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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24. 2017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꿈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꿈이었다. 꿈에서 할머니는 불편했던 걸음도 아팠던 모습도 없었다. 십여 년 전 그 모습처럼 건강한 모습이셨다. 잠에서 깼다. 거의 꿈을 생략하는데 이런 꿈이 다 있네 했다. 잠이 안 와서 눈을 뜨고 천장을 봤다. 병원에 있는 할머닌 괜찮으실까 잠시 생각했다. 방 건너에서 전화 소리가 울렸고 이내 엄마는 꺼억꺼억 울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강릉으로 가는 내내 다시 돌아오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를 곧 거의 잊어버릴지 모르겠다는 생각, 거의 잊고 살지 모르겠다는 생각, 어떤 기억들이 서로 있는지 그런 생각, 미안한 일이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건강이 어느 한계를 넘었다고 생각한 어느 무렵 식사를 스스로 끊었다. 낫기는 뭘 나아, 왜 이렇게 아프게 해, 왜 여기 저기 때려, 말했다고 들었다. 주사 놓으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들었다. 그 순간들 사이에 사람들이 오고 갔고 나는 그 사람들에서 생략됐다. 다시 보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사람들이 모였다. 삼남 사녀, 아니 이제 이남 사녀 가족들이 모였다. 아는 가족들이 모이고 덜 아는 사람들이 모이고 다시 아는 가족들이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꺼억꺼억 사람들이 울고 다시 울고 다시 울고 다시 울고 다시 울고 다시 다시 다시 울었다. 눈물이 흐르는 일이 낯설었는데 이 며칠 계속 울었다. 할머니를 보지 못 해서 울었고 사람들이 울고 있는 마음이 짐작되기에 함께 울었다. 보통은 서로 웃었다. 지난 추억을 묻거나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묻는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이 자리에 가족을 둥글게 모아 이제 다 잘 지낼 것을 이제 다 괜찮을 것을 보이지 않게 이야기 하고 계셨다.


장남은 없었다. 돌아가셨다. 차남은 사회에 없었다. 그는 스님이었다. 스님은 갑자기 스님이 됐다. 몇 해는 거의 소식을 감췄다. 다시 조금씩 연결은 됐지만 멀었다. 스님은 할머니 가는 길을 지켰다. 아픈 마음 숨겼지만 이내 새어날 때마다 눈가는 붉게 번졌다. 막내는 이제 마흔이었다. 어린 날부터 큰 나이 차이가 아니었기에 삼촌이지만 거리낌 없이 지냈다. 그는 계속 슬펐고 누구보다 긴 시간 울었다.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는 말에 그는 말했다. 부럽다고. 자신은 마지막은 지키지 못 했다고 했다. 다시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계속 그는 슬펐고 한편으로 다른 가족들을 챙겼다.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들이었다. 인사를 하고 그 공간에 그 시간에 함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한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사람들이 들고 나는 과정을 도왔다. 할 수 있는 일이 드물었다. 


할머니가 떠난 이후 강릉 집을 찾았다. 찬 바닥 가운데 할머니 방이 주인을 기다리며 기약을 모르고 문을 열고 있었다. 아끼느라 쓰지 않은 물건들이 방 곳곳에 남았다. 다시 울음 사이에서 한 줌으로 남은 아직 따뜻한 할머니를 집 주위 어느 곳, 집이 잘 보이는 산 어느 곳에 모셨다. 집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산으로 쌓인 그 집에 얽힌 어린 추억들이 생각났다. 아 그때 여기에는 소가 있었고 저기는 토끼를 키웠고 저 근처는 닭이 있었다. 냇가가 있었고 한참을 걸어서 동네 산책을 했었다. 그 사이에는 이미 만날 수 없게 된 할아버지가 있었고 큰 외삼촌이 있었다.


가족들은 강릉 집에 함께 모일 공간을 만들자고 했다. 우리 그리고 우리 다음에 너희들이 모일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른 몇몇은 말했다. 잔디를 심고 정자를 올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수박을 함께 먹자고 했다. 고기도 굽고 말이다. 다시 볼 계기를 만들어서 서로 만나고 어울리면 좋겠다고 그 어른들은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어쩌면 가족들이 다시 이렇게 만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잠시 생각했다. 거의 없겠지 생각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꿈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아직 그 자리에서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밀린 일상으로 다시 복귀했다. 잊어버릴까 걱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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