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 소독기를 중고로 팔려고 당근에 내놨다.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는데, 아기를 보느라 한시간 뒤에 답을 했더니 이미 다른 물건을 샀다는 답이 왔다. 불과 한시간만에 거래가 불발되다니 너무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판매가 되지 않던 물건이라 더 아쉬웠다.
그런데 나의 거래내역을 찬찬히 살펴보니 물건을 올린지 불과 2분만에 거래가 된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중고거래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그다지 없어서 그렇지, 콘서트나 명절날 KTX 티켓처럼 초 단위로 거래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스 신화에는 '카이로스'라는 이름의 신이 있다. 카이로스는 독특하게도 앞머리는 길고 뒷통수는 대머리인데,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앞머리가 길기 때문에 카이로스를 발견하면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일단 카이로스가 지나가버리면 잡을 수 없다. 뒷통수가 대머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이로스의 또다른 이름은 기회의 신이다. 한 번 놓치면 잡을 수 없는 기회라는 속성을 헤어스타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카이로스, 즉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나는 이 말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젖병소독기를 정말이지 팔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팔지 못했던 것은 내가 답하지 못한 한시간 동안에 나만큼이나 젖병소독기를 팔고 싶었던 다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실하다는 것, 어떤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유 콘서트 예매를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해도 어떤 사람은 첫번째 접속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5만번째 접속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첫번째 접속자만큼 5만번째 접속자도 아이유 콘서트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실하다"를 "다른 누군가보다 한 발짝 빠르게"라던가, 또는 "한 번 더 시도하기"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훨씬 납득이 간다. 그러니까 어쩌면 기회를 잡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절실한 마음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해보거나, 한 번 더 시도해보거나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왜 나는 절실히 바라는 게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왠지 그런 게 있어야 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날 계시처럼 절실한 마음을 쏟아부을 대상이 벼락처럼 떨어져내리길 바랐다. 하지만 절실하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한 발짝 빠르게 움직이거나, 한 번 더 시도해보거나, 단지 조그만 행동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다음 번에 거래요청 메시지가 오면 더 빠르게 답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