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란 자신만의 영토를 만드는 사람이다.
‘대가(Master)’는 남을 따라 한다고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나 좋은 사례를 참고하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함(unique)이 있어야 새로운 창조와 생성을 하는 대가다.
요즘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노마디즘>이란 책의 한 페이지에 ‘대가’라는 단어가 나와 사유하며 글을 쓴다. 대가는 마스터, 달인, 장인과 같은 단어로 대체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대가’란, “기존의 코드 안에 없는 것을 이용해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를 만들어낸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코드화(codification)’의 개념은 삶과 욕망을 특정한 체계와 규범 속에 가두어 통제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규범이나 가치를 체계화하고 정형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코드화는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일종의 '규칙’이나 ‘지침’ 역할을 한다. ‘탈코드화’는 기존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코드나 규범이 해체되는 과정을 말한다.
‘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는 어떤 개체, 개인, 또는 집단이 기존의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영토'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고정된 경계나 정의를 넘어서는 행위로, 새로운 관계나 의미의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는 영토화된 개체나 집단이 새로운 영토나 맥락에서 안정을 찾고 새로운 정체성이나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민자 커뮤니티가 새로운 국가에서 자신들만의 사회적, 문화적 공간을 만드는 것은 재영토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관습, 언어 사용,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대가란 자신만의 영토를 만드는 사람이다. 같은 분야, 같은 일을 해도 자신만의 독특함(unique)으로 자신의 고유한 영토를 만드는 이를 가리킨다. 대가가 되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반복해야 한다. 지겹도록 반복해야 한다.
조정래 작가는 “자기가 노력을 한 게 자기 스스로 감동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그게 정말로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반성하고 있다.
2014년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초밥을 좋아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고른 만찬 장소는 도쿄에 있는 한 초밥집으로 화장실도 없어 건물 공용을 사용해야 하는 작은 가게다. 겉만 보면 정상들의 식사 장소로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가게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이 스시집의 창업자이자 ‘스시 장인’으로 불리는 오노 지로(小野二郎)다. 한국에서는 EBS에서 방송된 '직업세계의 일인자'를 통해 알려졌다.
오노 지로(1925~)는 7살 때부터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26살에 초밥 일을 시작했다. 이후 70년 이상 초밥을 만들고 있다. 오노 지로는 초밥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릴 정도의 실력과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매일 기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는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과거엔 새우를 아침에 미리 익혀 냉장고에 두었다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오면 새우를 익힌다. 문어 요리 방식도 질감과 향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이렇게 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그의 나이 80살이 넘은 때였다. 오노 지로는 수십 년간 같은 일을 했고, 자신이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기술을 발전시킬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대가’란 이렇게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반복과 차이를 끊임없이 하며 자신만의 영토를 만들고, 이를 벗어나 탈코드화하고 재영토화를 매번 하는 사람이다. 반복은 똑같은 걸 매번 계속하는 그런 반복이 아니다.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글 ‘OO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는 듯이’에서 말했듯이, 매일 반복하는 것도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오노 지로는 초밥뿐만 아니라, 손님의 식사 속도도 고려한다. 먹는 양이 적거나 속도가 느린 고객에게는 초밥을 조금 작게 만들어준다. 일행과 식사 속도를 맞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들뢰즈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에 만들어진 틀이나 제한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양성과 창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필자가 틀에 박힌 자기 계발서 읽기에서 벗어나, 들뢰즈라는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은 하루에 평균 약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운다고 한다. 1초당 380만 개꼴로 세포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계산 결과로 볼 때 숫자로 본 인체의 전체 세포가 교체되는 회전주기는 평균 80일, 질량 기준 회전주기는 평균 1년 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몸의 세포 변화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지식과 지혜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일 반복하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읽기와 쓰기는 창조와 생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매일 한 줄의 글을 SNS에 올려도 매일 365일 하면 미래의 나는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내가 된다.
"초밥은 내 영혼이 담긴 음식"... 초밥의 살아있는 역사 95세 장인 '오노 지로'│인터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