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옆 인간극장 183 - 김재하(서귀포시 표선면)
목욕탕 옆 인간극장 183 - 김재하(서귀포시 표선면)
2017년 2월 26일(일) 한량유치원
정신 없는 시간 사이에 만났던 그 남자는 때마다 부끄럽게 웃었다. 애써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지 않고 조용하게 어울렸다. 만나는 인연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웠다. 서툴더라도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이른 낮, 사람들은 부스스 일어나 ‘짜글이’를 찾았다. 그는 한 냄비 끓여 내놓고 사람들은 둥글게 모여 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를 하면서 한 끼, 한 끼마다 가까워졌다. 아무 일 없었지만 좋았다.
사람들이 공간을 잠시 비웠을 때 자리를 나눠 앉아 이야기를 했다. 그가 떠나기 전, 잘 지내는지 잘 지냈는지 물었다.
“잘 지내요?”
“정말 잘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음, 이런 거 물어보면 이상해요. 어떻게 지내냐. 많은 걸 보고 많은 걸 느끼면서 지내고 있어요.”
“뭘 봤어요?”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보는 사람, 처음 보는 장소, 처음 해보는 음식,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보고 있어요.”
“여기는 언제 왔어요?”
“2월 5일 저녁 8시쯤 도착했어요.”
“왜 오게 된 거예요?”
“음 처음에는 막연히 회사를 때려치게 돼서. (웃음) 놀자라는 생각으로 왔어요.”
“어떤 회사였어요?”
“실험 동물 센터인데요. 음 연구자나 학교 학생들이 쓰는 실험 동물을 관리하는 센터였어요.”
“어땠어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곳이었어요.”
“왜 그만둔 거예요?”
“계약기간이 만료됐어요. 어쩔 수 없이 나왔죠.”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된 거죠?”
“지금 이제 22일째네요.”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었어요?”
“생각지도 못 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 때문에 정말 멋진 풍경을 봤고 멋진 감정을 느꼈고 새로운 시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뭐- 좋아하는 건 어떤 게 있어요?”
“사진 찍기, 요리 하기, 사람이랑 얘기하기. 그런 게 있어요. (웃음)”
“더 있어요?”
“음 사람 없는 데 돌아다니면서 풍경 찍고 여유 즐기는 걸 좋아해요.”
“올해 계획이 있어요?”
“올해 계획은 서울 올라 갔다가 거제도 내려가서 1년 간 일하는 게 일단 큰 계획이에요.”
“거제도 가서는 어떤 일을 해요?”
“거제도에서는 글램핑장에 가서 글램핑장 운영 및 갤러리 관리를 해요.”
“옛날 이야기를 해볼게요. 초등학생 김재하는 어땠어요?”
“작고 사고뭉치에 슈퍼집 아들이었어요. (웃음)”
“어떤 사고를 쳤어요?”
“불장난을 하다가 동산도 태워봤고요. 도서관 주위 잔디밭도 태워봤고요. (웃음) 또 돌맹이를 던지며 놀다가 자동차 유리도 깨먹고요.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 팔다리도 삐어보고요. 그랬어요.”
“슈퍼는 지금도 해요?”
“아니요. 초등학교 슈퍼 하다가 문구점을 하셨고 지금은 금은방을 하고 계세요.”
“다양한 업종을 하셨네요.”
“그렇죠.”
“초등학교 때 기억나는 건 없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왔는데요. 처음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시 한 달 정도 왕따를 당했어요. 그 이후로는 다시 친해져서 잘 놀았는데요.”
“중학생이 됐어요.”
“그때도 작았고요. 뚱뚱했고요. 그리고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정말 많은 종류의 동물을 키웠었어요.”
“어떤 동물들을 키웠어요?”
“뱀, 도마뱀, 뭐- 고슴도치, 물고기, 기니피그, 햄스터 그렇게 키웠어요. 파충류를 오래 키웠죠.”
“와, 뱀 키운다는 이야기 실제로 처음 들어요.”
“중학교 때 기억나는 다른 일은 없어요?”
