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ated Risk, Taken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제 커리어 업데이트에 대해 간략히 써 보려고 합니다.
저저번 글에서 “새 직장을 시작했다” 라고 언급했던 게 전부였죠. 지금 회사나 분야에 대한 자세한 소개 보다는, 이직의 과정에 대한 서술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통상 이직을 할 때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상수로 고정을 하고 (i.e. 동종업계 내에서 직간접경쟁사로 이직, 인접산업으로 옮기되 예전 직장 또는 기존 산업의 플레이어들이랑 노하우를 살려서 사업을 진행하는 역할로 변신) 변수를 최소화 하는 게 안전하므로 상식적이라고 할 만 한데, 전 어쩌다 보니 4가지의 변수를 도입하는 이직의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럴 줄은 진짜 몰랐네요.
평생을 risk averse (위험기피) 성향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안정을 추구하고 살아 오면서, 또 그 안에서 가끔 큰 변화를 주기는 했었지만, 제 나름의 이성적 논리적 영토 내에서의 계산된 운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엔지니어링에서 벤처캐피탈로 뛰어들었을 때에도,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서” 나중에 투자검토에 활용할 생각이었고, “채용/구직의 기회가 많은 것 같아 보여서” 라는 생각에 산업의 전체 흐름이 양적 그리고 질적 성장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본능적 짐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2023년에 천천히 아름답게 퇴사 및 이별을 진행하게 되면서, 그 기간 동안에 스스로를 돌아 보고, 과거 경험에 비추어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이나 역할에 대해서 구체화 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직하는 사회 초년생도 아닌 만큼, 그리고 쌓여 온 연차와 사회적 위치? 등을 생각했을 때, 숙고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열심히 새로운 기회를 찾아 보진 않았고, 사실 22년 말에 합류 의사를 처음으로 가볍게 물어 본 지금의 팀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23년 내내 천천히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그런 여건이 있어 주었기에, 좀 더 확신을 갖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 보면, 8년 넘게 범 카카오 울타리 안에서 이런 역할 저런 미션을 맡아 근무를 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얻었던 깨달음 또는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업에 대한 관점 보다는 근로자로서의 관점?)
1. 성장하는 산업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
2. 더불어, 산업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조직에 함께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
3. 초년생의 경우, 본인의 강점과 초기 트랙레코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인지가 중요
4. 초년생이 아닐 경우, 이미 확립된 강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주어지는 환경인지가 중요
5.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합당하게 주어지는 여건인지가 중요
6. 냉정하게, 지극히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몇 가지를 마음 속으로 정해 놓고, 그 몇 가지 중 몇 개가 보장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경우, 다른 옵션을 찾아 나설 각오를 미리 다져 놓아야 함
얼핏 읽어 보시면 다 맞는 말 같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 당위성에 대해 부연하진 않아도 되겠죠.
1번의 경우, 저는 완전히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이라는 시점은, 벤처투자를 받았고 서비스 인지도가 올라가거나 기업가치가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지면신문에도 오르기 시작했던 때였고, (아마도) 벤처펀드들에게도 돈이 많이 풀리기 시작했던 상황이었으며, 해외 벤처투자 Practice 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갑갑하고 unethical 방식으로 고리대금에 가까운 투자를 해 오던 구 창투업계의 관행도 고쳐지기 시작했고 (i.e. 대표이사 연대보증, 1x 를 초과하는 Liquidation Preference), 해외 경험을 가진 분들이 시작한 투자사들 (알토스, 스파크랩 등) 또는 창업자 출신의 투자사들 (본엔젤스, 더벤처스)도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던 타이밍이었기에, 돌이켜 보면 그 때만큼 가슴 뛰는 타이밍이 있었나 싶어요.
그런 요건들이 있어 주었기에, 당시에 저 같은 공돌이 출신의, 투자 경험 없지만 인품(ㅎㅎㅎ)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그리고 Total Compensation 의 40% 를 깎아서 까지 대기업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장을 나와서 커리어 피벗을 하고 싶었던 초짜 심사역 후보에게 채용의 기회도 생겼던 겁니다. AI 라는 키워드가 이렇게까지 핫해지기 전부터 조용히 인공지능 기술들을 활용하겠다고 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팀들을 앞으로 많이 만나야 할 수 있던 케이큐브벤처스 라는 신생투자사 입장에서도 모험적인 채용을 했던 거라고 봅니다. (“루닛이라는 팀에 묻지마 투자를 했었는데, 공동창업자들이 다 공대생들이고 사업아이템도 그런 쪽이다 보니, 문과생 출신의 심사역 입장에서 힘들어 하더라” 라는 에피소드도 기억납니다. 루니콘 만세.)
