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tabook Nov 14. 2022

엄마랑 별 보며 잡담하지 않을래?_미 서부 오토캠핑

고민하는 프리랜서 딸과 끝없이 달리고 싶은 엄마의 행복 논하기

캠핑카에 짐을 풀고 나왔다. 컨테이너에 들어가니 가이드님은 어느새 요리사로 변신해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운전, 가이드, 점심 도시락, 고기 굽기... '김종욱 찾기'에 나오는 멀티맨 같네.


그는 미국에 와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다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역시 체력이 있으면 뭐든 하는구나.


테이블에 준비된 밑반찬, 국, 밥을 접시에 덜어서 식탁에 앉았다. 여행 파티원이 모두 앉아 있었다. 차에서 얘기를 거의 나누지 않아 통성명부터 했다. 젊은이 3명은 대학생, 7살 아들과 함께 온 부부는 결혼 10년 차라고 했다. 다들 낯을 가리는지 말이 많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나는 어제 카지노에서 고여사가 잭팟을 아깝게 놓친 얘기를 늘어놨다.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가이드 한 분 중에 2억 원 따신 분까지 봤어요. 대학생인데,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땄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사심이 없어야 했다) 제가 라스베이거스에 살잖아요. 저도 카지노 정말 많이 갔어요. 소소하게 많이 땄는데, 한 번에 제일 많이 땄던 때가... 2만 불."


"오 정말요? 그럼 2천만원이 넘네요?"


"그렇죠."


"와 진짜 많이 땄다. 그걸로 뭐 하셨어요?"


"그냥 어영부영 다 썼죠 뭐. 근데 생각해봐요. 카지노를 많이 갔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쓴 돈이 얼만데... 2천만원보다 훨씬 많이 썼어요. 오히려 손해야 손해. 이젠 카지노 거의 안 가요. 가끔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정도."


하긴, 주식하는 사람들도 그러지 않나. 주식은 안 하는 사람이 수익률 0.0%로 가장 잘하는 거라고.  


"그렇긴 하죠. 그래도 울 엄마가 잭팟 터졌으면 평생 일 안 하고 먹고사는 건데. 맨날 이렇게 여행 다니면서."


그때 대학생 한 명이 물었다.  


"언니, 그럼 회사 휴가 내고 오신 거예요?


"아뇨, 회사 안 다니고 혼자 일해요. 프리랜서예요."


그때도 1인출판사를 운영하고는 있었지만 내 정체성은 사장보단 프리랜서에 가까웠다. 책 출간보다는 편집 외주, 번역, 기타 잡다한 일로 돈을 더 벌 때였으니.


"정말요? 제 꿈이 프리랜서거든요!"


"아 그래요? 어떤 쪽으로 일하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제가 과는 경영학과인데, 회사 다니기 싫어서요. 언니는 어떻게 하다가 프리랜서 하신 거예요?"  


"그게 얘기가 좀 긴데.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했거든요.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그만두고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데 일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다니다가 퇴사하고 출판 쪽 프리랜서가 됐어요."


"짱 멋지다. 저는 책을 안 좋아해서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저 회사 진짜 다니기 싫거든요. 근데 취업 안 하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되는지 막막해요."  


회사를 안 다니면서 돈 벌고 싶은 마음, 나도 잘 안다. 나도 10년 전엔 딱 저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땐 첫 회사에서 의미 없이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난 업무도 싫고 조직도 싫었다. 회사 안 다니고 프리랜서로 먹고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이 대학생이 과연 프리랜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찬찬히 뜯어보니, 화장도 곱게 하고 옷도 비싸 보였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꾸미는 걸 좋아하면 프리랜서 초기 생활을 견디기 힘들다. 당장 돈이 없어 쇼핑도 못 하고 미용실도 못 가면 우울해져서 금세 회사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금수저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들을 말해주고 싶었다. 자유를 얻으려면 좋아하는 것 몇 가지는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어도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더란 걸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예의상 멋지다고 해준 건데 괜히 오버하나? 묻지도 않은 조언은 꼰대의 잔소리다. 쿨한 언니처럼 대답하고 마무리했다.  


