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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Jan 14. 2022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가

길 위의 청년학교 전예빈

되짚어보기

 2020년도 초반부터 변화가 많았다. 2년간의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어쩌다보니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청소년활동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고, 길위의청년학교에서 청년활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뭐라도 하려고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2020년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 왔다. 


 지금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았다. 길위의청년학교 청년으로, 청소년활동 현장의 활동가로, 사회복지전공 대학원생이라는 내가 있게 된 과정은 어떠했을까? 눈앞에 보이는 기회를 붙잡고, 그저 뜻 하는 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복지를 배우며 청소년활동을 경험했고,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실천현장을 더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쩌면 달라질 수 있겠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가장이 되어 우리 남매를 부양하면서 국가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기억은 조부모님과 함께한 것들이다.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꾸려온 동네였고, 동네에서 하는 일들을 다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아 동네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자연스레 동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었지만 고민을 털어놓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동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교회 목사님에게 비밀을 이야기해도, 다음날이면 모두가 아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즈음에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지만,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답답함이 생겼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근방에서 일명 문제아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였고, 웬만한 불만사항은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되곤 했다. 학급에서 불합리하게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나, 학교 곳곳에서 생기는 사건들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이 항상 마음속에 응어리가 진채로 있었던 것 같다. 속으로 삭히는 것이 익숙해지고,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 편해졌다. 


 이런 고민을 안은 채로 단순히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고 실제로 공부를 시작하니, 단순히 누군가를 돕기 위한 마음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왜 사회복지인가? 라는 고민은 사회복지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회적 사건들에 의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고민이었다. 또한, 사회복지를 학문으로 배우려고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경험하는 실천현장에서는 이론과는 멀었고, 이 때문에 2학년 막바지에는 진지하게 편입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사회복지분야에서는 마땅히 관심 있는 분야도 없었고, 막연히 학창시절의 고민으로 아동청소년분야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정도로 생각하는 게 다였다. 그래서 대학 1학년, 2학년을 방황하며 보냈다. 


  그러다 어느새 3학년 여름학기가 되어, 사회복지실습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사회복지실천론 수업을 마치며, 청소년기관에서 오셨다는 분이 기관 설명을 해주셨다. 군산에 있는 청소년기관이고, 주체적인 청소년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며 지금 첫 실습생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아동분야에 관심도 있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날 바로 실습 신청을 했다. 별 생각 없이 앞에 있는 기회를 부여잡은 것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변화의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이 어리다는 이유로 당연히 어른들에게 양보하고,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실습을 시작하고 며칠 있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외부 손님들을 초대해 청소년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자리가 꽉 차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손님들이 오고 있어 자리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친하게 지내던 청소년들이 한편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 친구들에게 혹시 위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수 있냐 물었고, 당연히 일어나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중 한명이 ‘왜 저희가 비켜야 해요? 저희가 먼저 와서 자리 잡은 건데’ 라고 말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청소년도, 다른 모든 사람도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로만,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비록 청소년기에 의견을 말할 수 없어 좌절을 느끼기도 했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부터 변화할 수 있었고,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특별한 순간에만 모두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상적인 순간에서 청소년도, 성인도 모두 ‘사람’으로서 존중받기를 바랐다. 사회복지를 배우며 활자로만 인식하던 인간의 존엄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즐거움과 고민을 안겨준 청소년활동


  본격적으로 청소년과 관련한 내용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습을 마친 후에도, 계속 자원봉사활동을 계속했고,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관련활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지역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세미나, 프로젝트,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외활동이나 수업 외 활동은 잘하지 않았었지만, 교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었기에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은 변화를 경험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기도 했지만,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청소년이 예상치 못한 말을 했을 때,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때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지만 실천현장으로 나서기 두려웠다. 동기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 같았다. 공무원 준비를 위해 휴학을 하거나, 일치감치 실천현장에 취업해 일을 하고 있는 친구, 사회복지를 떠나 아예 다른 분야로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두려움으로 인해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마침, 학부 지도교수님과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준비기간을 더 가지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도망치듯 선택한 것이지만 관심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하고, 연구 활동을 통해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A는 B에 영향을 주고, A와 B사이에 관계를 찾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면서 연구현장에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완벽하지만, 실제 실천현장에서도 저렇게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흔히 말하는 청소년들이 비행이나 일탈행동을 하는 건 다양한 이론에 의해 설명할 수 있겠지만, 여태까지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은 이론으로만은 설명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서도 실천 현장을 계속 경험하고 싶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입시 스트레스를 겪는 청소년을 돕는 캠페인이었다. 청소년과 같이 활동을 하며 즐겁기도 했지만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최대한 청소년의 의견을 보장하고, 목소리를 듣고자 했지만 소극적이거나 짧은 시간 내 활동을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형식적으로 마쳐버리는 일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실습을 했던 청소년기관에서도 반복되는 자원 활동, 집단 내 함께하던 동료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괴리는 더 커져갔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론과 실천을 둘 다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모든 사람이 존엄하며, 평등한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기반으로 활동하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청소년자치연구소 실습에서의 경험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느낀 것들이 많아서였다. 내가 사는 지역인 군산에서는 청소년이 참여해 만들어낸 조례도 있고, 실습기관처럼 청소년의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한정된 시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청소년과 직접 함께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고, 연구 활동을 통해 이를 반영하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야했다. 청소년이 참여활동을 하며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청소년과 함께하는 활동이 지역사회의 이웃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실천현장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을 보완하고, 연구과정에서 겪는 한계를 실천현장에서 보완하기 위함 이라고 여겼다. ‘어느 한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두 분야를 꾸준히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청소년이 잘 사는(Well-being)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소년의 목소리를 막는 것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길 위의 청년 1,2호 잡지에 수록된 청년비전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2호 잡지는 현재 텀블벅 펀딩중입니다. 얼리버드로 할인 된 가격에 예약 가능하니 한번씩 살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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