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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D May 19. 2016

여행 마지막날의 기록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나와 S는 샌프란에서의 여행을 계획했다. 전날 다들 H의 집에서 늦은 밤까지 마신 뒤였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정오가 채 지나지 않은 적당한 시점에 채비를 마칠 수 있었다. 연구실의 다른 동료들은 전날에는 우리의 일정에 같이 끼고 싶은 눈치였지만 피곤했는지 어쩐지 연락이 없어 그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필즈커피에서 모히또를 한잔 사들고 샌프란으로 향하는 트레인에 올랐다. 평소와 달리 재즈나 성시경식 발라드가 어울릴 것 같아 선곡하고, 창밖을 보고 있으니 감개함이 찾아왔다. 앞으로 이 선곡 리스트는 이 순간의 화석으로 박제되리라.
날씨는 샌프란의 여느 날씨를 떠올리면 흐린 편이었으나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습기가 없고 따뜻했으며 공기는 청명했다. 멀리 있는 간판까지 깨끗하게 보여서 시력이 좋아진 착각이 들었다.
점심은 JH의 추천으로 naked lunch에서 먹기로 했다. 나는 프라이드치킨 버거를, S는 그릴드 포크밸리버거를, 그리고 우리 둘 다 IPA를 주문했다.
치킨버거는 짭조름하고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이 포슬포슬하고 갓구운 맛이 많이 나는 번 사이에서 균형 잡힌 맛을 냈고, 그릴드 포크밸리는 데리야키 소스로 양념한 고기 샌드위치였는데 아이올리소스가 촉촉하게 빵을 적셔서 부드럽고 고기의 묵직함을 민트잎이 산뜻하게 덮어주는 맛이어서 나는 집에 가면 민트 화분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햇살좋은 낮에 파티오에서 맛있는 맥주와 버거는 무력감 치료제로 더할 나위 없었다.
예약해 둔 Pier39 근처의 자전거 샵으로 가는길에 우리는 귀여운 소품샵, 덜 조잡한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 사탕과 누가 가게들을 구경했다. 몇 군데의 매력적인 가게에서 파는 리본 모양의 핀이나 SF로고가 박힌 뱃지, 유니콘이 그려진 컵케잌 종이, 각종 파티 용품, 금테가 둘러진 민트색 열쇠 접시는 구매욕을 자극했다. 그 중 한 가게에서 우리는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구매했다. 나는 깜찍한 sex 복권수첩을 발견하고 연구실 W와 어울릴 것 같아 살 수밖에 없었고, 나를 위해 'DRINK'가 양각으로 새겨진 도자기 문패를 구입했다. S역시 W를 위한 손세정제와 캔디를, 그녀의 다른 친구를 위한 향 비누를 두어개 포장했다.
자전거를 빌린 우리는 곧장 금문교를 향해 내달렸다. 시원한 바닷바람, 연녹색 잔디밭, 조깅하는 사람들, 항구, 정박한 배들은 분지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던 나에겐 너무나도 생경한 장면이어서 나는 계속해서 비디오로 찍었다. 바다는 지중해의 보석빛깔보다는 조금은 어두웠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깨끗한 소금 냄새가 났다.
금문교의 붉은 철제다리를 지나면 연두색 잔디밭 사이에 붉은 지붕에 흰 벽을 가진 낮은 집들이 드러났고, 이내 소살리토에 당도했다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독일 마을 같기도 했고 시력 측정 기구 너머에 보이던 붉은 집 같기도 한 풍경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펼쳐졌다.
소살리토에 도착했을때는 6시가 지나 샵들은 거의 문닫을 채비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몇 군데 가게에 가까스로 들러 기념품을 잠시 구경하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물고 곧바로 pier39로 돌아오는 페리를 탔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다분히 미국적인 맛이어서, 끈적거리듯이 달고 인공향이 많이 나는 아이스크림이 묵직하고 달디단 쿠키 사이에 넘칠만큼 끼워져있었다.
Pier39에서 Y를 만나 맥주를 한잔 할 계획이었다. 그가 오는 동안 나와 S는 항구 근처의 한 크랩집에서 크랩찜 요리와 크랩살이 들어간 엔칠라다를 주문했다. 요리는 조금 짰지만 게 향이 가득했고 샌프란바다를 그대로 감각할 수 있는 맛이었다. 조금 소란스러웠고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이 많아서 로컬 맛집이라기 보다는 관광지 특수로 유명해진 느낌이었지만  관광자 신분으로서의 마지막 디너를 고대했던 우리에게는 적당히 만족스러웠다.
Y가 도착하여 우리는 근처의  한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금이어서인지 밤이 늦었음에도 거리는 환하고 클러버들로 북적거렸다. 산호세의 이국적인 느낌과는 또 다른 명랑함이였다. 평소 맥주를 즐기지 않는 나지만 기분탓인지 감칠맛이 많이 나고 홉 향이 좋아서 자꾸 자꾸 마셨다.
산호세 숙소로 돌아올 때는 차가 모두 끊긴 시간이어서 우버를 불렀다. 클러빙을 마치고 귀가하는 듯한 언니들 두명이 동승했는데 한껏 업되있던지 계속 우리들보고 말을 걸며 너네도 이제 캘리포니아 걸이라고 농을 했다.
귀국할 짐을 싸고 이것 저것 준비할 게 많았는데 도착해서는 너무 피곤해서 씻자 마자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날 최악의 사건의 전초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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