"아우 아직 창창한데 뭘! 하고 싶은 분야 잘 찾아봐요. 할 수 있어요."


사실 이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대학생이면 아직 젊고, 열심히 찾으면 길은 있다. 내가 프리랜서의 가능성을 본 게 30살 넘어서니까.


고여사와 나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 캠핑카로 돌아왔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예뻤다. 도시의 밤하늘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아까 그 대학생에게 못다 한 얘기를 엄마에게 하고 싶었다.


"엄마, 나는 얼마 전까진 싫어하는 걸 인생에서 치워버리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회사지, 나한텐. 꼭 좋아하는 걸 하진 않아도 싫은 것만 안 하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거 같아."


"왜? 너 회사 다니는 거 질색했잖아."


"응 회사를 안 다니니까 불행하진 않아. 근데 난 안 불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복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건데, 지금 행복하진 않거든. 어쩜 회사 다닐 때 행복한 일이 더 많았던 거 같기도 해. 좋은 데서 맛있는 거 먹고 술 마시고 사회생활하고 인맥 쌓고. 뭐랄까... 지금 내 세상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싫어하는 걸 쳐내서 속이 부대끼는 건 줄었는데, 내 울타리가 좁아진 것 같아서 그 점은 아쉬워. "


아까 그 대학생은 힘들게 회사를 다니면 꾸미는 행복을 얻겠고, 회사를 안 다니면 회사원의 고통은 없지만 꾸미는 행복을 잃겠지. 내가 싫은 걸 하면서 좋은 것도 가져가느냐, 싫은 걸 안 하면서 좋은 것도 포기하느냐.


나는 후자를 택했고 후회는 없지만, 글쎄 전자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딸, 근데 행복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을까? 엄마가 맨날 그러잖아. 오늘 행복하면 된 거다. 그게 최고다. 길게 보지 말고 순간에 집중하는 거야."


"맞아. 너무 길게 볼 필요 없는 거 같아. 가만 보면 행복을 외부 조건이나 상황에서 찾으려 해서 늘 멀게 느껴지나 싶기도 하고. 엄마는 살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엄마는 좋은 거 많았지. 그중에서도... 엄마는 꼭 달려보고 싶었어. 그래서 마라톤 동호회에 들었잖아. 춘천마라톤을 꼭 뛰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춘천마라톤 참가해서 완주했어. 42.195km를 뛰었지. 목표를 이룬 거야."


"맞아 엄마 마라톤 했었지! 대단하네.


"마라톤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3번씩 밤마다 뛰면서 연습했잖아. 더 젊었을 때 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아. 또 뛰고 싶었는데 유방암 걸려서 그다음부턴 못했지."


고여사는 55세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당시 고여사는 가족에게 수술하러 간다고 말하는 대신, 친구들과 일주일 여행을 간다고 했다. 여행 전 며칠 동안, 꼭 안 돌아올 사람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다음날 퇴근길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 오라고. 혼비백산해서 뛰어간 병원엔 유방암 수술을 마친 고여사가 누워 있었다.


"아직도 어이없어. 어떻게 유방암 수술하는데 가족한테 말을 안 해?"


"엄마는 너희들이 걱정하는 거 싫으니까. 걱정해서 바뀌는 것도 없는데, 굳이 왜 걱정시켜? 그냥 혼자 수술받고 오려고 했지. 아빠한테도 말 안 하려다가 보호자 없으면 수술 안 된다고 해서 말한 거고."


고여사는 유방암 수술과 10회에 걸친 항암치료를 모두 씩씩하게 이겨냈다. 항암치료가 다 끝났을 때 고여사는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되고 약간 수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그래도 10년 지나 유방암 완치 판정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앞으로 나랑 여행 많이 다니자."


"그래, 다음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러 가자. 엄마 거기 꼭 걸어보고 싶어."


삶에서 뭘 선택하든 그게 행복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도, 엄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원 없이 걸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선택 기준이 가장 나다운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해나가는 게 된다면,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

잘하면 우연히 행복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세수하러 가는 꼬여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