정보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 남들보다 빨리, 많이, 또는 좀 더 독특한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되며, 또한 부수적으로 그런 바깥활동들을 하는 과정에서 또 재밌는 체험, 맛있는 경험, 값진 모험을 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저에게 한정해서 좀 더 풀어 보면, 제 위치와 제가 있던 곳의 위치는 참 독특했습니다. 책이든 MBA 케이스스터디든 뭐든 한 가득 담을 수 있을 만한 다양하고 재미있던 이벤트와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모회사가 상장사인 것 때문이 크고, 또한 그 회사가 스타트업이었다가 빠르게 성장해서 20년이 안되는 기간 안에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될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많이 겪었던 것도 있고, 또 벤처 생태계의 폭발적인 성장이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의 빅뱅 충돌로 인해 가능했었던 그 앞단부터 몸을 담글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러한 원인들 때문에 제가 지난 8여년간 보내 왔던 시간을 구간 별로 뜯어보면, 참 뭐가 많습니다. (이걸 다 풀 수 있을지, 풀면 어떻게 되는지는 감당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변이 있지 않는 한, 그냥 묵혀 두고 사석에서만 가끔 꺼내는 걸로 일단 마무리.)


케이큐브벤처스를 처음 들어가서, 1년 반의 기간동안 저는 “아 심사역의 삶과 역할이 이런 거구나” 에 대한 감을 천천히 잡아갔습니다. 카카오에 끌려 가서는 산업 복귀를 다시 한 셈이기 때문에, 그 땐 일반기업의 non-R&D 조직들에 처음으로 있어 보며 대략 어떤 식으로 역할과 권한 배분 그리고 의사결정이 되는지를 감을 잡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막판엔 사업개발 부서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맨 땅에 헤딩을 하며 (결국엔 패작으로 증명이 되기는 했지만) 신사업 추진 및 Biz Dev 에 대한 감도 잡아 볼 수 있었죠. 이 모든 게 다 의도대로 전개된 커리어 수순은 아니고, 진짜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그렇게 흘러 다니게 되었던 점, 다시 한 번 강조.

그러고 나서 (카벤으로 리브랜딩 된) 자회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도 사실 전혀 예측 못한 이유 때문에 복귀를 하게 되었고, 어쨌든 저에겐 회사가 아무리 그룹편입 이라는 빅이벤트가 있었더라도, 그 전/후 (즉 케이큐브 vs. 카벤) 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동일한 위치와 상황 그리고 분위기의 조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주변에게 “나 친정으로 복귀했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전에는 단일 주주가 모회사의 특관인인 개인이었고, 이제는 모회사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controlling owner 는 동일하고, 또 우리의 위치와 역할이 창투사 자체가 주주구성이 바뀌었다고 해서 변경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여전히 펀드 비즈니스에 몰두한, 그리고 어떻게 하면 창업가에게 잘 다가가고 같이 훌륭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 되었던, 창업가들을 위한 회사였기에, 솔직히 모회사가 뭐라고 하든 계열사들 상황이 어떻든 우리는 “벤처 생태계에만 신경 쓰고 다니면 된다” 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가 만일 카카오를 위한 투자를 집행시키기 위해, 그 간의 회사-회사 간의 관계를 바꾸고, 팀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바꾸게끔 어떤 외적인 변화를 주입하기 시작한다면, 하루아침에 가능하게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이유 때문이죠. 쉽지 않을 뿐더러, 어쨌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회사의 입장과 여건도 개선되고 바뀌어야 할 텐데, 제가 봤을 땐 절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어쨌든, 친정 복귀를 한 제게 신아 대표님이 주문해 주셨던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강하게 있습니다. “사업개발도 해 봤으니, 앞으로 카벤을 위해 절반은 투자팀 심사역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사업개발 담당의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게 일반 창투사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대체로, “넌 심사역이니까 닥치고 투자만 잘 해” 라고 하기 쉽상이죠. 신아대표님에겐 그런 비전과 욕심이 있으셨던 걸로 전 이해했습니다. 이 조직은 최대한의, 그리고 선진적인, 모델로 가져가기 위해, 어떤 개개인의 장점과 능력치가 도드라져 있다면 그걸 최대한 활용하는 게 맞다는. 실제로 저 말고도 다른 미들급 심사역들의 경우, 전 직장/업계에서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일종의 스페셜리스트 기능과 권한을 부여했었습니다. 엄지척.




