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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로이 Fitzroy Apr 29. 2023

5월 아이

매년 5월은 엄청 우울했거든. 날씨도 좋고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데 내 인생은 하나도 안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랬나 봐. 5월은 유독 내 기준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은데 마음이 연약할 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받으니 힘들더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5월이 싫은 거야. 그때 처음 죽고 싶다 생각했어. 엄마 기일이랑 내 생일이 같은 날이던 해야.

그해 호주에 갔지. 방황하는 몸을 끌어안고.

그러다 내가 가장 우울해하는 5월에 나를 너무 사랑해 주었던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날도 5월이었어. 2019년에 책 같은 걸 써보겠다고 옛날 사진이랑 편지들을 뒤지며 부지런 떨던 어느 날이야. 나름 충격이었는지 며칠 잠도 안 오더라. 사랑받지 못하는 5월을 늘 힘들게 버티며 지내왔는데 왜 이런 걸 이제껏 잊고 살았을까.

다른 의미로 5월이 힘들기 시작했지. 네가 보고 싶은데 알 길이 없으니까 화나고 눈물 나는 날들이 이어지는 거야. 5월이 되면 이유 없이 널 만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우연히 볼 수 있을까 나가도 보고, 알지? 영락없는 노래 가사잖아 이거.

그렇게 널 궁금해하는 몇 년을 보냈어.

인생에 몇 안 되는 떨리는 순간들이 있는데 네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걸, 너의 존재를 알게 된 그때가 그중 하나다. 작년 9월이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은 못 한 거 같네.

널 찾은 이후 처음으로 맞을 5월이 며칠 안 남았어. 이번 5월엔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좀 서운해 지려고도 하네. 늘 탐정모드로 변신하곤 했었는데.

5월에 사랑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게다가 너의 존재도 알게 됐으니 나는 이제 5월을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는 만나서는 못 할 거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꼭 말하고 싶었어. 너는 부담일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만 말고 소리 내서 불러보고 싶었다. 니 이름.

2023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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