“서울에 전학온 게 중학교 1학년 때라서요. 조금 겉돌았어요. 친구들과 놀기는 했는데요. 밖에 동물 관련 동호회 다니고 오히려 친구들하고 잘 못 지내고요.”
“고등학생이 됐어요. 어땠어요?”
“키가 커졌고 살이 조금 빠졌었죠. 하지만 그래도 뚱뚱했어요.”
“그리고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턴 동물을 조금 덜 키우고 바이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기억나는 일은 없어요?”
“거진 주말에는 바이크 동호회 활동을 많이 했고요. 평일에는 친구들 하고 같이 놀거나 학원 다니느라 시간 다 보내고 그랬어요. 딱히 고등학교에 대한 그런 추억 같은 게 별로 없어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됐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술과 담배를 접하고 너무 재밌게 놀면서 친구랑 노는 게 재밌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어떻게 놀았어요?”
“거진 술을 마셨죠 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어요?”
“이건 1:1로 하면 안 될까요. (웃음)”
“대학 생활은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대학 내 CC(Campus Couple)가 엄청 많았는데 그런 거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엠티 가는 것도 재밌고 축제도 처음 해보니까 재밌고. 꼭 재밌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기도 해요.”
“대학 졸업을 하고 나선 어떻게 지냈어요?”
“처음엔 시약 회사 들어가서 영업을 뛰었고요. 주로 대학교 실험실 영업을 뛰었죠.”
“그건 어떤 일이에요?”
“그냥 무작정 연구실이나 연구소 찾아가서 저희 회사 제품을 홍보하고 샘플을 나눠주고 사용해 봐라, 하면서 영업을 하는 거죠. 그때 당시에는 영업을 해보고 싶어서 했는데요. 안 맞더라고요. 실험실 분위기가 도서관 같은데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런 조용한 분위기에 가서 나 혼자 떠들고 그러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전 영업을 싫어해요. (웃음)”
“그건 얼마나 햇어요?”
“6개월도 안 하고 관둔 것 같아요. 그 분위기를 못 견뎌서요.”
“이거 다음이 최근 직장인가요?”
“연세대학교 실험동물실이었고 그 다음이 (최근에 있었던) 서울의과대학 실험동물실에 있었어요.”
“이쪽이 전공이에요?”
“네. 이쪽이 전공이에요.”
“그래서 파충류도 키우고 그랬나봐요?”
“동물을 좋아해서 갔는데 너무 막연히 좋아하는 것만으로 간 거죠. 생각보다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많이 달랐어요.”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게 있어요?”
“음- 최소 10개국 돌아보는 거.”
“꼭 가보고 싶은 덴 있어요?”
“호주요.”
“왜요?”
“전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동물이 많고요. 멋진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형욱이 형이 생각나네요.”
“왜요?”
“어쩌다가 만나고 어쩌다가 차 같이 탔다가 제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알게 해줘서요.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줘서요. (웃음)”
“개인적으로 이상형은 어때요?”
“귀여운 사람이요.”
“다른 면도 있어요?”
“그냥 막연히 이상형이라면 요리를 조금 잘했으면 좋겠고요. 말이 잘 통했으면 좋겠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
“결혼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 결혼은 생각 안 해봤는데요. 진짜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하기 싫은 건 아니예요.”
“결혼을 하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막 도시에서 하는 그런 결혼식 말고 작고 간촐하게 조용하게 하고 싶어요. 둘만 좋으면 되니까요.”
“죽는 건 어떤 거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죽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슬플 수도 있고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죽으면 좋겠어요?”
“조용히 자다가 죽고 싶어요. 편안히 자다가. (웃음) 그게 가장 큰 꿈이죠.”
“지금 문득 미안한 사람이 있어요?”
“부모님이요.”
“왜요?”