그리고 또 짚어야 할 것은, 제가 본사에 가 있는 동안 그래도 카벤 분들과는 잘 지내왔기 때문에, 다시 러브콜을 불러 주신 점의 이면에는, 어쨌든 엄밀히 복학생이기 때문에 심사역으로서의 gap 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와 더불어, 신아대표님이 주신 미션, 해외투자를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나가서 개척해 보라는 그 주문이 있었고, 저도 마음 동해서 돌아갔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투자를 많이 집행하지는 않게 되면서 1) 무작정 나가서 부딪혀 보고 감 잡아 보는 그런 순간과 역할에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었던 점, 그리고 2) 혼자서 이런 숙제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별동대 TF 같이 유니크함을 가져갈 수는 있지만, 결국 혼자 외롭게 알아서 최소한의 리소스로 정해지지 않은 길을 더듬더듬 밟아 나가야 한다는 점, 이런 단점? 들이 있었습니다. (누굴 탓 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투자팀 소속으로 여전히 외부에 비쳐지고, 또 결국 투자와 회수에 대한 성과에 대한 미련을 아예 놓을 수 없다는 점은, 어찌 보면 제 입장에선 리소스가 분산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리벨리온 같은 좋은 팀을 만나서 초초기 투자부터 시리즈A 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점은 천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제가 딜 담당 파트너도 아니었고, 또 제가 잘 해서 저희 투자가 성사 되고 회사가 빠르게 치고 나가는 그런 기여를 했다고 하기엔 말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제 마음 속에서는 항상 “나의 정체성은 그래서 이 조직에서 무엇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 무엇인지” 에 대해서 큰 물음표가 몇년 간 점점 더 마음 속에서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또 2019년 즈음에 저에겐 하나의 큰 행운이 떨어졌습니다. 정확힌 저한테 먼저 온 게 아니라, 카벤을 먼저 찾아 든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가 그 one-off 프로젝트의 담당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제 공로로도 인정 받게 되었고, 또 돌이켜 보면 리벨리온 투자 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만의 성과가 되었습니다. 그 덕에 저도 한숨 놓게 되었다고 할까요, 이게 나만이 수행하고 캐리할 수 있는 고유의 역할이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조직에서의 포지셔닝도 명확해 지고, 앞으로 내가 계속 주도적으로 빌드업을 하다 보면 나도 좋지만 우리 회사도 다음 단계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냐면, 바로 해외 LP 와의 파트너링 (즉 출자 유치) 입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GP들, 즉 투자사 투자업 종사자들, 그리고 그 외에 이 바닥의 생리를 좀 아는 분들은, 한국의 역사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게 보였던 양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변환점이 찾아와 주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성숙해지고 진일보 할 수 있는 그런 자생 원동력을 내부자들끼리만 만들기에는 너무 벅차다고 생각합니다. LP들이 그 간 (그들도 그들만의 이유들과 전례와 스토리가 엄청나게 많겠지만서도) 그들만의 어떤 틀과 관행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GP들과 engage 해 왔다면, 이걸 하루 아침에 선진적으로 바꾸기엔 너무 힘듦니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결말은, GP들의 펀드들이 잘 되고, 단순히 수익적 측면의 성과도 받쳐줘야 하지만, 소위 explainable AI 처럼 GP들의 철학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단점을 어떻게 극복해 가면 시장에서의 입지를 계속 다져 나갈 건지를 홍보하고 설득에 활용한다는 전제 하에, 해외에서 그 간 더 많이 오래 LP출자를 해 온 더 큰 손들을 점점 더 한국으로 많이 초대하고 펀드 참여를 성사시켜서 결국 펀드 운영 practice 를 고도화 하는 방식으로 가야지만 이 업계가 장기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해외의 연기금/국부펀드/패밀리오피스/그 외 대형 플레이어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고, 강대국의 대도시에서 거점을 두고 활동하지만,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할 때는 그야말로 top (글로벌 매크로) down (펀드 레벨 전략) 을 다 보아 가면서 수십 수백 수천 조의 포트폴리오를 운영합니다. 벤처캐피탈은 그 중에 정말 약소한 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좀 더 안정자산이라던가, 또한 대체투자로 분류되는 그리고 벤처투자의 좀 더 포괄적 상위 개념인 사모투자의 하위항목으로 존재하며, 그래도 몇 차례의 벤처 붐 및 인터넷/모바일의 파급력 덕에 이제는 개인투자처로서도 점점 인기가 올라 온 그런 분야입니다. 어쨌든 이런 큰 그림 속에 맞물려 돌아가는 업인데, 한국시장만 갈라파고스 처럼 폐쇄적으로 [한국GP x 한국LP] 의 틀로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우아한 형제들 / 쿠팡 / PUBG 등의 기업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한국 시장도 이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준이 된 겁니다.


