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 Oct 12. 2016

글쎄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9 - 김희남(서울)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9 - 김희남(서울)
2016년 8월 26일(목) 홍대 ‘카페 콤마’
 
 
일상처럼 잔잔한 문장을 만들고 싶을 무렵, 연락을 하나 얻었다. 연락에는 긴 문장이 담겨있었다. 어떤 주제로든 대화를 하고 싶다는 문장은 그 시기, 그 순간 내게 특별했다. 며칠 뒤 낯선 그 남자와 나는 만났다. 궁금한 일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서로 하나씩 꺼내면서 시간을 소모했다. 

그는 가슴 떨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PCT(Pacific Crest Trail)를 걷고 왔고 다시 찾을 가슴 떨리는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도움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을지 사실 잘 몰랐지만 거짓을 포함하지 않았던 그 대화 그 느낌 그 마음이 긴 잔상을 남겼다. 어쩌면 계속 실패하고 다시 또 다시 그 가슴 떨리는 일을 찾아 어딘지 모를 길 위에서 서로 망설일지 모른다. 서로 망설일 때, 그때 손을 내밀 그런 인연이면 그런 기억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 보름을 있었다. 그냥 가만히 그냥 어느 구석에서 이 문장을 정리했다.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지쳐버렸을 그때, 가슴 뛰는 일을 찾는 이 기록 이 순간이 작은 위로가 되는 상상을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저요? 요새는 늦잠을 자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것들 해요. 친구들 만나려고 그 약속에 의해서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거 외에는 거의 글을 쓰기도 하고 사진을 정리하고 영상을 정리하죠. 거의 그 활동이 90%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글을 정리하는 거예요.?”
“완전 집중하고 있는 건 작년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기록이에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쓰고 싶어서 그걸 조금씩 쓰고 있거든요.”
 
 
“어떤 여행이었어요.”
“그 여행이요? 처음에는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어요. 도중에 엄청 힘들기도 했고 그런데 힘들면서도 내가 이렇게 힘들려고 여기에 왔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는 순간도 있었고요. 거의 막판에는 정말 큰 고비가 와서 내가 이걸 포기할까 말까 하는 그런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끝냈는데 끝난 순간에 랜드마크 같은 게 있는데요. 그때는 이걸 딱 마주하고 볼 때는 여태까지 이걸 보려고 걸었나 이런 허무함도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저 스스로를 많이 알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내 스스로의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이런 걸 한 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조금 나가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여행은 왜 간 거예요?”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죠. 그 영화 ‘와일드’ 아시죠? 문득 뭘 찾다가 누가 쓴 글에서 이렇게 긴 길이 있구나 하는 걸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러고 말았어요. 전 짧고 굵은 걸 좋아해서요. 그냥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니어서 말았죠. 그런데 그 이후에 제 친구 동생 중에 카카오톡 프로필에 영화 ‘와일드’ 포스터가 있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네이버에 영화 소개하는 글을 쭉 보게 됐는데요. 여자 이야기도 보고 영화 OST 듣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렇게 갑자기 가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 시작이 됐죠. 그런데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결심을 하고 가게 됐어요. 그게 2015년 1월이었고 떠난 게 4월이었어요. 그때 그 길에 섰죠. 그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고민도 있었고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었어요.”
 
 
“그게 PCT라고 하죠? (네, ‘Pacific Crest Trail’이에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미국 서부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 조금 넘어서까지 걸어서 가는 거예요. 산길을.”
 
