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것은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시작이 있다.
2주가 넘는 여행이 이렇게 후딱 지나갈 줄이야. 고여사와 나는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수속을 마쳤다. 여행 첫날 인천공항에 고여사가 끌고 왔던 거대한 주황색 캐리어는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 무게가 다 우리 뱃속으로 들어와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 주었지.
우리는 큰 짐은 수화물로 부치고, 가벼운 가방만 들고 탑승 게이트 근처로 갔다.
15박 16일 동안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니언-캘거리-재스퍼-밴프-밴쿠버를 오가며 여름, 겨울, 가을을 넘나든 여정은 다이나믹했다.
즐거웠지만 조금 지치기도 했다. 65세 고여사와 다니며 모든 일정, 여행 스팟, 숙소, 식당을 고르고, 혹여나 고여사가 힘들진 않을지, 숙소가 불편하진 않을지, 방문한 곳이 생각보다 별로이진 않을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고여사는 뭐든 오케이, 굿, 노 프라블럼이었다. 여행 메이트로 최적이신 분.
15박 16일 간의 북미 여행. 고여사는 딸과 함께한 여행이 즐거웠을까?
"딸, 엄마는 사람들 줄 선물 사야 돼. 각자 40분씩 쓰고 여기서 다시 만나자."
"좋아. 나도 둘러보고 올게."
밴쿠버 공항엔 사람이 많았다. 기념품 가게도 북적북적했다. 나는 메이플 시럽 몇 병과 밴쿠버 로고가 그려진 후드티를 샀다. 사람들 줄 선물은 로키 마운틴 솝 컴퍼니에서 충분히 샀기 때문에 뭔가 더 살 필요는 없었다.
40분 후 고여사와 약속한 자리에서 만났다. 고여사는 커다란 쇼핑백에 기념품들을 넣고 나타났다. 그중 메이플 시럽이 제일 많았다. 역시 우리는 생각이 비슷하구나.
우리는 비행기 탑승 전 점심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캐나다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였다. 나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고여사는 웬디스에서 햄버거를 시켰다. 내 샌드위치가 먼저 나와 가게 앞 테이블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고여사를 기다리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초라한 행색의 인도계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몸을 우리 테이블 쪽으로 완전히 돌리고 있어서 내가 고개만 돌리면 눈이 마주칠 정도였다. 왜 저렇게 앉아 있나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고여사가 햄버거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우리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고여사는 햄버거 포장지를 뜯다가 할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저 할아버지 배고픈 거 아냐?"
"모르겠어. 근데 여긴 비행기 티켓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잖아. 비행기 탈 돈이 있는데 밥 사 먹을 돈이 없겠어?"
"그러게."
할아버지는 시선을 우리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딸, 할아버지한테 혹시 배고프냐고 물어봐."
물어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할아버지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말을 걸면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거나 무슨 짓을 할 까봐 무서웠다. 혼자였거나 친구랑 있었다면 물어봤을 것 같지만, 고여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싫어. 그냥 이상한 할아버지 같아."
고여사는 햄버거를 한 입 더 먹었다. 그러더니 안 되겠는지 다시 말했다.
"좀 물어봐줘. 아무래도 배고픈 거 같아. 사람이 밥은 굶지 말아야지. 얼른 물어봐. 응?"
나는 여전히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물론 배가 고플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 우리한테 해코지하면 어쩌지? 하지만 고여사가 너무 완강히 말하므로 아예 무시할 순 없었다. 어떡하지?
그때,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도,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할아버지는 저쪽 건너편 테이블로 갔다. 그러더니 한 중년 커플이 음식이 가져오는 걸 보고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아까 그랬듯이 이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들은 나처럼 할아버지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그중 남자가 할아버지에게 뭐라 뭐라 묻더니 가져온 음식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가게로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아... 할아버지는 배가 고픈 게 맞았구나.
"엄마, 배고픈 게 맞았나 봐. 저 사람들이 할아버지한테 먹을 걸 줬어."
"것봐. 배고픈 거라니까. 우리가 줬으면 좋았을걸... 에이."
배가 고픈 건데 내가 괜히 의심했네. 할아버지에게 미안했다. 고여사에게도 미안했다. 떠나기 전에 원하는 대로 베풀 기회를 줄걸.
어느덧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해 나란히 앉았다. 한국 가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다음에는, 아니 먼 훗날 언젠가는 꼭 1등석에 울 엄마 태워줘야지.
"엄마, 집에 갈 준비 됐어?"
"응, 이제 가도 될 것 같네. 재밌게 여행 잘했어."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고여사와 나 둘 다 잠을 거의 못 자 퀭한 상태였다. 퇴근시간이라 공항철도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가는 비행기에서도 잠을 못 잤는데, 올 때도 못 잤네. 이제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피곤하니까 한편으론 여행이 끝나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
"응 맞아. 엄마, 우리 나중에 또 여행 가자. 앞으로 시간 많으니까,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다니면 되겠어."
"좋지."
어느덧 열차는 고여사가 내려야 하는 계양역까지 왔다. 고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여행 내내 내가 끌고 다녔던 커다란 주황색 캐리어를 고여사에게 건넸다.
고여사는 출입문 앞에 섰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고여사가 두 검지 손가락을 들어 얼굴에 눈물을 그려 보였다. 나도 갑자기 찡해졌다. 한 몸처럼 다니던 우리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출입문이 열리고 고여사가 내렸다. 나는 뒤를 돌아 고여사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고여사가 뒤를 한 번쯤을 돌아보겠지 싶었는데, 역시나 앞만 보고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그렇지, 저렇게 앞만 보고 앞으로 전진해야 고여사지.
출입문이 닫히고 이제 열차는 내가 내려야 하는 홍대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65세 엄마와의 북미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누군가 엄마와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여행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엄마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16일 내내 매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