아까 이야기했듯, 해외 유수 LP들은 정말로 넓게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한국은 정말로 작은 점에 불과합니다. 한국 바로 옆 나라들 - 일본 및 중국 - 의 시장 크기와 입지와 비교하기엔 아직 너무나 작습니다. 특히 벤처투자 업황을 볼 땐, 빨려 들아가는 돈의 수준이, 일본은 조용하고 보수적인 편이라 내수시장의 규모에 비해 아직까진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의 경우 지난 십수년 간 dozens of $B 를 흡수했던 막강한 시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자금 위주의 겨우 ~10조원 되는 규모의 한국 벤처시장은, miscellaneous line item 일 수 밖에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의 부동산 사태가 있기 전 부터, 중국과 미국간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자금이 더 이상 중국으로 흘러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많던 자금은 결국 인접시장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예를 들어 중국에 출자하려고 잡아놨던 공제연금의 예산을 갑자기 미국시장으로 돌리게 된다면, 오히려 미국시장에 대한 exposure 가 너무 커져서 리스크라고 봅니다. 그래서 최대한 유사한 대안으로, 아시아 내에서 떠오르고 있는 시장을 찾아 투입을 하려고 하겠죠. 이런 시대적 운을 한국은 몇 년 전부터 등에 업고 움직이기 시작했었습니다. 이렇게 중국 대비, (그리고 투자 후 회수가 생각보다 별로라는 인식을 주게 된 범 동남아 시장 대비) 고급 인력들이 탄탄한 뭔가가 있어 보이는 기업들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또 더불어 외화 보유측 관점에서 한화가 저렴해 진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쿠팡 같은 기업들이 해외 그것도 뉴욕 상장을 하게 된 점, 이런 요소들이 맞물려서, 동떨어져 있던 한국 시장이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 또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하지만 셀트리온 같은 기업들, 그리고 또 엄밀히는 카카오와 네이버의 스핀오프 회사들 등 많은 대기업집단 종속 자회사들도 거대한 외화 투자를 받기 시작한 점도 같이 한다고 봐야죠.)

그런 상황에서, 카벤은 조용히 열심히 우량 기업들을 발굴하고 있었고, 한국 시장에서 인정을 빠르게 받았던 지라, 한국의 규모 있는 사모펀드들에만 출자했던 어느 해외의 국부펀드가 저희를 갑자기 소개 받아 연락해 오게 되었습니다. 오?




…… 걱정했던 대로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여기에서 끊고 한번 더 글을 써야겠어요.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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