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Jun 07. 2022

지지리 궁상이 몸에 밴 이유

지난 금요일, 아이 하원 시키면서 발목을 삐끗하며 철퍼덕 넘어졌다. 쫑알쫑알 떠드는 아이 말에 대꾸하랴, 차 오는지 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는 틈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넘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액정에 금이 갔는데 다행히 붙여 둔 강화 유리 필름만 손상됐고 불행히 내 왼쪽 엄지발가락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넘어졌길래 엄지발가락이 아프나 싶었는데 이렇게 넘어지면서 발가락 골절되는 일이 꽤 있다길래 다음날, 발을 절뚝이며 정형외과에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난 아프면 좀 버티는 쪽인데, 골절은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부랴 부랴 달려갔다.)


다행히 사진상으로 골절은 보이지 않고, 힘줄이 부었을 수 있다며 통증이 지속되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 말에, 데리러 오겠다고 집에서 대기 중이던 남편에게 택시 타고 들어가겠다고 연락하고 발을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 내 걸음으로 10분 거리였고, 발을 좀 절뚝이니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골절도 아니라는데! 굳이 택시 탈 일이 무엇일까 싶었다.


당연히 택시 타고 왔을 거라 생각한 와이프가 걸어왔다는 걸 안 남편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내가 너 그럴 줄 알아서 그렇게 데리러 가겠다고 한 거야!" 한 소리를 한다.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런 말을 했었는데,

"여보 난 쇼핑이 그렇게 즐겁지가 않아. 어떤 업무 같아. 이런 견과류 하나를 사더라도 그래. 봉지당 얼마인지 가격을 생각하고 이것저것 비교를 해대니 돈 쓰는 게 오히려 일이야."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수다를 떨다가 장난으로

"여보, 나 같은 여자 만난 걸 복으로 알아, 정말 잘 만난 줄 알아. 여보 넌 좋겠어. 나만 짠하지."

그랬더니

"맞아, 넌 좀 짠하다."

그러는 게 아닌가. 내가 짠하다고 해놓고, 막상 남편이 짠하다고 인정해주니 이게 뭐지 싶어

"여보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짠한 줄은 아는 거야? ㅎㅎ 근데 또 내가 뭘 짠하냐!"
"견과류 한 봉지 당 가격 생각하며 산다며! 짠하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보가 한 달에 일억을 벌어오든, 십억을 벌어오든, 나는 그렇게 사는 사람인 거야.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 거야."




그러게,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사람으로 된 걸까?


쓰지 않는 공간에 불을 켜 두면 견딜 수 없는 사람,

세면대에 물 틀어놓고 장난치는 여섯 살 아이에게 물 부족 국가부터 시작해 일장연설 잔소리를 하는 사람,

조금 더 걸어가면 될 거리에 택시비를 쓰는 게 아까운 사람,

나 혼자 있을 땐 더워도 에어컨을 못 키는 사람,


어떤 부분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어떤 부분은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궁상맞을 때가 있다.


이 돈이면... 보고 싶은 책을 한 권 사겠네.

이 돈이면... 우리 OO 소고기 한 번 사서 구워주겠네.


이 돈이면, 이 돈이면.

이 생각으로 기회비용을 비교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어떤 특정 부분에서는 지지리 궁상이 몸에 뱄다. 그게 공평하게 모든 부분에서 그럼 좋으련만!


누구나 인심이 박해지는 부분, 후해지는 부분이 있겠지!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견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