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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May 06. 2022

지금 서 있는 길

길위의청년학교 박경미

나는 일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내 방 한편에 마련된 작은 연구소에서는 연구보고서도 작성되고, 온라인 강의도 진행된다. 전부 청소년과 관련된 일이다. 아침에 내 방으로 출근을 하면 식사와 강아지 산책을 제외하곤 대부분 시간을 방안 연구소에서 보낸다. 연구소의 일정은 혼자 수행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누군가를 대면으로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물다. 물론 처음에 연구소의 운영을 결심했을 때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주변 사람들과 지역사회 문제를 논의하고 청소년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연구소의 본격적인 시도를 앞두고 코로나 19가 발생하면서, 오프라인 연구소 대신 온라인 공간이 내 책상 위에 자리 잡았고, 이젠 이런 일상이 익숙해진 듯하다.


비대면으로 연구소가 운영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소의 중심은 고립된 공간의 연구가 되었고, 초기에 생각했던 청소년과의 프로젝트는 답변을 찾지 못한 채 보류되어 있다. 그래도 나의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3년간 수행되어온 연구는 최대한 청소년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인다. 연구의 주제가 되었던 내용으로는 청소년 활동, 청소년의 안전, 청소년 정치참여, 다문화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등이 있다. 다만 이러한 연구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누군가 연구소의 결과물을 보게 되면 내 전문영역에 대해 질문할 것이다. “청소년에 관해 관심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전문영역이 무엇인가요?” 집중된 영역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청소년학을 제대로 공부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청소년을 자녀로 키우며 삶의 지식으로 청소년의 특성을 습득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 관련 공부라고 한다면 청소년지도사 2급 자격증을 준비했던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후 석박사 과정에는 개발 정책학을 통해서 정책을 배웠고, 아동·청소년 정책을 평가하는 도구로서 행복을 연구했다. 공부 과정 중에는 개발도상국에서 운영되는 정책이 아동과 청소년의 삶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습을 했으며, 박사 논문에서도 국내의 청소년 정책과 환경이 그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했다. 그러므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전문성은 개발정책과 아동·청소년의 행복을 통한 정책평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학문적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을 연구한다는 게 받아들여진다면, 청소년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수행하는 청소년 연구와 일들이 설명 가능할 것이다.


개발정책을 함께 공부한 동기들과 함께

내가 청소년을 만나온 시간     

청소년은 나의 지난 시간과 관련이 깊다. 나는 연구소를 시작하기 전엔 10여 년간 청소년을 위해 일해왔다. 청소년에 대한 첫 경험은 아동학대 예방 분야에서 근무하면서부터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24시간 이내에 현장으로 찾아가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상담원 역할이었다. 이 일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서 선택한 직장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나게 된 아동과 청소년은 내가 평생 청소년을 생각하면서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관심을 가질수록 그 범위가 확대되어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29살이 되던 해에 개발정책이라는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을 통해서였다. 당시에 내가 맡은 역할은 도미니카공화국이라는 나라로 가서 미성년임신 방지 프로젝트에 2년간 참여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언어도 잘 안 되고 모든 문화도 낯설었지만, 종일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청소년, 갑작스럽게 임신을 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난 그곳에서 미성년임신 방지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세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먼저 미성년임신방지 연극 프로젝트로 지역에서 운영 중인 NGO와 협력하여 연극팀을 구성하고 성교육 연극을 기획하였다. 두 번째는 지역 학교에 방문해서 성교육도 진행하고 다양한 청소년 활동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청소년들에겐 내가 진행하는 낯선 교육과 활동이 재미있었는지 늘 방과 후면 학교에 남아 나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가족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가족의 방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경험한 개발도상국에서의 활동은 내가 계속해서 국내외 청소년의 상황에 관심을 두고 관련된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청소년들과 함께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개발정책 영역에 있어서 뭔가 근본적인 이야기 또는 지식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개발정책을 좀 더 깊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2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야간대학에서 개발정책 관련 공부를 이어나갔다. 운이 좋게도 당시에 근무했던 청소년기관에서는 청소년 분야의 국제사업을 담당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담당했던 국제사업은 청소년을 국제협력의 일환으로 파견하는 해외봉사단의 사업관리와 매뉴얼 제작, 현장모니터링 등이 있었고, 국제 자원봉사대회나 국외 청소년 지도자를 초청하여 교육하는 일, 외국의 청소년과 토론회를 개최하는 일 등의 내용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청소년들과 함께


이런 업무적 기회 덕분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국제협력과 교류를 실무적으로 체험하였고 동시에 학업을 통해 개발정책을 이해해 나갔다. 특히 업무를 통해 만났던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몽골 지역의 청소년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탄자니아, 시리아, 엘살바도르 등 다양한 개발도상국에서 온 지도자들과의 협력들은 내가 개발정책의 영역에서 성장할 기회가 되어 주었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

쉽지만은 않지만도전을 가능케 하고 싶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청소년지도자와 함께

그렇게 청소년과 개발정책을 경험한 나는 3년 전 작은 연구소를 시작했다. 나의 독립이 시작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청소년과 함께 지역과 개발정책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자 한다. 청소년들이 만들어 갈 실험은 자신의 지역과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실험의 주제로는 환경, 교육, 여성, 가족 등 다양할 수 있다. 청소년이 자신들에게 직면한 문제를 즐겁고 슬기롭게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타인의 열악함을 이해하고 나의 것을 공유하는 삶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또한,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너지효과(Nudge effec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너지효과(Nudge effect)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청소년이 내가 만든 공간에서 새로운 시도와 고민의 기회 얻게 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선택을 이어나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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