 
“그 여행을 하면서 어떤 순간이 제일 기억이 남았어요?”
“이상하게도 항상 떠오르는 건 그거예요. (웃음) PCT 중간에 맥도날드가 있어요. 하루에 30~40km 걸으면서 5일 정도 쉬지도 않고 가다가 하루씩 쉬면서 계속 175일을 갔는데요. 그 중간에 어떤 산, 어떤 봉우리 뭐 그런 이정표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때 이정표 중에 맥도날드가 있었어요. 그날은 시작해서 맥도날드까지 46km 가야 하는데 원래는 계획이 없었어요. 30km쯤 가서 쉬려고 했어요. 그때 5km쯤 걸어 왔는데 같이 걷는 형한테 제안을 했어요. 맥도날드 가겠냐고, 그랬는데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하루 종일 걸어도 20km 남았고 그렇게 한참 걷다가 결국에는 맥도날드 이정표를 발견했던 그때가 PCT 전체 중 희열이 제일 컸어요. 먼 길을 걸어서 결국 왔구나. 그때가 21일차인가 그랬어요. 햄버거 두 개 반이랑 엄청나게 먹고. 그게 조금 웃기기도 해요. 왜 떠오르는 게 그거밖에 없을까 했을 때도 조금 신기해요. 아직도 제일 보람 있었던,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라고 이야기 해요. 영상 찍으면서 손 흔들면서 도착하고 그랬거든요.”
 
 
“여행을 다녀와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딱히 계획이 없었어요. 걸으면서도 여행 이후에 뭐할까 생각했는데 딱히 계획이 없었어요. 일단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거길 걸으면서 매일 영상 다이어리와 손으로 쓰고 그런 운행 기록 같은 걸 많이 남겼는데요. 그걸 계속 정리를 했어요. 지금도 계속 정리 중이거든요. 나 다음에 걸을 사람을 위해서 기록을 하는 거라서요.”
 
 
“이제 개인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거 뭐가 있으세요?”
“운동을 좋아하고요. 잠자는 거 좋아하고요.”
   
  
“어떤 운동이요?”
“남들이 잘 안 하는 거요. 런닝을 많이 하기도 해요. 산도 뛰고 마라톤도 하고요. 요새는 클라이밍도 해요. 이거 끝나고 바로 클라이밍 하러 갈 거예요. (웃음) 수영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이 하죠. 집에서는 그냥 맨몸 운동도 많이 하고요. 요새는 산에도 자주 가는 편이고요.”
  
  
“잠자는 거 말고 또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본능적인 건데 먹는 것도 좋아하고요. (웃음) 굶는 걸 잘 못 참아요. 조금씩 자주 먹는 스타일이라서요. 거의 3시간 간격마다 뭔가 계속 먹어야 해요. 꼭 맛있는 게 아니더라도 먹어요. 생존본능이 강한가 봐요. 요즘에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작업하고 그러면서 카페에 주구장창 있기도 해요. 그런 시간도 되게 좋아요.”
 
 
“또 있어요?”
“여행 다녀온 이후로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 하거든요.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여유 있게. 멍하게 걷는 거 좋아해요. 음악 들으면서요. 일부러 집에 갈 때도 천천이 걸어서 늦게 들어갈 때도 있고요.”
  
 
“옛날 이야기를 해볼게요. 초등학생 김희남은 어땠어요? (웃음)?”
“초등학생 김희남이요? (웃음) 되게 소심하고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그러다가 체육 시간에 제일 눈에 띄는 아이.”
  
 
“중학생 김희남은요?”
“중, 고등학교 때가 조금 비슷했는데요. 그때는 고민하던 때였어요.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큰 사건이라고 생각나던 게 다니던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고 엄마가 컴퓨터 학원을 등록하라고 했을 때. 울면서 뛰쳐나갔어요. 그때 살짝 꿈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해요. 방황하게 된 것도 같고요. 그때부터 흘러가는대로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김희남은 어땠어요?”
“약간 꿈을 잃어버렸는데 뭐할지 고민을 하다가 남들 하는 걸 많이 쫓아갔던 것 같아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운동이라서 나는 예체능을 가고 싶은데 부모님은 공부를 하라고 하시고. 결국엔 부모님 말씀을 따라 대학을 준비하고 그랬어요. 사실 대학을 준비했다고 하기보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하라는대로 그냥 말 잘 듣는 그런 아이였어요. 선생님들이 좋아하긴 했어요. 튀지도 않고 틀 안에서 잘 생활하는 아이였으니까요. 공부도 못 하진 않았고.”
 
