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위의청년학교 May 20. 2022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길위의청년학교 서예지

 ‘나’라는 존재는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창 사춘기 시절인 중학생이었을 때에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나’ 또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땐 공부에 나를 빼앗기며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면서 일에 나를 빼앗기곤 한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고 나만이 아는 내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삶에서 공부와 일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막 사회에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고, 나는 내가 세상의 100분의 1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어려움과 나에 대한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고 싶다. 나에 대해 찾아보고 이해도 하면서 장단점을 알고, 그것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아 정체성’.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소속해 있고 어떤 삶을 사는지를 말이다.  



나를 찾아 되돌아가는 여행     

어렸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다. 어렸을 때 찬란한 꿈이 있었지만 현재는 방황하고 있고, 평생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던 NCT를 떠나 배우 강유석을 좋아한다. 나는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에서 미래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이렇게 했다면 미래가 달라졌을까? 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했던 제과제빵사가 되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제과제빵사가 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등의 일들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도 삶 중 한 걸음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꿈을 포기했기 때문에 현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신이 누구인지 찾고 믿음을 굳히기 위해 신학생이 되었고, 또 세계여행이라는 다른 꿈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보다 타인이 먼저인 삶을 살았었다. 나보다 동생이 먼저, 나보다 친구가 먼저. 그 때문에 너 먼저 해, 너 먼저 먹어 등의 말이 제일 많이 쓰던 언어였다. 내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습관이 되고 난 후였다. 배려가 우선이라는 것이 언제부턴가 가치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는 것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지나친 배려로 인해 나는 내 안의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었다. 


그것을 참고 살아오다 중학생 때는 조울증이 오고, 친구들에게 “너 이상해”라는 말도 들었다. 결국 고등학생 때 자존감이 낮아져 한 달 정도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졌다. 지금은 자퇴를 안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공부하던 제과제빵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모든 것에 예민했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중학생 때부터 우정이 평생 갈 것 같았던 친구들에게 불만을 털어놓고 서로 이해하며 화해를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좋아하는 한 아이돌로 인해 앞서 말한 친구들과 멀어진 적이 있었다. 아이돌을 좋아하던 친구들과 다른 아이돌에 관심 있었던 나는 공통점이 없었기에 가까웠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학교 시간 외에는 학원을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때 공통점이 없던 또 다른 친구가 물어보아 그 불편함을 털어놓았었다. 그 후 다른 친구는 화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와 나눴던 채팅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었고, 그 순간 그들의 뒷 담을 깐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학업 성적도 떨어지고, 스트레스성 새치도 났었다. 그 당시에는 친구가 전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위해 꿈을 만들어가며 미래를 그리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해석하고, 가끔은 글을 쓰거나 그리기도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쓰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되었다.

  

나를 찾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

 

사실 길청의 인원이 된 계기는 부모님의 권유였다. 관심 분야도 아니었고 마냥 어렵게만 생각했던 공부였다. 하지만 나에 대해 타인에게 소개하고 타인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또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이 같은 목적의 공부를 하는 것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리고 이 공부는 나를 발전해 나갈 수 있게 해줄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내가 배우고 있는 과목은 종교이지만 지역 사회를 배움으로써 미래에 이를 바탕으로 교회 봉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 사회의 문제점과 지역 사회가 추진하는 행사들이 어떤 형식으로 청소년을 도울 수 있는지 연구해보고 싶다. 또한 청소년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인 여자, 노인, 유아, 성 소수자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도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명성이 높아질 수 있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될 수 있는 활동을 위주로 하고 싶다. 특히 성 소수자는 기독교에서는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도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지지하고 싶다. 특히 모 교회의 모 목사가 말하는 지식과 가치관은 기독교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예수님을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과거의 약속인 구약만을 보고서 무작정 판단을 지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위의 있는 친구가 성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역시 성경에서는 창녀와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여성이 한 사람으로 인정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부분으로 더욱 노력하고 싶다. 지역 사회가 현재보다 더 나아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나 또한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이다. 남녀평등이라 일컫는 사회에서 아직도 ‘목사는 남자이다’라는 것이 당연시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고 싶다. 신학부로 진학하기 전, 내가 신학부를 간다고 했을 때 신앙심이 많던 가족들마저 “차라리 간호학과를 가지 왜 신학부를 가려고 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수시를 접수했을 때 신학부만 접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맞아 접수한 영어영문학과, 단순히 이과라 접수한 간호학과, 여행을 좋아해 접수한 항공서비스과, 나의 신앙심에 대한 불신과 호기심에 접수한 신학부 등이었다. 결국 신학부를 선택했다. 꿈은 언제 어디서든 펼칠 수 있다.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된다. 또한 남자만 하는 직업은 없고, 여자만 하는 직업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공부에 대해 엄하지 않으셨지만 그렇기에 해외에 살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해외에 있는 다른 나라와 공부 방식을 비교하며 살아왔다. 또한, 방과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하는 해외와는 다르게 한국은 입시 준비를 한다며 학원에 가야 한다는 현실이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방과 후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펼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길청에서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문제점과 해결 방안, 청소년에 대해 이해하고 지식을 넓히며 한 계단씩 오르고 싶다. 

  

나라는 사람의 정의


나는 앞으로의 나를 ‘걸어 다니는 여행’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지금 하는 정의는 걸어 다니는 여행이지만 미래에는 바뀔 수도 있다. 오늘, 내일, 또 다음 날의 나는 내가 하는 정의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더 적극적인 내가 될 수도 있고, 활동적인 내가 될 수 있고, 조용한 내가 될 수 있는 등 날에 따라 다를 것이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발전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정한 나의 비전들이 있다. 우선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 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보고 싶다. 세상은 넓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100분의 1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경험도 해보고 저런 경험도 해보면서 슬프고, 기쁘고, 힘든 일들을 겪고 나를 발전해 나갈 기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해외여행에 다니고 싶다. 체코의 프라하 스페인의 마드리드, 페루의 리마, 네팔과 탄자니아 등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이기 때문에 영어 공부도 해야 한다. 만약 영어 공부를 하며 실력이 늘어간다면 봉사로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학생으로서의 비전도 있다. ‘순례길 걷기’이다. 순례길을 걸으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마음을 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 싶다. 


나의 마지막 비전은 농부 되기다. 농사를 짓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짓는 할머니를 보고 꾸어왔던 비전이다. 특히 딸기 농사가 목표이다. 딸기 농사를 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딸기를 좋아해서이지만 가족들과 딸기밭에 가서 딸기도 따고, 딸기잼도 만드는 등 좋은 추억 안겨준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뒤에 말이다. 또한 나는 내 인생의 모토인 ‘나를 나로 가꾸기’를 세상의 경험을 토대로 잘 가꾸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하나의 밭이라고 생각하며 그 밭을 먹음직스러운 과일들로 채우고 싶다. 특히, 세상의 시선을 눈치 보지 않는 나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느리게 걷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