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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Jun 18. 2023

맛있는데 멋도 있는 영화가 고플 땐, 드르와! (3)

영화 쫌 본 언니의 강추 리스트


7. [음식남녀]

감독 / 이안

출연 / 랑웅, 양귀매

제작연도 / 1994년

제작국가 / 대만

러닝타임 / 124분


*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 *

1. 이안 감독을 안다면 일단 드르와!

2. 대만식 정통중국요리가 궁금한 이

3. 요리 잘하는 아버지랑 살아보고픈 이

4. 배달앱은 주로 짜장면 주문할 때 쓰는 이


< 호텔 주방장 출신의 진사부는 오늘도 요리에 진심이다. 아침에 시작해 저녁이 돼서야 완성한 거대한 상차림은 오직 세 딸과 함께 하는 일요 만찬상이다. 그런데 딸들의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감동은커녕 아버지의 음식맛이 변했다는 지적질을 한다. 아버지는 딸들을 위해 살림을 도맡아 하지만 딸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 오히려 옆집의 싱글맘 금영-큰 딸의 친구-이네 가족과 더 가깝게 지낸다. 다시 돌아온 일요 만찬. 막내 가령은 임신했다는 폭탄선언을 던지고 그대로 출가한다. 또다시 돌아온 일요 만찬. 이번엔 첫째딸 가진이 자신이 결혼식을 했다면서 독립해 살겠다며 그대로 출가. 결국 집에는 주 사부와 잦은 갈등을 빚어온 둘째 딸 가천만이 남는데... >


이 영화, 무척 매끈한데 미끄덩거리진 않는다.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중국 전통 요리들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1990년대 대만사회 내 세대갈등과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준다. 인간 행복에 '음식(식욕)'과 '남녀(색욕)'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들인지를 강조하는가 싶더니, 젊은 여성들의 과감한 결혼관과 그에 대응하는 기성세대의 반응이 경쾌하게 톡톡 치고 빠지듯 흐른다. 그 모든 것들을 속도감 있게, 유려하게 버무리는 감독의 실력이 정말 탁월하다. 리스펙!  


정말 손뼉 치게 되는 지점이 또 있다. 이안 감독이 젊은 여성세대를 그려낸 방식이다.

세 딸의 직업을 보자. 안정적 일자리인 교사, 성공을 지향하는 항공사 임원, 미국발 식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 동시대 청춘들이 뛰어드는 직업 유형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상징성은 보통 아들들에게 부여해 왔다. 딸들은 그들 곁에서 보조자로 서 있기 마련이고. 그런데 감독은 그 대표 자리에 과감하게 딸들을 세운다. 그리고 딸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아버지의 지극한 돌봄을 받지만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의존하지 않기에 가능하리라. 2023년의 시선으로 봐도 꽤나 과감한 딸들이다.


이 오래된 영화를 굳이 찾아낸 이유는 순전히 이안(李安, Ang Lee)이라는 이름 두 글자 때문이다. [결혼피로연],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라이프 오브 파이]. 내 가슴에 각기 독특한 향기를 남긴 이 영화들은 모두 이 안 감독의 연출작이다. 요즘 말로, OMG! 하나하나가 대단한 작품인데 이 모두를 한 사람이 감독했다? 도대체 이 감독의 작품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다는 말인지... 이런 연출가의 작품을 놓치고 못 보는 건 큰 실수이리라.   


*짧은 사족

: 후반부에 상상 이상의 반전이 일어난다. 이른바 막장 전개다. 맘 푹 놓고 관람하다가 즐겁게 뒤통수 한 방 맞아보는 경험, 나쁘지 않을 것이다.   



8. [콜렛]

감독 / 라세 할스트롬

출연 / 줄리엣 비노쉬, 조니 뎁

제작연도 / 2000년

제작국가 / 영국

러닝타임 / 121분


*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사람 *

1. 지금 이 순간, 달달한 게 땡기는 이

2. 줄리엣 비노쉬를 애정하는 이

3. 조니 뎁의 리즈 시절을 보고픈 이

4. 변화와 자유, 그 아름다운 조합에 관심 있는 이


< 종교적 소박함과 근엄이 지배하는, 즉 달콤함은 1도 없는 어느 시골동네에 빨간 망토를 입은 모녀가 나타난다. 그들은 익숙한 듯 거침없이, 동네 한복판에 초콜렛 가게를 연다. 엄마인 비앙은 다양한 맛과 모양의 초콜렛을 직접 만들고, 각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초콜렛이 다르다며 손님 맞춤형 초콜렛을 건네준다. 친절과 따뜻한 환대까지 더하니, 처음엔 낯설어하고 수군대던 사람들도 점차 비앙의 가게로 모여든다. 마을에 활력과 웃음이 생겨난다. 남편한테 무자비하게 구타당해 온 조세핀은 아예 비앙의 가게로 들어가 산다. 한편, 마을 강가로 일단의 집시 무리가 들어오고 자유롭고 잘 생긴 집시 루와 비앙은 서로에게 끌린다. 마을의 독재자인 레너드 시장은 비앙과 초콜렛 가게, 집시 무리까지 미워하면서 그들을 깡그리 내쫓을 궁리를 하는데... >


한 번 봐도 기분 좋고, 여러 번 봐도 기분 좋은 영화다.