 
“대학생 김희남은요?”
“많이 바뀌었죠. 그 틀에서 조금씩 막 두드리고 나갔던 것 같아요. 운동을 못 했던 걸 그때 다 터트렸어요. 전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 태권도 동아리를 다녔으니까요. 입학하자마자 태권도 동아리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어요. 군대 다녀와서도 태권도 동아리는 항상 베이스였어요. 스물 다섯 전후로 뭔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때 오지탐사대도 하게 됐고요. 그게 3차 테스트까지 있는데 그게 2박 3일인데. 그때 마지막 날에 둘러앉아서 참가자들끼리 소감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요.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나랑 똑같은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다 앉아있는 거예요. 쓸 데 없는 짓 그만하고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더라고요. 나만 듣는 게 아니구나.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구나. 그 친구들과 많이 공감대가 형성이 됐어요. 그때부터 나도 하면 되겠다, 조금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럼에도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졸업을 한 학기 연기하던 중에 어떻게 또 취업이 됐죠. 건설사에 갔어요. 그래서 사우디에서 1년을 일하게 됐네요.”
 

“사우디에서 보낸 1년은 어땠어요?”
“한 마디로 이거였어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그 뜨거운 현장을 돌면서 멍하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전혀 심장이 뛰지도 않았고 내가 뭘 위해서 이러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아 돈이 다가 아니구나.”
 
 
“1년 후에 퇴직을 한 거예요?”
“네. 나오자마자 퇴직을 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닥치는대로 많이 해보자고 하고요. 여러 가지 많이 했죠. 남들이 잘 안 배우는 운동을 해우자는 생각으로 다이빙을 해보기도 하고요. 그때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하기도 했어요. 오지탐사대 친구들이랑 많이 어울려 다녔어요. 그때 처음 ‘오픈컬리지’에 호기심으로 들어가서 많이 교류하기도 하고요. 그때 여러가지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요. 디자이너나 개발자 같은 분들도 많이 보고요. 그전에는 아웃도어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면 조금 더 넓게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그렇게 거길 거의 8개월이나 다녔으니까요. 매달 12만 원이나 주고. (웃음)”
  
  
“좋으니까 다닌 거잖아요?”
“그렇죠. 재밌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다닌 거고요. 가서 멍 때리고 자기도 하고 옆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오픈컬리지 다닌 이후는 어떻게 된 거예요??”
“오픈컬리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모여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암흑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웃음)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구하고 하려다 보니 오픈컬리지에서 나온 거죠. 몸도 안 좋았어요. 그때 운동을 하다가 부상 당한 상태여서 몸도 안 좋은 상태였어요. 보통은 거기서 받은 스트레스를 운동하면서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 하고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고 뭔가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표 형 말고는 다 잘 맞는 친구들이었으니까요. 만들어내는 건 재밌었어요. 그러다가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수입이 없다보니까 그게 없는 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걸 그만두고 취업 준비 기계적으로 하다가 PCT를 딱 발견하게 된 거죠.”
 
