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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May 13. 2022

우리는 느리게 걷자

길위의청년학교 정이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1     

나는 ‘지금의 나‘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언제나 ’지금의 내‘가 더 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시한다. 수강신청을 할 때 시험 난이도가 높거나 교수님이 깐깐하다는 소문이 들리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일단 내가 그 과목에 대해 순수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가끔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듣곤 하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쉬운 길로 가는 것보다 즐길 수 있는 길로 가겠다는 내 철학이, 어쩌면 대학교라는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나는 승부욕이 없는 사람이다. 시험 등수에도 별 감흥이 없고 경쟁해야 할 때는 의욕이 먼저 사라진다.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데에 늘 피곤함을 느낀다.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수치 말고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것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 나는 좋은 성적, 높은 숫자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것에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의 고등학교 이야기     

1) 첫 번째 고등학교

처음으로 갔던 고등학교는 아주 평범한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기숙사에는 기숙사생으로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몇 가지의 규칙이 있었다. 10시 45분부터 12시까지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고, 야자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야자 시간과 방학 보충학습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는데 이 규칙들을 어기면 벌점을 받게 되거나 퇴소 징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기숙사에 입소한 첫날에 얼떨떨해 있었는데 12시까지 이어진 야자에 참여했다. 그 때에 누구도 나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학교는 서서히 학생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 같았다. 배움 보다는 훈련과 같았고, 친구보단 경쟁자였다. 야자시간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학생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나는 차라리 누워서 깊은 잠을 자는 것이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진로시간은 대학교 정보, 입시 준비하는 법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또 학생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 대신,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나 과에 맞춰 생기부를 꾸려야만 했다. 처음 접하는 시스템 속에서 나와 함께 힘들어하던 친구들은 곧 익숙해졌고, 누군가가 새벽 4시까지 야자실에 남아있었다는 얘기에 초조해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문득 사람을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열등감을 공부에 대한 원동력으로 삼게 하는 과정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그렇게 참고 산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못 견디게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 두 번째 고등학교

내가 탈출한 곳은 경상도의 작은 시골에 위치한 대안학교였다. 동생이 먼저 그 학교에 입학했고, 부모님의 권유로 2학년이 시작하자마자 전학을 갔다. 내가 간 학교는 인가받은 대안학교여서 1-4교시는 교과수업을 하고, 5-9교시는 동아리, 자율활동, 공동체 활동, 문화활동과 같은 활동적인 수업을 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작은 장터 ‘느림장’, 나는 캘리그라피가 그려진 엽서를 팔았다. 이곳에선 모두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았다.

    

베트남으로 떠난 ‘해외현장체험학습’에서는 오지마을의 학교 화장실을 짓기도 하고, 그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온갖 고생을 함께하며 내 친구, 내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된 ‘지리산 종주’


어두운 저녁, 도서관에 모여 잔잔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수요낭독회’

나는 이 행사에 낭독자, 진행자, 스탭, 청자 모든 역할로 참여했다. 이 밖에도 다 표현하지 못 할 만큼 다양하고 많은 활동에 참여했다. 그 속에서 나는 이런 게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머리 뿐 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채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 대한 안건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다는 것과, 전교생이 모여 함께 의견을 나누었던 공동체 회의는 학교의 주체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알게 했고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인생에 대해서도 주체성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온 몸으로 배우며 성장하며, 나의 환경에서 내가 주체가 되고 직접 부딪쳐봤을 때 느끼는 보람찬 행복이 진정한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고등학교는 나에게 정말 많은 자산이 되었다. 수많은 경험과 배움,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단 것을 스스로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스스로 알게 만든 것은 과거의 내가 불행했단 것이었다. 좋은 대학교, 좋은 성적이란 목표에 비해 나 스스로의 능력치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또 그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 고민조차 못했었던 그때의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인생에는 다양한 즐거움 존재하며, 그것들을 찾아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짜 성공한 인생이라고 내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2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그거해서 나중에 뭐하려고?, 해봤자 쓸모없다.” 공부 안하고 소설책을 읽거나, 조금 뜬금없는 활동을 하거나, 여유롭게 쉬고 있을 때 들었던 말들이다. 모든 행동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함께 있어야 하는 걸까. 지금의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고,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잘 살려고, 행복한 인생을 살려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내가 경계하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소홀해지는 것이다. 


길 위의 청년학교와 함께하며, ‘나’는 내 인생의 비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껏 수없이 시도해봤지만 무언가 특정할 수 있는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명예로운 자리에 앉는 것? 내게는 그런 사회적 성공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하나를 맹목적으로 쫒기보단 현재를 살며 만끽하는 사람. 그냥 그게 나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느리게 걷자     

누구에게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본인만의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서 flex’하는 게 본인에게 있어 진정 성공한 인생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저마다 다른 모습의 ‘성공’이 열 가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해보고 싶은 활동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 대놓고 말하기엔 낯간지러운 낭만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바쁜 현대인이 일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지친 일상을 잠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조성하고 싶기도 하고, 사회갈등을 넘어서 서로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진행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와 같이 나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활동들을 진행해보고 싶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그렇게 빨리 뛰다가는(우후후) 죽을만큼 뛰다가는(우후후) 이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우후후) 고양이 한 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좋아하는 노래 가사이자, 내 인생의 모토이다. 앞만 보며 뛰는 것 말고, 느리게 걸으면서 지금 내 행복을 찾자.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건 어쩌면 나의 타고난 게으른 성향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패배자처럼 비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고민하고 또 다시 몇 번이고 생각해 봐도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지금 당장 행복한 내가 좋다. 결국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며 사는 것, 내 모습 그대로를 살아도 불안함이 들지 않는 그런 삶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떤 인생의 힘든 구간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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