일단, 주름살 맺힌 지금도 아름답지만 젊은 시절에도 아름다운 줄리엣 비노쉬가 손짓하고 있지 않나? 들어오라고, 비앙의 쵸콜렛 월드로 들어오라고. 그는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와 사랑으로 이끌어내는 유혹자다. 삶의 본질을 보고 누리게 돕는 지혜자이다.

물론 기존 질서와 관습은 비앙 모녀를 차별하고 냉대해 왔다. 무수히 거절당하고 상처받았음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오히려 비앙이 사람들을 치유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인생의 진짜 달콤함 말이야!' 하는 그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멋진 대사들을 곱씹는 맛도 참 좋다.

딸 아눅이 동네 아이들에게 '사탄의 조력자들'이라고 비난받고 왕따를 당하자 비앙은 이렇게 말해준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단다."


조세핀의 남편이 찾아온 장면에도 있다. 폭력남편이 "우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어진 부부야!"라고 떠들자 조세핀이 답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장님인 게 분명해"


후반부에 비앙이 실의에 잠겨 마을을 떠나려 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읊조린다 "변한 건 없어."라고.

그러자 조세핀이 말한다.

"나한테는 아니에요"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초콜렛 자체가 주는 달콤함이다!  

화면을 채우는 초콜렛의 향연에 후각이 움찔거릴 정도다. 치명적 달달함이 넘쳐난다. 얼마나? 꼴통 레너드 시장이 분노의 스매싱으로 초콜렛들을 깨부수다가 우연히 혀 끝에 닿은 조각을 맛보고는 초콜렛에 빠져서 밤새 퍼먹다가 쇼윈도 안에서 잠들 정도로.  


아,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조세핀이 비앙을 만나 변해가는, 아니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9. [완벽한 도미 요리]

감독 / 나홍진

출연 / 배용근

제작연도 / 2005년

제작국가 / 한국

러닝타임 / 10분

장르 / 스릴러공포 또는 블랙코미디 혹은 잔혹동화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 *

1. 색다른 질감의 영화를 보고픈 이

2. 영화 [곡성] 팬

3. 한국 단편영화에 관심 있는 이

4. 깍두기용 무를 썰 때, 길쭉한 자 대고 자르는 이.

 

< 실험실 같은 비주얼의 주방. 등이 고단해 보이는 요리사가 엎드려 자고 있다. 이때 종이 울리고 주문서 하나가 들어온다. 메뉴는 '완벽한 도미 요리'. 그는 온갖 도구를 쓰고 정성을 다해 요리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더 매진한다, '완벽한 요리를 위해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지켜보라'는 듯. 급기야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면서까지 완벽에 집착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는 흰 수염 날리며 완성작을 손님에게 가져가는데... >


이 영화를 食 관련 리스트에 넣기까지 고민이 좀 있었다.

음식을 테마로 한 것 같지만 음식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을 포함해 창작에 매몰되어 사는 창작자들을 영화 속 요리사에 빗댄 것으로 보인다. 그다지 재능이 없어 보이는데도 완벽한 도미요리에 집착해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어가는 요리사 말이다.

감독은 이 영화처럼 자신도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려다 늙어 죽는 건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단편영화란 뜻일 게다. 그만큼 '나홍진스러운' 영화일 것이고, 그만큼 섬뜩하고 무서울 수 있다.


그럼에도 [완벽한 도미 요리]를 추천한다.  

일단,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화면 자체가 세련된 동시에 그로테스크하다.


그리고 단편영화의 특별함이랄까 묘미랄까? 8분(엔딩크레딧 제외)밖에 안 되는 짧은 영화인데도 러닝타임 120분짜리 영화 못지않은 해석 거리와 논쟁 거리를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추격자]와 [곡성]의 감독이 단편영화는 어떻게 요리했었을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서다.

아, 사운드에 정성을 많이 기울인 티가 난다. 소리에 집중해서 보길 제안한다.


참, 이 영화... 食을 제목에 넣고 영화 내내 식당 주방이 공간적 배경임에도 식사 장면은 나오질 않는다. 그저 요리를 했다가 버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3회에 걸쳐 소개한 아홉 편의 영화 외에도 볼만한 食 관련 영화는 많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푸드트럭 신화의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셰프 로이 최(Roy Choi)의 이야기를 완전히 미국스런 입맛과 요리로 재탄생시킨 즐거운 영화 [아메리칸 셰프].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법을 따라한 뉴욕 블로거 줄리의 이야기 [줄리 &줄리아].

도쿄 번화가 뒷골목,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며 손님들의 인생 허기를 달래주는 [심야식당].

태국의 스타 셰프들의 럭셔리 요리 전쟁을 다룬 [헝거] 등등.

다만 그 작품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을 따름이다.


요즘 우리 극단 배우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일단 건강만 합시다, 건강해야 예술도 합니다!"이다. 그래서 연습 후 뒤풀이는 최대한 건강에 이로운 먹거리가 나오는 곳에서, 술 대신에 되도록 차나 건강음료로 대체하는 중이다.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은 우리 배우들을 생각하면, 뒤풀이의 낭만쯤 내려놓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잘 먹기 위해 건강을 챙긴다. 어떤 이들은 건강을 위해 잘 먹는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수다 떨며 나눠먹을 수 있길 바란다.   

영국의 역사가였던 토마스 칼라일의 명언 한 구절을 읽으며, 맛있고 멋도 있는 영화 소개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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