 
“앞으론 어떨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려고 하는데 항상 인생의 모토는 내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게 제 목표라서요. 사실 PCT 하면서 정말 설렜고 모든 것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 목표가 다시 생겼으면 좋겠고 그걸 빨리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그거에 따라서 몰입해서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너무 조급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하는 얘기가, 항상 120살까지 살 거라고 말하거든요. 최대한 오래 살 거고 그 속에서 최대한 많은 걸 하는 게 목표니까요. 그렇게 살려고 버티고 있죠 일단. 사실 취업 준비도 하고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럼 혹시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버킷리스트 같은 것들이 있어요?”
“지금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요. 아, 그런 건 있어요. 윙수트를 입고 날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높은 빌딩에서 다이빙 하는 걸 하고 싶기도 하고요.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해서요. 거의 그런 것들이에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고요. 올해 하려던 건 일단 번지점프를 한 번 하려고요. 올해 목표는 번지점프와 내 책 내는 게 목표였어요. 저는 약간 스릴을 즐겨서요. 그런 게 아니라면 했을 때 내가 정말 뭔가 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요.”
“고마운 사람은 많은데. 지금 딱 떠오르는 건 PCT 있을 때 여러 사람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중에서도 초반에 들린 마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신대요. 우릴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해주고 그러셨어요. 그러면서 아쉽게도 헤어져야 했고, 캠핑장에 데려다 주시고 헤어졌는데요. 그게 거기선 마지막이었는데요. 같이 다니는 형만 개통하고 전 휴대폰 개통을 안 해서 몰랐는데요. 한참 뒤에 모르는 사람한테 응원한다는 문자가 날라오는 거예요. 그 아주머니가 한인 라디오에 사연을 자주 쓰셨는데요. 그때 받은 형의 연락처를 남겼나봐요. 그래서 불특정 다수 한인 분들에게 메시지를 받은 거였어요. 그때 포기할까 말까 엄청 고민하던 때였는데요. 발목이 아파서요. 그래서 그 라디오를 찾아서 다시 들어야겠다면서 들었거든요. 그때 되게 막 감동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그분이 미국 사시다가 한국으로 아예 오셨는데. 갔다와서도 한 번 한국에서 만나기도 했거든요. 그때도 생각이 많이 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 외에도 고마운 분이 많죠.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게 페이스북에 댓글로 응원 한 마디만 해줘도 그게 정말 엄청나게 큰 힘이었거든요.”
 

“그럼 이제 제가 좋아하는 질문이에요. 개인적인 이상형은 어떻죠?”
“나랑 같이 뭔가 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간단히 얘기하면 같이 마라톤을 완주할 사람이요. 크게 보자면 그렇네요.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어요?”
“아직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요. 서로 존중하면서 뭔가 구속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의 길을 스스로 갔으면 좋겠고 저 또한 그러면 좋겠고요. 힘들 때 서로 의지가 되는 그런 생활이면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예요?”
“모르겠어요. 그것도 좀 새로운 경험이지 않을까요. (웃음) 그렇다고 저는 스스로 죽을 생각은 전혀 없고요. 어떻게든 끝까지 살려고 노력할 사람이고요. 그때 되면 뭔가 죽는 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요. (웃음) 여태까지 삶을 되돌아볼 것도 같고요. 후회를 적게 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글쎄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세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사람들이 ‘희남 씨 잘 지내요?’ 하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응, 잘 지내.’ 하는데요. (웃음) ’잘 지내. 너는?’ 가끔은 그럴 때도 있죠. 너무 잘 지내서 탈이라고. (웃음)”
 
 
"어제는 뭐하셨어요?”
“일단 낮부터 밤까지는 클라이밍을 했고요. 그 전에는 내가 뭘했지. (웃음) 바로 전 것도 생각이 안 나네요. 아, 별 거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늦잠을 자다가 밥을 먹고 잠깐 컴퓨터를 하다가 집에서 나왔죠. 세 시 반쯤 도착해서 저녁까지 클라이밍 하다가 백숙을 먹고 집으로 갔죠. (웃음)” 


“오늘도 클라이밍 간다고 하셨죠?”
“네. (웃음)”
 
 
“내일은 뭘 할 생각이세요?”
“내일은 오지탐사대 같이 다녀온 팀이 있는데요. 우리 팀 대장님 댁에서 모임을 할 예정인데요. 지방으로 가야 돼요. 거기가 임실이라서 하루 자고 올 예정이에요. 거긴 오후에 가서 내일 오전에는 홍대에서 그 무슨 클라이밍 용품 세일하는 게 있어서 바지를 하나 살까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까지예요. 좋아요. (웃음)”
“백수의 일상이라서요. 그런데 나름 또 바빠요. (웃음) 재밌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