2번의 경우, 전 사람 운이 좋았습니다.
누구 하나를 특정하는 건 아닙니다. 단 당시에 저의 면접을 봐 주신, 지금은 대부분 계시지 않은 분들이 저를 좋게 봐 주셨고, 또 맞이해 준 다른 그 때 그 시절 분들도 제겐 다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저의 잠재성을 인정받은 거고, 캐치업할 수 있는 긴 시간을 주신 것, 행운이지요. 물론 오래 기다려 줘야 하는 초기투자 사이클의 cadence, 그리고 또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기에 가능했던) “카카오 라는 신선한 스타트업, 상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다른 그런 엔터프라이즈” 를 창업자로서 그 위치까지 끌어 올린 김범수 의장의 개인 회사라는 보호막 하에, 오랜 기간 동안 케이큐브벤처스는 소위 인큐베이팅이 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벤처투자사와는 완전히 출발점과 각별한 문화, 그리고 공격적인 묻지마 투자 스타일을 통한 차별화, 이런 요소들 덕에 우량 기업들에 많이 투자할 수 있었지요. 특히, 2015년부터 몇 년간의 빈티지는 매우 좋았습니다. 당시에 낮은 가치에 투자가 되었고 잘 성장했고 또 성공적인 회수까지 이어진 회사들이 많습니다 (i.e. 두나무, 넵튠, 루닛 등). 그런 초기 트랙레코드는 벤처 세상 누구나 부러워 할, 넘사벽 존재감입니다. 그런 대표주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이고, 자랑이지요. … 자꾸 쓰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자제하겠습니다. :)
3번은 저에게 미해당이므로, 4번 관점에서 볼 때, 결국 꽃을 피워 볼 수 있었던 가능성 정도는 확인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벤처캐피탈 업계 종사자 분들이 지금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가 처음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영어가 되고 또 국제경험과 감각이 충만한 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서 꽤나 늘어났다고 봅니다. 특히 신생 VC의 창업멤버 또는 초기멤버들이 완전히 유학생 출신들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이제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더욱 더 많아져야 겠죠.
아무튼 그 덕에, 그리고 외국 자본시장의 변화 덕에, 한국 VC업 자체의 성장의 발판도 마련이 되는 걸 확인했고, 해외자본이 한국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건 물론 펀드들을 통한 간접투자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겁니다. 그 물꼬를 트는 데에 제가 앞장서 봤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구요.
5번은. 음. 저에겐… (이제야 말할 수 있다?)
회사의 신사업에 해당하는 “해외고객들(출자자들) 베이스 넓히기 & 외화 기반의 해외펀드를 설립해 보고 한국투자 해외투자에 다 활용해 보기” 라는 부분에 욕심이 났던 저로서는, 작게는 회사 내의 모든 분들이 저의 이런 관심과 노력에 대한 이해도 또는 appreciation 을 모두가 고르게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는 했는데, 옆 사람이 정확히 뭘 관심 갖고 다니는지, 또는 기존에 아무도 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 시야 밖이고 또 그게 때로는 얼마나 막막하고 외로운 고군분투의 길인지를 전혀 몰라 주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특히 저는 리포팅 라인에 있어서 저의 윗분이 이러한 initiative 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맨 윗분인 대표님만 관심 과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도 생각합니다. Oh well.
그리고, 더 크게는, 결국에는 회사의 주주가 이런 점에 무심했고, 또 싹을 잘라 버리는 결단과 조치까지 내려졌으니, 말 다했죠.
그래서 제게는 6번 마지막 포인트가 현실로 다가왔던 걸로.
이제, 저 위에 이야기한, 변수와 상수 이야기로 넘어 가겠습니다.
저에겐 이번 이직은 특별했습니다. 왜냐면, 다음 네 가지를 바꿔 가면서까지 이직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위험기피적 성향을 지닌 이인배가 들으면 놀랄 일일 지도요.
a. 분야 = 벤처캐피탈에서 글로벌 블록체인/Web3 플랫폼사업으로 변경
b. 역할, 직책 = 프런트오피스 투자심사역에서 백오피스 오퍼레이션으로 변경
c. 지역, 국가 =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변경
d. 조직 형태 = 대기업 안정적 울타리에서, 스타트업으로 변경
지금 직장의 근무조건이라던가, 정확히 무슨 사업을 하는 곳이라던가, 에 대한 이야기는 미루거나 배제하는 걸로 하고, 순수하게 이직의 과정과 내용에만 집중해 보면, 이런 논리로 이직을 접근하게 되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분야를 왜 벤처캐피탈에서 블록체인으로 바꿨는가?” 이 부분이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질 부분일 것 같아요. 저도 예상 못했네요.
