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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동언니 May 06. 2019

나는 왜 여행을 다니는가

feat.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

파리로 가는 비행기표를 산 뒤에 사람들이 나의 휴가계획을 물을 때마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저 프랑스 가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대답은 “좋겠다”와 더불어 “진짜 조심해야 해”였다. 여기에 온갖 소매치기 사례들이 더해졌다.

소매치기 방지를 위해 구매한 물건들. 휴대폰 뒤에 붙이는 고리도 처음 사봤다.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이 더 기억에 각인되는 법인데 여기에 구체적인 예시까지 추가되니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서 내가 한국에서 조심하는 것만큼 여행지에서도 잘 챙기고 다니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나도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비행기에서 내려 심카드를 사고 로이시버스를 타러 갈때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워서. 그런 내 자신을 보며 문뜩 “나는 왜 그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다니는거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알랭드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몇가지 답을 준다. 


1. 스스로 작다고 느끼기 위해(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p229)


2.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중략)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p213)


3.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우리가 휴게소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영 중에 기대하기 때문인 것이다./p87)


4.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호기심은 몇 가지 크게 뭉뚱그려진 질문들로 이루어진 중추로부터 밖으로, 때로는 아주 먼 곳까지 확장되는 작은 질문들의 사슬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p163)


로이시버스를 타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중 딱 내가 여행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매년 두세번씩 비행기표를 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답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여행에서 행복했던 순간들과 오래 기억에 남았던 추억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여성 직장인으로서 갖는 작디 작은 생활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고자 여행을 가는구나.


내가 보고 들으며 형성된 사고의 틀은 아주 제한되어 있을 것이다. 90년대에 태어나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딱 그 정도의 프레임일테지. 그리고 점점 하는 일, 만나는 사람 등도 더 국한되고 있으니 이제는 그 프레임이 작아질 일만 남았는데 책, 여행 등은 조금이나마 그걸 넓히고 깨는데 도움을 주는 듯하고 나는 그 과정에서 소소한 행복함을 경험하는 것 같다.


니스 전망대에서!


예를 들어, 니스 전망대를 올라가는 사람으로 가득찬 엘레베이터 안에서 땡깡을 부리는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몇차례 아이를 타일렀고 사람들은 그냥 희미하게 웃으며 그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순간에 문뜩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서로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가 칭얼대고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아이를 필요로 하는 성숙한 사회구성원들은 그 아이가 커가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하는데 나조차도 기차나 비행기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아 왜 애를 데리고 타’라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리게되고 그런 눈초리들로부터 부모는 움츠러들게 되겠지. 내가 민폐를 끼치는건 아닐까하며 매순간 조마조마하게 되겠지. 아이를 기르는 부모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학생들, 노인들 등 각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에게 ‘누구는 이래야해’라는 식의 높은 잣대를 들이밀어서 우리가 눈치를 보고 억압감을 느끼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장단점이 있던 한인민박. 여러 한국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점은 좋았다.

이런 찰나의 생각들이 내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냥 매일매일 회사-집-회사-집, 가끔 약속으로 이뤄진 일상에만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생각들을 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리고 같은 한국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혼자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도치않게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가 많은데, 이때 새삼스레 내가 한국에서도 얼마나 좁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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