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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Jun 15. 2023

맛있는데 멋도 있는 영화가 고플 땐, 드르와! (2)

영화 쫌 본 언니의 강추 리스트 (3화)

4. [리틀 포레스트]

감독 / 임순례

출연 /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제작연도 / 2018

제작국가 / 한국

러닝타임 / 103분

원작 /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작품


*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사람 *

1. 시골집 마루에서 크램 브륄레를 먹어보고픈 이

2. 힐링 타임이 필요한

3. 배우 김태리 팬

4.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본 이


되는 거 하나 없는 도시생활에 지쳐 '잠시 쉬어가려고' 집에 내려온 혜원. 고향에서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겠다는 재하. 평범한 일상이 싫지만 일탈에도 '서툰' 은숙. 소꿉친구 세 사람은 혜원의 오래된 한옥에서 다시 뭉친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던 공간이 세 친구의 농사와 밥 짓기, 공동식사를 통해 풍요롭고 싱그럽게 변모해 간다. 4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혜원은 배춧국, 꽃파스타, 아카시아 꽃튀김, 오이콩국수, 김치전과 막걸리, 무지개 시루떡, 크램 브륄레 등을 만들고 나눠먹는다. 혜원이 그 모든 요리를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특별한(?) 엄마 덕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그냥 바라만 보길 권한다. 진정한 안구정화를 맛볼 기회니까.

그저 내 한 몸 받쳐줄 소파나 침대가 있고, 따뜻한 커피믹스 한 잔과 에이스 한 통만 있으면 족하다. 나머지는 화면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 작품성을 따진다, 미장센을 논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노려본다? 따위는 잠시 내던진다. 핸드폰 벨소리도 끄고 103분만 그냥 영화를 바라보라. 힐링이 따로 없다.

일단, 임순례 감독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우리네 시골마을의 4계절을 만나본다. 눈빛 흩날리는 겨울날에 대롱대롱 빛나는 주홍빛 곶감들을 만나고, 자연이 베풀어주는 소박한 성찬들을 만나고, 그 성찬을 먹고 사람답게 익어가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러다 운이 좋아 잠들면 아마도 꿈속에서 기막힌 배춧국을 먹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전원일기'나 '인간극장'과는 결이 확실히 달라 보인다. 눈부신 외모의 청춘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 삼아 자급자족 낭만 라이프를 꾸려가는 장면들에서 요즘 유행하는 요리 관련 브이로그 동영상 느낌이 난다. 대단히 깨끗하고 깔끔한 느낌. 그래서 오히려 힐링을 주는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리얼하면 감정의 동요가 커서, 휴식 차 본 영화가 오히려 피로감을 더해줄 수 있으니까.  


아, 또 다른 감상 포인트로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를 추천한다.  

황당하게 딸을 내버리고는 저 살겠다고 가버린 엄마? 무정하고 무책임하다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손가락질받기 딱이다. 가만... 정말 그럴까? 팩트 체크를 해보자. 그는 딸이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늘 딸 곁에 있어주었다. 24시간을 동행하면서 이야기로, 행위로, 감정으로 딸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딸을 믿었다. 딸의 뇌와 가슴에 삶의 지혜와 기술이 이미 새겨져 있음을 알기에, 쉽진 않지만 분명히 잘 살아나갈 것을 믿었다. 그 묵직한 신뢰가 혜원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새 영역을 찾아서 홀로 낯선 곳으로 뛰어든 중년이다. 그의 행복을 혜원도 곧 이해하고 평화에 이를 것이다. 유년기를 벗어난 딸은 자신의 엄마가 행복해 할 때 마음이 평안하기 마련이기에. 아, 물론 '연진이 모친' 같은 별종은 예외로 두고.  


추신 : 이 영화를 통해 임순례 감독에게 호감이 생긴다면, 그의 작품 [우중산책], [와이키키 브라더스], [남쪽으로 튀어]도 만나보길 바람.



5. [밥정] 다큐멘터리

감독 / 박혜령

출연 / 임지호

제작연도 / 2018년

제작국가 / 한국

러닝타임 / 82분


*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사람 *

1. 엄마가 보고픈 이

2. '자연을 재료 삼아 요리한다는 것이 대체 뭐다

냐?' 궁금해할 이

3. 방랑식객을 아는 이

4. 밥을 지어 누군가에게 먹이길 좋아하는 이   


국내보단 해외에서 오히려 그의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자연의 모든 재료를 이용하여 치료할 수 없다면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시골의 무면허 한의사 아버지의 말씀을 붙잡고 자연식 요리를 연구하며 셰프의 길을 걸어온 이. 그러나 유명세나 안락함을 뒤로한 채 전국을 떠도는 이. 임지호 셰프. 그에겐 세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자신을 길러준 양어머니, 낳아준 친어머니, 지리산에서 만난 길 위의 어머니. 어렸을 때 친어머니를 찾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데서 '방랑식객'이 태동되었다. 길에서 만난 어머니와 누이들을 위해 자연식으로 최고의 밥 한 끼를 차려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산에서 만난 어머니의 부음을 접한다. 산골로 달려간 그는 이제 더는 어머니가 안 계신 산골집에서 3일 동안 108 접시의 음식을 장만하는데...


