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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Jul 31. 2024

다꿈에서 청소년을 만나는 이유

길위의청년학교 6기 김나영

  “선생님은 왜 다꿈에 오게 됐어요?” 며칠 전 당직에서 만난 한 청소년이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다꿈에 오기 위해 본 면접의 질문과 같았다. “왜 지원하셨나요?” 두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청소년을 만나고 싶어서요.”였다.


  나를 위해 눈물 흘리던 어른

  초등학교 2학년 때, 신도시의 한 학교로 전학을 갔다. 새 집과 새 학교가 주는 설렘 속에서 친구와 학원 모두 좋았던 기억이 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기억만을 남겨 준 학교와 동네를 뒤로한 채 초등학교 4학년 때 두 번째 전학을 맞이했다. 부모님은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고, 나의 집과 학교도 크게 달라지며 인생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저 부모님 말 잘 듣고, 학교와 학원을 잘 다니던 나는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님께 대들고 말 안 듣는 아이가 됐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이 미웠고 마음의 상처만 깊어진 채 나를 믿어주는 좋은 어른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울었다.


  중학교 2학년, 눈물 뒤에 숨어 있는 나를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려주신 선생님을 만나고 꿈이 생겼다.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내 속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나는 선생님에게 감정을 토로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던 옆 반 영어 선생님은 학교가 끝나 사람이 없던 교무실에 나를 앉혀두고 나의 이야기를 쭈욱 들어주셨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도 이해해 주지 못한 부분을 공감해 주셨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편한 마음에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뿐인데 선생님은 공감의 눈물로 나를 어루만져 주셨다. 평소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좋아한다고만 생각해서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어 선생님의 눈물 이후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저 선생님처럼 내 학생의 아픔에 같이 눈물을 흘려줄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닌 나의 학창 시절

  중학교 3학년이 올라가던 겨울에 쏙쏙캠프에 참여했다. 쏙쏙캠프는 대학생들의 교육 기부 프로그램으로, 3일간 학교 도서실에서 멘토인 의대생들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를 어린 동생이 아닌 멘티로 바라보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아낌없이 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재능기부 형태의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나는 친구를 통해 청소년문화의집 방과 후 아카데미 내 학습 봉사를 알게 됐다.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중학생 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가르쳐 줬다. 처음엔 많은 걸 알려주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서 부족함이 많았다. 그래도 내가 원해서 시작한 활동이고, 제대로 된 첫 정기 봉사였던 만큼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가르쳐 줄지 고민했다. 중학생 때부터 정리한 문법 노트가 있어서 나의 필기를 바탕으로 동생들을 위한 기초 문법을 정리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2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의 열정에 따라 동생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니 꼭 선생님이 돼서 더 잘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범대를 진학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했고, 꼭 교직이수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국어국문학과는 나의 이상과 달랐다. 내가 좋아한 국어는 교과서 집필진이 분석한 참고서에 해석된 문학 작품 그리고 학교 문법이었다. 국어국문학과는 교수학을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던 교과서 국어와는 다른 접근 방법이었다. 나와 맞지 않는 학과였다는 이유로 성적 관리를 소홀히 했고, 교직이수도 포기했다. 전과, 편입, 복수 전공 등을 고민하던 때에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학교사회복지사는 학교에서 근무하니까 교사처럼 학생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꿈꾸는 좋은 어른을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직업만 바라보고 사회복지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했다. 복수전공을 하면서 힘들 때에는 오히려 국어국문학과 수업들과 학보사 생활이 글쓰기에 재미를 줬다. 선생님이라는 직업만 바라봤던 나에게 학교의 여러 인물을 취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기획 기사나 칼럼을 쓰면서 나의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달그락에서 참여와 자치를 배우다


  2020년,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다. 사회복지 현장 실습을 해야만 졸업도 하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도 볼 수 있고, 학교사회복지사에도 도전할 수 있었는데 당장 학교를 갈 수 있는 것도 불투명했다. 다행히 사회복지현장실습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나의 1순위였던 초등학교 교육복지실은 갈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원망스러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청소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겠다고 생각을 바꿔 수많은 실습 기관 리스트 중에서 청소년 분야만을 추렸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청소년자치연구소’를 알게 됐다. ‘자치’가 뭐지?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린다고? 근데 이걸 왜 연구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봤고, 여길 가면 청소년을 제대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청소년자치연구소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실무자 선생님들 옆에 청소년이 있었다. 청소년자치연구소 달그락달그락의 대표자회 부회장 청소년은 면접관으로서 예비 실습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달그락이 말하는 ‘청소년은 시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순간이었다.



