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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18. 2017

마이너스 통장

세상은 현실이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들썩인다.

작성: 2016.10.26. 


전화가 하나 왔다. 낯선 그녀는 마이너스 통장이 11월 2일 만기인 것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아 그렇냐고 나는 지금 잠시 백수인데 연장이 되겠냐고 걱정하며 되물었다. 그녀는 마이너스 통장도 신용 대출인데 그게 직장이 없으면 연장이 힘들 수 있겠다고, 가까운 지점을 찾아 자세한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사무적이었고 네, 네, 고맙습니다, 하면서 질문을 할 틈도 없이 뚝 멀어졌다.

겁이 났다. 안 되면 말아야지 했지만 그렇다고 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은행을 찾았다. "그, 제가 지금 직장이 없는데 망한 거겠죠?" 물었고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는 표정이 없었다. 그는 주민등록증을 받고 어떤 문서를 건네고 확인을 받고 신용 조회를 했다. 사정 말고 조회가 필요했는데 나는 착각했다.

은행 의자에 앉은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무심하고 허무하게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대출은 연장이 됐다. 안타깝거나 속상한 말 한 마디 없이 금리가 출력된 종이 한 장과 함께 연장됐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큰 고민이었는데 그는 익숙했고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만약을 대비했던 마이너스 통장은 지난해 중반부터 바닥을 드러낸 잔고와 함께 플러스, 마이너스를 반복하며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러게 작년 3월에 취직을 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친구는 타박했고 나는 동의했지만 또 괜찮은 이유를 설명했다. 별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나는 별로 힘들지 않고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다. 무엇을 할지, 어떤 일상을 살지 고민할 뿐이다. 누군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운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인 없는 말을 두고 사회는 검정색이고 세상은 현실이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들썩인다. 아직 잘 모른다. 계속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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