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웃으며 타이르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나는 그런 이야기
3~4학년 때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이 까맣게 탔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주었다.
"그 아싸는 아싸라비아의 아싸인거지"
아들의 표정은 대략 ㅡ.ㅡ;;; ㅋㅋ
그냥 그런 아싸라고 말하며 느끼는 감정이 자존감에 자극을 주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농담에 이어, 모든 사람이 똑같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너처럼 느낌이 통하는 친구 몇 명만 있어도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적은 수의 사람들과 깊은 우정을 맺으면 그 만큼 그 사람과 관계가 더 돈독해지기 때문에 쉽게 연락 끊길 일이 없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알 수 있다고. 그런 소중한 관계를 맺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너는 벌써 그런 관계를 갖고 있는 거라고, 아이 입장에 서서 설명해주었다.
아이가 그 당시에 얼마나 이해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다른 화제로 대화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화가 전환되었던 당시 그 흐름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가 꼭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 코칭이라는 명목으로 같은 주제로 대화를 반복하여 돌려버리면 그건 결국 부모인 나에 대한 위로인거지, 아이에게는 잔소리 혹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게될 뿐이니까. (이런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은 지금도 지키는 철칙 중 하나다.)
동네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그 무리에 속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
하지만 낮설음 탓에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 하는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은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다.
4학년 때까지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 몇 명의 연락만 주고 받았기 때문에 휴대폰이 자주 울린 일이 없었다. 그렇게 조용했던 휴대폰이 5학년이 되자 갑자기 자주 울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반가움이 한가득 들었다. 평소에 신경 쓸 일들이 많아 머리 속으로 체크하느라고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하는 때가 많은 나인데, 이상하게도 아들 전화만 울리면 내 귀는 엄청난 안테나 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화에 귀를 바싹 대고 들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최대한 대화 분위기를 파악하며 어떤 전화인지 감을 잡아본다.
'앗, 놀자고 연락왔네'
'도움 요청을 받고 있네? 뭘 도와달라는 걸까?'
'숙제를 같이 하자고 하는 거 같은데... 안된다고 하는 척 하다가 은근슬쩍 허락해줘야지' 라며 엄마 혼자만의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여러 번. 하지만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 전화를 받은 아들은 나갈 채비를 바쁘게 하거나 컴 전원을 바로 켜서 음성챗과 겜을 하기 일쑤다.
"야야! 그렇게 하면 안되고 이렇게 하라고~"
"그 방 폭파 했으니까 다른 00방으로 와"
"그거 말고 이거 하자"
"야 그 서버는 원래 잘 안되, 내가 알려주는 서버로 와"
"내가 음악이랑 영상작업 할 수 있어"
게임하는 방 너머로 들리는 대화를 우연히 들어보면 은근히 친구들을 리드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보이면 은근히 자랑스러워져서 게임 시간이 초과되었더라도 조금 더 하게 내버려둔다. 그러다 게임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단이 나기도 하지만.. ㅋㅋ
어느 날 밤, 모두 잠든 사이에 나만 홀로 어두운 방에 멍하게 앉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들은 게임을 잘하는데다, 유독 IT 정보에 관심이 많다. 해외 게임 정보, 언박싱 영상, 론칭 행사 기사, 게임의 모회사 소식 등 최신 정보들을 스스로 찾아보기 때문에 정보에 높은 양과 질을 자랑한다. IT 정보에 관심이 많으니, 디스코드, 트위치 같은 신규 플랫폼을 다루거나 기계나 코딩을 익히는 감도 빠르다. 영상 작업에 대한 경험치가 높아 발표자료 만들 때는 늘 우리 아이가 당연하다는 듯 작업을 전담한다.
조용하게 관찰하거나 탐색하기 좋아하는 성향이 아이의 게임과 미디어 취향과 맞아 떨어져 특기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인데, 한참 새로운 게임이나 영상에 빠져들 초5 남자아이들의 성향 상 아이의 전문성 있는 모습이 친구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진듯 했다.
어느 순간, 친구들에게는 큰 아이가 이제 게임 잘 하는 아이, 디스코드 잘 쓰는 아이, 영상 잘 만드는 아이로 소문이 나있었다.
조용하고 관찰하기 좋아하는 아이 성향은 미취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또래 남자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성향이었다. 당시 남자아이들과 섞이지 못했다. 조용하게 수다 떨면서 소꿉장난 하는 여자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그러다보니 또래 결속이 점점 강해지는 남자 아이들 사이에 더 끼기 어려워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결국 아이 스스로 아싸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게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는 느낌이 매우 중요하고, 특히 청소년기에게 접어들면 우정이 아이들 자존감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선배맘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터라, 아이가 놀 친구 없이 혼자 있는 순간에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는 지 모른다. 회사에 다닌다고 친구를 먼저 만들어주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도 수 십 번, 수 백 번.
