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길을 걸어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만약 뚫어져라 상대방이 눈을 쳐다본다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내게 할말이 있는 걸까?’
‘뭐지? 왜 쳐다보는 거야?’
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먼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옷 매무새가 이상한 곳은 없는지부터 찾는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인지 정면으로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괜히 먼 곳을 보거나 시선을 피한다. 먼저 상대방에 대한 방어를 미리 하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쓴 다음에는 눈 밖에 보이지 않으니 더더욱 입과 코도 가리고 눈까지 가린 듯 지나간다.
반면 사람들의 뒷모습을 마주했을 때에는 일부러 피하지 않아도 된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아도 오해하는 사람도 화를 내는 사람도 없으니 사람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한결 편안하다. 말이 없는 다양한 뒷모습들은 여러 가지 표정들을 남겨두고 간다.
딸을 데리러 가는 시간, 항상 보는 아빠와 아들이 있다. 꽁지머리를 한 아빠가 서너 살쯤으로 보이는 아들과 걸어간다. 아마도 어린이 집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가는 길 같다. 이것 또한 편견 일 테지만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과는 달라 눈 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그냥 걸어 간다면 그 날은 운이 아주 좋은 거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아이는 뛰어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뒤에 바짝 쫓아온 아빠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괜찮아?” 툭툭 옷에 뭍은 흙을 털어 준다. 아빠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집으로 향한다. 한두 번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아니다. 육아의 고수 느낌을 풍기며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은 부자의 정을 남겨두고 간다.
어느 날은 서로 너무 좋아하는 남녀의 뒷모습을 본다. 손을 꼭 잡고 아니면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은 달달한 기운을 뚝뚝 흘린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저렇게 좋을까라는 질투도 난다. 달달한 두 연인의 뒤에서 갈 때면 되도록이면 없는 듯 조용히 하거나 아니면 빨리 지나가 버린다. 방해가 되는 아줌마가 되기는 싫으니까.
오후 4시가 넘어가면 하교하는 학생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마치 자신들의 세상인 것처럼 거리를 차지한다. 지금 그들에게 무서운 게 무엇이 있을까. 자신이 최고인 지금 재잘거리며 당찬 언어로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풋풋하지만 걸러지지 않은 거친 세계가 보인다. 이 구역의 대장은 바로 나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런 당당하고 싱그러운 뒷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응, 아줌마는 너를 몰라. 엄마한테 말 안 할게’ 라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간다.
누군가 그랬던가. 손을 잡고 가면 불륜, 어색하게 떨어져 가면 찐 부부라고. 저녁이 되면 운동하러 나오는 부부들이 종종 있다. 부부의 뒷모습은 많은 말을 한다. 같이 산 세월만큼의 무게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지치고 힘들지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날들도 함께해 왔고 앞으로는 더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고 걸어 나아가야 하는 강한 단단함이 엿보인다.
연세가 지긋이 드신 분들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의 미래가 아닐까. 마을 어디에서나 마추친다. 그들은 살아온 흔적을 뒤에 남기며 한 발자국씩 힘겹게 뗀다. 가다가 쉬기도 하고 멀찌감치 다른 이들을 구경하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구부정한 허리 때문에 유모차에 의지해서 가기도 하고 꼿꼿한 허리를 자랑하며 흰머리 그대로 ‘나이는 이렇게 드는 거야.’라고 뒷모습에 말을 흘린다. 나는 어떻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도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걸어?’
나는 내 뒷모습을 모른다. 어떻게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름 씩씩하고 허리와 어깨를 꼿꼿하게 피고 걸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누가 쫓아오는 마냥 뛰듯이 걷고, 어느 날은 세상만사 다 귀찮은 듯 느릿느릿 걷기도 한다. 나의 뒷모습에서도 세월의 모습이 보일까?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뒷모습이 아니기를 바란다.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느긋하고 여유있는 뒷모습이기를…… 나의 뒷모습을 보고 바쁘고 조바심 났던 마음이 가라 앉아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