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기억 Dec 13. 2023

소개팅 할래?

사실, 저는 얼굴을 봅니다

서른 중반. 서울살이의 팍팍함에 못이겨 본가로 '튈' 계획을 세우고 있던 즈음. 회사에는 언제 퇴사 통보를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나의 고민이 얼굴과 태도에 드러난듯 회사 상사가 어느 날, 커피 한잔 한자며 나를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는 "요즘 어때요?"라는 뻔한 안부를 물었고, 나는 "재미없어요"라는 대답을 하였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때였고, 상사는 모든 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신나는 일을 찾아봐요"라는 통속적인 조언을 남겼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시험 준비 때문에 당분간 보지 못하게 될 대학 선배와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선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지금도 그렇다), 항상 '네가 왜 연애를 못하는지 모르겠어!'를 연발하고는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내 연애에 진심이었고, 그래서 내가 소개팅을 한다는 이야기만 전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세번은 만나봐! 쳐내지 말고"! 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그럼에도, 아 그 사람은 안되겠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이기도 했다.


"너 혹시 남자 볼 때 얼굴 보니?"


라는 질문을 내게 던진건, 막 탕수육을 입에 우겨넣고 있을 때였다. 


솔직히 남자 볼 때 얼굴 안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면,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지!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 나는 마음과 달리, "아니오, 안보는데요."라는 답을 했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엄청난 얼빠다). 내 대답에 선배가 반색을 하며 "그럼 소개팅 할래?" 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함께 식사를 하던 다른 선배가 해보라며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추후에 들었는데 이는 상대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그녀의 기민한 전략이었다).


상대는 선배의 남편분 회사 동료.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딱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해주기 싫다는 것을(과거, 남편분이 선배의 부탁으로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거하게 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겨우 겨우 설득했다고.


쉬는 날에는 아침에 동네 뒷산에 올라가 꼭 운동을 하는 사람. 주변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 그를 설명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곧 서울을 떠날건데, 소개팅을 하면 무엇하나 였고, 그 다음으로는 소개팅 해서 한 번도 잘 된 적 없잖아? 였다. 그래. 항상 잘 안되어온 소개팅이, 이번이라고 잘 되겠어? 싶었다. 거기다 "집에만 있지 말고 좀 신나는 일을 찾아봐요"라는 상사의 말이 머릿속에 오버랩 되면서, 소개팅이 '좀 신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선배가 살면서 소개팅을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랄까. 선배는 내게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기다려봐, 곧 연락이 올거야! 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을 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저 선배의 남편과 같은 회사(심지어 선배 본인은 남편의 회사 이름도 모른다)에 다니고 있는 동료라는 것 뿐. 나이도, 이름도 몰랐다.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선배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당분간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상황. 그 바쁜 와중에 후배 소개팅까지 신경울 써 준 것인데, 공부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뭐. 어차피 잘 될 생각도 없는데, 그냥 한번 만나고 오지 뭐. 굳이 나이랑 이름을 알 필요가 있겠어? 그런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연락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

.

.

그리고 얼마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개팅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톡을 보며, 아, 이 사람 소개팅 많이 해봤구나, 그런 게 느껴졌다. 카톡을 주고 받으며, 그제야 그 사람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카톡 프로필을 보면서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지만 쉽게 짐작이 가질 않았다. 프로필에는 총 3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분명 본인 사진일텐데, 사진마다 사람이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면 사진마다 표정에 장난기가 그득하다는 것. 서로 사는 지역을 오픈한 뒤, 정확히 중간지점에서 약속 장소를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주말에 드디어 우리는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