종종 주변에 친하지도 않은 엄마들에게 연락해서 놀 시간을 잡아보고, 아이 생일 파티 때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거하게 해주기도 했다. 아이는 그 때마다 즐거워 했고,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라 할 지라도 열심히 놀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짠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어도,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들과 억지로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다시 심심해질 때면 회사에 있는 나를 닥달해 주변 엄마들에게 연락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걱정에 휩싸여 초등학생 또래친구 관계에 대해 구글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남자아이 친구 만들어주는 방법도 알아보고, 친구 없는 초등학생이 나중에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순전히 내 걱정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정답은 늘 없었지만, 나와 같은 걱정을 가졌던 엄마들의 글들 중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라'는 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구글링을 하는 순간에도 또래 관계란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검색할 수 밖에 없었던 내 마음을 그 문구가 가장 잘 달래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상이 몇 년이 지나고 이제는, 학교가 파한 뒤 그냥 집에 오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늘 친구가 집에 데려가거나, 집에 오더라도 온라인으로 접속하기로 약속을 한 채 오는 날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주말에는 연달아 다섯 명의 아이에게 놀자는 연락이 와서 아이를 주축으로 모이기도 했다. 우리 집으로 누가 놀러오기로 했다는 말이 퍼지면 여기저기에서 같이 오겠다고도 했다.
또래 친구들과 강력한 네트워크가 생기자,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허세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포켓몬 25주년 기념으로 포켓몬카드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초5인데... ㅜㅜ ㅋㅋ) 통 크게도 한 박스를 사와 친구들과 언박싱 놀이를 하기도 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친구들과 의견 충돌이 나기도 하고, 강한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가만히 속상해했을 아이인데, 이제는 불합리한 상황이거나 억울한 상황에 대해 강력하게 어필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실수한 친구에게 참지 않고 의절해버리기도 한다. (의절은 하루만에 당연히 언제 그랬냐는 듯 ... 언제나 게임으로 대동단결 이기 때문에 ㅋㅋ) 반면, 서로 걱정하며 사과하기도 한다. 관계를 배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다.
나는 이제는 아들의 관계를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한다.
한 박자 느린 패턴으로 관계를 배우는 만큼, 또래와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모와 가족이 아닌 또래친구들과의 왁자지껄 관계는 얼마나 신나고 새로울까. 아들이 친구와 시간을 보낸 후에는 늘 표정이 밝다. 그 만큼 마음도 양껏 충전되었기 때문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동시에 충전되는 것만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칭찬 세러모니 전략을 쓰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아이가 인싸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 했다. 칭찬 세러모니 전략에 따라, 아이에게 들리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긁적이며 나타난 아이.
(아들) "나 인싸야?" 긁적긁적... ㅋㅋ
(엄마) "어? 그런 거 같은데? 어때? 좋아?"
(동생/아빠) "우와 오빠 인싸야? 좋겠다~"
(아들) "어 좋지!" 라며 우다다다 달아나는 뒷모습 ㅋㅋ
오늘도 아들은 친구한테서 빨리 오라는 전화를 계속해서 받는다. 이제는 기다리는 친구를 애태우기도 한다. 오늘은 남편이 미국 출장에서 사온 포켓몬카드를 언박싱하는 날인데, 기다리는 친구는 이 사실을 모른다. 아들은 친구를 깜짝 놀래켜줄 계획이기 때문에 즐거운 비밀이다. 언박싱 하는 걸 친구와 영상으로 만들어보라고 슬쩍 제안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후다닥 뛰어나간다. 오늘 하기로 한 숙제와 공부는 머리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 대신 친구와 가진 즐거운 기억으로 건강한 마음 공부를 잔뜩 했을거라 생각하고 오늘은 이만 잔소리를 닫는다.
타들어갔던 속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진 요즘이다. 아이 친구가 적어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년 전 구글링하며 발견했던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는 기다리는 방법 조차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를 믿는다'라는 방법이 그 말에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이가 혼자있는 순간에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게 도와주고, 아이가 친구를 필요로 할 때는 주변 엄마들에게 부탁하여 노는 시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아이 주도적인 상황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중학교 들어가면 더 다양한 친구가 생기겠거니... 애써 걱정을 누르며 기다리자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하는 눈빛과 흔들리는 마음을 아이가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왜냐면 친구한테 연락해봐~ 어떤 친구 괜찮은 것 같은데 같이 놀아봐~ 하며 은근히 아이 관계에 간섭했던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선을 넘어, 아이를 다그치며 친구를 억지로 만들어주려고 애썼다면 아이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제 아이 관계에 대한 나의 기다림은 '성숙'으로 바뀌었다.
관계에 여러 사건과 에피소드들을 경험하며 관계에 대처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그것을 하나하나 간섭하거나 파고들려고 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이제 내 다음 숙제이다. 이번에도 선 넘지 않고 잘 하기를 스스로에게 바래본다.
얼마 전, 어린 자녀를 둔 지인이 나에게 묻는다. 아이가 친구 사귀기에 적극적이지 않고, 한 명 친구랑만 놀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이다. 그 과정을 겪어온 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라고'
그러다 보면 어느 덧 기다리던 순간이 눈 앞에 다가와 있을거라고 말이다.
오늘도 아들은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저녁 밥을 먹으며 친구와 무얼 하고 놀았는 지 잘도 이야기 해준다. 엄마는 머리 속으로 숙제할 시간은 계산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