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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Jan 05. 2023

에필로그_65세 그녀와는 어디든 가지

다시 어디든 가요, 우리.

금방이라도 다시 여행을 떠날 것 같던 우리는, 각자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북미 여행을 한 건 2018년 가을이다.


2년 후 가을, 고여사는 신우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 수술 후 10년이 지나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다음 해였다. 암의 크기가 커서 신장 하나를 다 떼어냈다. 항암치료도 연달아 받았다.


고여사가 한창 항암치료를 받을 때 나는 결혼했고, 고여사는 항암치료 때문에 퉁퉁 부은 다리를 한복 치마로 가리고 참석했다.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친 고여사는 언제 아팠냐는 듯 활기차게 생활했다.


그러다 다시 2년 후 봄, 고여사는 폐로 전이된 암을 발견했다. 또 폐 하나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이때 나는 임신 7개월이었다.


고여사 수술날 병원에 못 갔고, 출산 이후에도 한참 동안 고여사를 만날 수 없었다. 고여사는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 100일이 넘어서까지 손주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고여사를 몇 달 만에 병원에서 만난 날, 충격받았다. 세 번의 암수술과 항암치료 때문에 대머리가 된 고여사는 많이 봤지만, 이번 항암치료는 약이 너무 독해 몸무게가 38kg까지 빠져 뼈밖에 안 남아 있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캐나다 숲속을 거침없이 누비던 우리 고여사가 어쩌다 이렇게 빼빼 말랐을까?


우리가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며 신나게 미래를 얘기할 때, 2년 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을까?

사실, 누가 자신과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2023년 새해, 고여사는 여전히 활기차게 산다. 하나밖에 없는 신장과 하나뿐인 폐를 가지고 매일 걷고, 산에 다니고, 스마트폰을 배우러 다니고, 뜨개질을 하고, 코스트코에 다니고, 때때로 손주를 보러 온다. 조금 마른 것 빼고는 예전과 비슷하다. 조금은 기운이 떨어지고 투병으로 인한 고단함이 얼굴에 살짝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고여사 생각을 많이 했다. 육아는... 정말로 보통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이 나만 잘하면 됐는데, 육아는 내가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사실 잘하는 것의 기준도 없다. 그렇기에 늘 고민의 연속이고,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육체 및 감정 노동이 계속계속 계~~속 이어진다.


모든 엄마들이 그랬듯, 고여사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총 22개에 달하는 글을 쓸 때마다 고여사에게 보여주면 늘 '우리 딸 글 잘 쓰네, 멋지다, 재밌네' 하고 응원해줬다. 덕분에 돌도 안 된 아기를 키우면서 고여사와의 북미 여행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지막 글을 마치고는 비로소 여행이 마무리된 것 같아서 가슴이 찡해졌다. 글을 쓰는 내내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고여사랑 여행을 다닌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설레고 행복했다.


우리 모녀는 여전히 '내년에, 내후년에, 몇 년 있다가'를 말하며 미래를 보고 산다. 과거에도 그랬고, 상황이 달라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갖는 희망엔 변함이 없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일을 겪으며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순간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건 내가 지금 경험하는 이 순간이고, 이것이 삶 자체다.


"나는 운동화만 신으면 용감해져요!"라고 말하며 어디든 누비고 다녔던 고여사. 힘든 일이 있어도 늘 양지 식물로, 해를 바라보며 힘차게 살기를 응원한다. 더불어 나에게도 같은 응원을 보낸다.


다음에 엄마랑 여행을 가게 되면, 절대로 내 음식을 뺏어 먹는다고 구박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쫄쫄 굶어도 엄마 다 먹으라고 줘야지.


이로써, 65세 엄마와 떠난 북미 여행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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