전 벤처캐피탈 업무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제 이전 글들을 보시면 저의 그 마음이 많이 투영되어 있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에는, 한국 회사에서 한국적 틀에 맞는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큰, 그리고 한국 시장에서의 저의 최선과 최고의 위치를 찾아 보는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에는 저는 벗어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국 벤처캐피탈에서의 끝판왕이 되려면?” 에 대한 답은, 결국 두 가지일 텐데요, 한국 자본시장에서의 펀드매니저로서의 입지도 다져야 하고,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의 존재감도 계속 키워 나가야 합니다. 저는 전자에 대한 자신이 사실 많이 없기도 했고, 연차가 쌓이면 쌓일 수록 보이는 게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럴 수록 제겐 그 길에 대한 매력이 점점 떨어졌다고 봅니다.
이런 겁니다. 결국 한국에서 한국형 펀드를 만들어 나가려면, 한국의 보이지 않는 큰 손들 (쩐주 및 관료들 및 언론 및 모든 기타 이해관계자들) 과 잘 지내야 하고 더 강결합된 공생 관계를 이뤄 나가야 하는데, 계속 한국에서 나고 자란 분들 대비 더 잘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소위 돈을 계속 잘 따 오고, 썰을 잘 풀고, 외연적으로 뒤쳐지지 않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대면하기 싫은 유형의 사람들이나, 술자리 라던가, 요식행위에 최소한의 성의 표현 또는 참여 라던가, 이런 비효율적이고 (외국에서 봤을 때) 비생산적인 일들을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국가 사회에 따라 어느 정도 그런 “기름칠” (미국에선 elbow greese 라고 표현하기도 함)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이 무릇 사회생활 이거늘, 한국에서의 그 path 는 좀 더 뻑뻑하고 고된 길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캐릭터는 언젠간 다시 영어권 사회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지난 몇 년간 무의식적으로 커져 나갔던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분야는, 종사자들은 아직 ”we are still too early” 라고 할 정도로, 아직 고착된 부분이 많이 없습니다. 문제도 많고, 회자되는 그런 핫이슈들 제조기이기도 합니다. 산업 자체가 극복해야 할 포인트이죠. 하지만, 아주 젊으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 빠져들고 있는 분야입니다. 입사 후에 계속 똑똑한 분들이 들어오고 있어서, 학벌에서도 빠릿함에서도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 아무튼, 그런 20대 30대 젊은 인재들 입장에서 왜 매력적인지는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으나, 단순히 지적 호기심 때문일 지도, 아니면 어떤 상위 목표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또는 둘 다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어쨌든 인재들이 모이고 있는 점과, 그리고 “인재가 모이는 곳에 큰 길이 있다” 는 제 생각이 있었기에, 마음을 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테크 베이스의 저로서는, 사실 좀 더 잘 알고 싶은 그런 호기심도 있었고, 또한 “이게 만일 먼 미래에 세상을 근본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런 기술 기반의 움직임” 이라면, 아직 이르다고들 말할 타이밍에 운신을 해 봐야 들어가서 피부로 배워 볼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역할을 왜 대뜸 오퍼레이션 쪽으로 전향했는가?” 이 부분에서도, 저도 예상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분들이, 작년까지 제가 카카오벤처스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오는 과정에서, 단순히 (투자)팀 내에서만 잘 지낸 게 아니라, 다른 관리팀 홍보팀 분들과도 똑같이 잘 지내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업무도 가끔 크로스오버로 진행하기도 한 점들이, 일종의 힌트였다고 생각합니다. 홍보팀과 잘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그 분들의 밝은 에너지가 사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고, 또 그 분들이 합류하시기 전 시점에 (중간에 홍보팀 멤버 교체가 있었어서) 공백이 생겨서 제가 1년 정도 PR 이메일 계정을 맡아서 투자기사 보도자료 배포도 직접 기자들에게 뿌리고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관리팀 분들과 잘 지내게 되었던 이유는, 처음에는 사무실에 항상 붙어 계실 수 밖에 없는 그런 업무를 하고 계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사도 많이 하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었고, 또 그 분들이 몇 년 전 기준으로 회식을 아예 안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제가 옆에서 부추겨서 회식도 주최해 드리고 식당도 잡아 드리는 오지랖을 많이 부렸어서 쫀쫀한 관계를 가져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이하죠. 옆 팀 회식을 대신 열어 주다니. (당시 관리팀 모든 분들이 팀장님 빼고 젊은 여성분들이었고, 팀장님은 섬세한 INFP 이셔서 ‘내가 회식을 하자고 하면 다들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이야기 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굳게 마음을 먹을 정도로 또 유별난 분이셨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지켜 보던, 제 와이프 포함 주변 분들은, “넌 사실 벤처캐피탈 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COO로 가도 잘 할것 같다, 안살림에 관심도 많고, 사람들 챙기는 거 좋아하고, 꼼꼼하고 체계적인 편이고, 무게중심도 잡아줄 것 같고, 등등“ 이런 류의 피드백을 가끔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저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었겠죠. 지금 회사에서 처음으로 그런 역할을 염두에 둔 소프트오퍼를 주었을 때, 속으로 ’오 이게 현실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저도 신기했습니다. 숙명이었나 봅니다.