“그냥 뭔가 항상 부모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실수한 것도 많을 거고 나 때문에 힘든 것도 많을 거고요. 좋았던 것도 많을 테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보단 내가 실수하고 사고친 게 더 많이 기억에 남으니까요.”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동물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왜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바라보면 신기해서 좋아할 때도 있었고요. 나 혼자 있었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닌데 뭔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이야기 하면 들어주는 것 같아서 그게 좋은 적도 있었고요. 그리고 뭔가 내가 관리를 해주고 내가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크는지 지켜보는 것도 좋았고요.”
“어떤 동물을 좋아해요?”
“저는 고양이.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자기가 필요할 때 오고 그냥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고 자기 관리 알아서 잘해주는 (웃음) 그래서 고양이가 좋아요.”
“지금까지 키워본 동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이 있어요?”
“고슴도치요. 가장 키워본 것 중 햄스터를 제외하고 소형 동물 중 유일하게 새끼를 받아봤고 새끼가 다 자라나는 걸 봤고 그 애들을 키워서 분양할 때 처음 느끼는 동물에 대한 감정도 느꼈어요. 걔네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뱀 같은 걸 키우면 그 친구들도 죽잖아요.”
“죽 죽는데 병 때문에 죽지 않는 이상 수명이 길어요.”
“뱀은 먹이를 산 채로 줘야 하나요?”
“산 채로 주기도 하고 냉동된 먹이를 주기도 하고요. 공격성을 죽이려면 죽은 먹이를 줘야 해요. 산 먹이를 주면 움직이는 피사체에 다 공격적이어서 웬만하면 죽은 걸 주죠.”
“처음 들어서 그런지 신기해요.”
“바이크는 왜 좋아해요?”
“일단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모르게 속도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이크를 타면 스트레스가 많이 풀려요.”
“그래서 여기까지 바이크 타고 온 거예요? (웃음)”
“그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 것 같아요. (웃음) 너무 오래 타고 엉덩이 아프고 춥고 그러니까요. 저건 가져 와서 활용을 잘했으면 괜찮을 텐데 한 5일 탔나. (웃음) 왜 가져왔나 싶어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서른 되기 마지막 1년인데 시간 허투루 안 보냈으면 좋겠고 음- 좋아하는 감정 안 변했으면 좋겠고 많은 걸 보고 많은 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제발. (웃음)”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다들 안 아팠으면 좋겠고. 다들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뭔가를 한다면 그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고. 꼭 다시 만나서 또 짜글이 한번 끓여주고 싶어요. 더 요리 실력이 는다면 더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싶고 그래요.”
“요리는 왜 좋아해요?”
“원래는 막연히 혼자 집에 있으니까 요리를 해먹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대충해 먹는 것보단 맛있게 해먹어야겠고. 이 요리 저 요리 하다 보니까 그걸 누군가에게 해주고 그걸 먹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걸 보니까 더 하게 되고. 그래서 요리를 좋아하죠.”
“오늘은 뭐했어요?”
“새벽 5시에 유진이 가는 거 배웅하고. 잠깐 자고. 일어나서 현정이랑 새롬이랑 먹을 짜글이 끓여놓고 빨래할 거 빨래하고. 씻고. 쉬림프 버거를 먹었죠. (웃음) 그리고 지금은 이걸 하고 있어요. (웃음)”
“어젠 뭐했어요?”
“어제 뭐했죠? (웃음) 섭지코지를 갔고요. 바람을 열심히 맞으며 풍경을 보다가 종달리를 갔어요. 서점을 잠깐 들러서 책 보다가 스테이지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모히또를 한 잔 먹고 저녁에 장을 봐와서 방어회에 매운탕, 콘치즈, 어묵탕을 먹었어요. 이런 거와 함께 밤새 놀았어요. 술을 먹으며 (웃음) 아 그리고 노래도 열심히 부른 것 같아요.”
“내일은 뭐 할 거예요?”
“내일은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6시에 출발, 8시 30분 배를 타고 완도항에 11시쯤 도착하면 순창에 있는 금산여관에 가서 형욱이 형을 만나고 바로 거제로 이동을 하고 거기서 면접 아닌 면접을 볼 것 같아요.”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형 제발 자요. (웃음)”
“잤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