  달그락에서의 한 달은 청소년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청소년은 좋은 어른을 통해 변화해야만 하는 존재로만 바라봤었는데, 달그락을 통해 청소년도 성인처럼 충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그락의 청소년들은 시민으로서 각자의 삶과 활동의 주체로 지역사회 속에서 진로를 탐색하고, 매년 에세이집을 출간한다. 청소년이 실습생들의 면접관이었던 것처럼 청소년이 기자이고, 작가이고, 편집자였다. 그리고 달그락에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지역사회가 있었다. 군산이 좋아서 떠나지 않거나, 군산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그들의 전문성을 발휘해 청소년들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를 실감했던 순간은 실습생들과 자원 발굴 지도를 만들기 위해 기관 주변을 라운딩할 때였다. 기관 주변 상점에 들어가 모의 활동 연계를 요청드렸더니 이미 달그락을 알고 계셨고, 이미 함께 하고 계셨다. 달그락의 실무자와 청소년만 돈독한 게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돈독하다고 느꼈다.




  돌고 돌아 청소년을 만나고 싶어서


  청소년의 인식을 바꿔준 달그락을 통해 청소년을 만나는 건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보다 먼저 인생을 더 살아온 사람으로서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되새겼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좋은 곳에 취업하고 싶었고, 그토록 원하던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취득하고 졸업했다. 하지만 막상 사회복지 현장에 나가기엔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보다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 하루하루를 낭비했다. 이렇게 지내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즈음에 코로나19 거리 두기는 완화됐다. 세상은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아이돌의 콘서트도 몇 년 만에 다녀오게 됐다. 오랜만에 느낀 공연의 열기와 팬들의 함성 속에서 기쁨과 행복이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무기력한 백수로만 지내다가 공연을 즐기는 나를 통해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 반복되는 무기력 속에서 만난 활력을 또 누리고 싶었다. 행복의 티켓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일을 해야만 했다. 사회복지 현장에 나가기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커서 우선 카페 아르바이트로 백수 인생을 벗어나기로 했다.


  카페에서 번 돈으로 콘서트를 또 갈 수 있다는 행복은 있었지만, 같은 돈을 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청소년을 만나는 일인데 막상 이력서를 내자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청에서 청년 인턴을 뽑는 공고를 보게 됐다. ‘경쟁률이 높아서 되지 않을 거야’하고 화면을 휙휙 넘기는데 ‘청소년 이용시설’, ‘카페 아르바이트 유경험자 우대’라는 말에 눈이 확 꽂혔다.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면 청소년 이용시설에서 인턴을 할 수 있다는 건가? 이건 나를 위한 자격요건이라는 생각에 서류를 제출했다. 면접에도 합격하고 인턴 교육을 받기 전 청소년재단 사무처 행정업무 보조를 해보는 제안을 받았다. 청소년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지만, 사무처에서 일하게 되면 청소년도 만나고, 관련 업무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더 이로운 경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에 동의했고, 청소년 카페가 아닌 사무처로 출근했다.



  인턴 근무 6개월 동안 청소년운영위원회 연합 캠프, 어울림마당 업무지원, 청소년정책 5개년 계획을 위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 등의 업무를 도왔다. 하지만 업무에서 만난 청소년은 일시적이었고 행정 업무를 보조하는 일이 더 많았다. 인턴 계약을 마치고 기간제 근무를 이어나갔지만 나는 청소년들을 꾸준히 만나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때 다꿈의 청소년활동가 모집 소식을 듣게 됐고 다꿈이라면 내가 원하는 청소년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지원 동기를 묻는 면접관들에게 청소년을 만나고 싶다는 나의 간절함만 계속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통한 나의 간절함으로 2023년 3월부터 다꿈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변화의 시작은 다꿈이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며 기자단, 작가단, 바리스타 3개의 자치기구의 담당자로 활동했다. 활동의 목적을 담은 자치기구 이름을 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회칙도 제정해 우리만의 약속을 만들었다. 청소년 기자단 어프로치는 다꿈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청소년 이야기를 취재해 기사를 썼다. 청소년 작가단 시나브로는 매주 모임 활동을 통해 꾸준한 글감 발굴과 글쓰기 활동을 통해 모인 작품들로 책을 만들고 출판 기념회를 진행했다. 커피가 좋아서 모인 다꿈다방은 지역 축제에 부스를 운영하며 음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꿈을 이용하러 온 청소년들도 쉬기도 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꿈만의 자치 활동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활동을 SNS에 공유하다 보니 다꿈의 활동을 응원하는 지역사회 주민들도 생겼다. 또 지역사회에서 생긴 문제점들을 모아 개선을 제안하는 등 우리 삶에서 참여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1년간 다꿈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가끔은 내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삶의 균형과 청소년 활동을 저울질할 때면 내가 정말 청소년을 생각하는 사람이 맞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청소년활동가가 노력을 쏟은 만큼 의미 있는 가치가 만들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 청소년들도 활동을 하고 나면 힘들다는 말을 하지만 힘든 만큼 우리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나 역시 다꿈에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만난 멋진 어른들처럼 다꿈의 멋지고 좋은 어른이자 청소년활동가가 되고 싶다. 공부만으로도 벅찬 10대 시절에 다꿈이 숨통 트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고, 내가 청소년들에게 멋진 어른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멋진 어른을 만난 10대의 김나영이 20대에는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멋진 어른을 만난 청소년은 분명히 멋진 어른으로 자라서 멋진 지역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가 꿈꾸는 지역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꿈에서 청소년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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