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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Jan 13. 2020

양준일, 그리고 '부자 증세, 복지 확대'

'시간여행자' 양준일을 통해 살펴보는 성공과 실패의 사회학

이토록 극적인 반전이 또 어디 있을까. ‘시간여행자’ 가수 양준일 얘기다. 연예계를 떠난 지 20여년 만에 맞는 전성기라니. 팬미팅 티켓 발매 게시가 시작되자마자 서버가 다운되고, 순식간에 매진이 되는가 하면, 지난 4일에는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하여 “출국금지 양준일”을 외치는 팬들의 격한 응원을 받기도 했다. JTBC에서는 <특집 슈가맨 양준일 91.19>라는 제목으로 특별 프로그램(무려 2부작이다!)까지 편성했다고 하니, 가히 열풍수준이라 할만하다.     


※ <특집 슈가맨 양준일 91.19> 특별 프로그램은 JTBC에서 1월 16일과 23일에 방송되며, 그의 입국부터 팬미팅까지 2주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한다.(관련기사)


양준일 팬미팅 사진. (리베카세탁소@rebecca_laundry 제공)


그의 데뷔부터 은퇴, 그리고 재성공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었던 것일까. 그의 데뷔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는 1991년 ‘리베카’라는 데뷔곡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미국 교포 출신’의 가수, 그리고 특이한 패션감각과 음악 취향 등. 한국사회는 아직 그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다양성’,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 것’으로 인식했다.     


“그가 서울 대학로 인근 야외무대에 오르자 어디선가 돌이 날아왔다. 누군가의 일탈을 받아들이지 못해 퍼부은 폭력이었다.” (관련기사)

 

"양준일은 ‘슈가맨3’에서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네게 (비자 갱신)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관련기사)


'다름'에 대한 혐오

     

그를 내쫓은 것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획일적인 당시 ‘한국사회의 풍토’였다. 그의 실패를 온전히 그의 ‘역량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실패에 대해, ‘사회적 환경’도 한몫했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20여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은 그의 ‘성공’은 어떨까. 이 성공을 온전히 그의 ‘뛰어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실패에, 사회적 환경이 한몫했던 것처럼, 그의 성공도, 사회적 환경의 기여는 없었을까.


전문가들은 유튜브란 지극히 자유롭고 방대한 플랫폼이 ‘인물과 시대의 소환’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그의 신드롬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관련기사)     


하나의 거대한 영상박물관인 ‘유튜브’란 플랫폼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편하게, 언제나 어디서나 소비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라는 특정한 시대적-사회적 환경이 있었다. 이를 빼고 ‘시간여행자 양준일의 성공’을 말할 수 있을까.     


유튜브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동영상 플랫폼과 스마트폰 시대의 힘


그의 실패가 그의 ‘부족함’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듯, 그의 성공도 온전히 그의 ‘역량과 노력’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실패는, 온전히 그 사람의 탓이 아니다. 또 누군가의 성공은, 온전히 그 사람의 공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사회의 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온전히 그 개인에 의한 성공도, 또 실패도 없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뛰어난 경영가임은 틀림없지만, 그 삼성이란 그룹에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한 것은 한국사회이지 않은가.     


'성공'과 '실패'는, 그 개인의 '역량'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반드시 '사회의 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공과’를 말할 때, 사회의 작용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 속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를 ‘정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간단하다.     


‘부자 증세, 서민복지 확대’     


‘있는 자들’은 그만큼 사회의 혜택을 받았으니 그들에게는 ‘더 많은 의무’가 필요하고(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 ‘없는 자들’은 그만큼 사회의 혜택에서 소외되었으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부자’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불로소득’(주로 부동산)에 의한 부자인지, ‘근로소득’에 의한 부자인지 말이다. ‘불로소득’에 의한 부자라면 ‘더 더 많은 의무’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힘들게 번 돈인데,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그게 온전히 당신의 공이 아니라니까.      


우리가 이 정도의 인식만 가져도 각종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된 우리사회에 건전한 논의와 토론이 조금은 숨 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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