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Jun 21. 2022

삼칠일에 쓴 일기

다시 보는 육아일기. 2017. 6. 20

동동이의 삼칠일이 오늘이다. 매일 보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자라고 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며칠은 먹고 자느라 하루를 꼬박 다 쓰더니 이제 부쩍 눈을 뜨고 앙앙 소리를 내며 울기도 한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리원 생활 하루 이틀은 실감하지 못했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니 그곳은 진정 천국이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아이를 곧 낳는다면,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무조건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돈 걱정은 나중에 하고...)


아이의 이름을  많이 고민하다가 지었고, 출생신고도 마쳤다. 우리의 등본에 아이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함께 있는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혼인신고를 하고 등본을 받아  때와는  다른 감정이다. 마냥 설레기만 했던 그때와는 다른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진다.




출산할 때 너무나 큰 고통에 심신이 몹시 피폐해졌었다. 정말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낯선 경험에 난 며칠을 넋 놓고 살다가 정신을 차린 것 같다. 병원에서 눈 감으면 꿈속처럼 그 고통스러운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는데 악몽이 따로 없었다.

출산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견뎌내고 나면 훈장처럼 엄마라는 배지를 당당하게 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체만으로도 서툴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몸보다, 얼굴에 로션 하나 슥슥 바를 정신이 없는 것보다, 유축을 하며 가슴을 훌렁 드러내고 젖을 짜는 내 모습이 낯설어 울었다. 밤에는 조금 더 울었고, 그러다 아이를 보면 행복해 웃고 있는 요즘 생활이다.


내가 엄마라니! 불현듯 다가오는 현실에 뒷걸음질치고 싶게 무섭기도, 아이를 품에 꽉 안고 벅차게 차오르는 감정에 행복하기도 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아이의 작은 손과 발을 볼 때면, 마음에서 무언가가 파도치는데 그 파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거친 파도에 내 한 몸 뛰어들어도 두렵지 않을 어떤 강인함이 생긴 것 같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힘의 끝은 알 수 없이 깊고 넓다는 걸 느낀다.


삼칠일이라 아침에 삼신할머니께 빌었다. 드라마 도깨비를 보며, 삼신할머니는 정말 꼭 있다고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해 빌었다. 우리 아이 건강하게 쑥쑥 크게 해 주세요. 우리 아이 사람들에게 예쁨 받게 해 주세요.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할 일 들과 알아봐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을 기록하고 싶어 아이를 재우고 부지런히 핸드폰 속 작은 키보드를 두드려 남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