솔직히 털어놓자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어쩜! 저런 재료들로 뚝딱 한 상을 차려내다니?'

라고 감탄하기 시작했다.

'돌멩이 위에 나물반찬이 올라가는데 어쩜 저리 멋이 살아나지? 예술이야, 예술!'

을 지나서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을 어쩜 저리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김순규 할머님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두 눈에 꾹꾹 새겨 넣는 것 같아.'

로 가슴이 아려왔고

'방랑식객의 눈은 어쩜 저리 맑을까? 아니... 간절할까? 아니... 슬플까?'

하면서 코끝이 매워지더니

지리산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텅 빈 산골집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추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부엌을 감내하며 최고의 밥상을 만들어가는 장면에선 그만

'아이구.....'

눈물이 터지고 말았으니.   


하지만 그런 먹먹함을 상쇄시켜 줄, 참 아름다운 푸드아트를 만나는 즐거움이 큰 영화다.

우리네 산길을 걷다가 툭 발에 걸리는 나뭇가지, 손만 내밀면 닿을 꽃잎, 지천에 가득한 잔디와 이끼. 그런 자연들이 순식간에 아름다운 요리로 재탄생하는 현장이 매력적으로 담긴.


그리고 방랑식객이 길 위에서 만난 특별한 어머니, 故 김순규 어르신을 뵙는 건 행운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곱고 따뜻한 눈웃음을 본 적이 없기에.


2021년 6월 12일에 심장마비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 세상과 이별하신 故임지호 님을 기리며, 생전에 그가 남긴 명언 하나를 읊조려 본다.

  10년 동안 일하는 날보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날이 더 많았기에
  나에게 굶주림은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아성찰의 기회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6. [카모메식당]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 코바야시 사토미

제작연도 / 2006년

제작국가 / 일본

러닝타임 / 102분

원작 / 무레 요코의 동명소설


*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사람 *

1. 핀란드 및 북유럽 갬성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조건이야~.

2. 오니기리 혹은 시나몬롤을 좋아하는 이

3. 코바야시 사토미를 아는 이

4. 여성 중심 이야기가 좋은 이


주인공 사치에는 무작정 핀란드 헬싱키로 날아가 '갈매기(카모메) 식당'을 열었다. 일본식 주먹밥을 주메뉴로 하는 작은 식당은 오픈 한 달이 지나도록 손님 한 명 없지만 사치에는 걱정이나 좌절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 큰 키의 일본 여성 미도리가 나타난다. 눈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라서 왔다고 한다. 사치에로부터 힐링받은 미도리는 식당의 일원이 되어 일한다. 그의 제안으로 시나몬롤이 메뉴로 등장하고 덕분에 손님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어딘가 경직돼 보이는, 금방이라도 화를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의 일본 여성이 들어온다. 마사코, 그는 공항에서 가방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데...


우선, 갈매기 식당의 주인장 사치에 자체가 감상 포인트다.

사치에를 처음 봤을 때, 내 머릿속에선 '초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큰 학자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초인(위버멘쉬)'이 만일 21세기에 나타난다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니라 '갈매기식당 사치에'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쬐그만 아줌마를 어디 감히 거기다 갖다 대?' 라며 화를 낼 이도 있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엔 딱이었다! '일본'이란 타이틀을 살짝 빼놓고 봤더니 그랬다. 사람이 참... 멋있는 거다.

중년에 들어설 즈음의 나이에 툭 털고 가방을 싼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낯선 핀란드땅에서 새롭게 살아간다. 조급함 없이, 불안함 없이,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집이라 여기는 듯 아주 느긋하게 식당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누구든 찾아오는 이를 내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 간섭하지 않고, 충고질 따위도 없이.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를 지켜준다. 기존 체제 안에서 따를 것은 편안하게 따르지만, 규범이나 정상의 틀을 언제든 훌쩍 넘어서는 자유를 누린다. 정말 성숙하고 온전한 인간상 아닌가?

내가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게다가, 사치에의 아담한 키-내 키와 같은 156cm-에 친근함까지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치에와 두 여성은 모두 '그냥, 막무가내로' 핀란드를 찾아왔다. 하필... 핀란드? 일본 사람들의 북유럽 사랑은 유별나다고 들었다. 대체 일본 사람들은 왜 그럴까? 북유럽 문화를 선망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북유럽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카모메식당' 자체다. 공간 인테리어와 식기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클 것 같다. 나야 워낙 그쪽으론 문외한이지만, 북유럽 도자기나 실내디자인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눈호강 한 번 야무지게 할 수 있으리라.


감독도 여자, 주인공도 여자, 조연도 여자인 영화.

로맨스도 없고 액션도 없고 깡패도 없고 불륜도 없지만 힝미롭고 재미난 영화.

갓 구워낸 시나몬롤과 갓 내린 아메리카노 향이 진동하는 영화[카모메 식당]!



- 食 영화 리스트는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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