"왜 싱가포르?" 라고 하시면, 전 "당연한 수순" 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영어권 국가/도시이고, 아시아권이며, 다들 잘 아시다시피 안전하고 깨끗하고 소득수준 외에도 다른 여러 수준이 높은 선진국 이니까요. 또 과거에 테마섹 자회사 분들과도 일해 본 경험이 너무너무 좋았고, 또 결정적으로 와이프를 처음 만난 장소도 싱가포르였기 때문에, 제 마음 속에는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가서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또 가서 네트워크도 제대로 넓혀 보고 싶었습니다. 제 주변 분들도 요새 많이 건너 가거나, 건너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시스템적, 제도적 장점은 굳이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검색하면 많이 나올 듯.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서 왜 스타트업으로?" (특히, 이 나이에? ㅎㅎㅎ)
이 부분은 사실 저에게 일종의 컴플렉스? 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마음 속 그늘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너무 안정형 커리어를 쌓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40% 를 깎아서 대기업에서 신생투자사로 이직을 감행한 것도 리스크테이킹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너무 잘 풀렸고, 또 결과적으로 그 회사가 대기업 자회사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다시 대기업 생활권으로 편입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큰 그림에서 볼 땐 전 지금까지 안정을 추구해 온 직장인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오면서 (술 마시는 것 또는 저랑 맞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잘 지내야 했던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큰 모험과 위험을 감행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누구와 어울리고 누구와 친하냐에 따라서 "세상은 이런 거 같던데?" 라는 관점이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점점 갈 수록 더 진취적이고, 모든 걸 던지고, 모든 걸 베팅하는 분들과의 관계를 더 많이 쌓아 나갔기에, 나를 둘러 싼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고 자각하기 쉬웠던 것도 있습니다. 인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지도요. 하지만 어쨌든, 해가 지날 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과 세상이 열리고 보였던 제 입장에선, 어느 순간엔 "나도 대기업형 직장과의 거리를 둘 날이 올 거고, 와야 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타의 또는 시간순이라는 장치에 의해서, 정년은퇴가 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나는 게 될 수도 있지요. 전 후자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대기업형 인재" 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에 앞으로의 몇 년을 보낼 것 같습니다. 기쁜 마음으로요. :)
그래서,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이 유일한 답이었나?"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네요"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제겐 많은 조건들이 맞은 그런 취업의 기회였고, 제가 직접 창업하고 총대를 매는 1인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훌륭한 테크팀이 이미 열차 트랙을 깔아 나가면서 그 위에서 달리는 열차를 조립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면 되었기에, 마음 놓고 올라탄 겁니다. 글로벌 팀이고요. 한국인 멤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동창업자들이 외국인들입니다. 마음가짐 또한 영어권 글로벌시장의 Web3/블록체인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하는 사업입니다. 또한, 아까 이야기했듯 젊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고 (공동창업자들이 둘 다 20대 외국인입니다!) 에너지 넘치고 새로운 걸 함께 뚝딱 만들어 나가는 신명 나는 근무환경 입니다. 시니어 리더십으로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봐 주러 합류한 김에, 최대한 오래 같이 큰 그림을 그려 나가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P.S. 앞으로 저는 우리말 글 외에도 영어글을 다시 열심히 써 볼 계획입니다. 그래서 브런치 말고 Medium/Twitter/LinkedIn 으로 건너가서 글쓰기 활동을 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내용도 좀 더 저 쪽 세상에 특화된 글들을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시장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으니, 감안해 주시고, 나중에 저 쪽 블로그에서도 뵈면 좋겠네요. 영어공부 한다고 치고 읽어 주셔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