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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ics / Dynamics

by soripza

Statics

오늘 오전 치러진 Computational Material Design 구두시험 후에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시간도 많이 투자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결과가 만족할 만큼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험은 두 명의 교수가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혹은 설명을 곁들이는) 말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영어를 중간중간 잘 못 알아들었고, 때문에 맥락을 잘 짚지 못해 교수가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이 길어졌고, 때문에 30분의 제한 시간 동안 문제를 많이 풀지 못했다. (대략 전체 진도의 60~70%..?) 물론 받은 점수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은 점이,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 과목에 대한 지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영어실력 문제임을 알았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 집으로 오는 동안 많이 생각이 지나갔다. 영어도 독일어도 고만고만한 지금 상태에서,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장차 내가 직업을 구하고, 날 지켜주는 울타리가 없을(아마도) 회사와 사회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한국에 있을 때에도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불이익에 대해 금방금방 대들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까지 잘 안 통하는 이곳에선 어떨는지. 집에 도착해서는 샤워 후에 가족과 통화를 했고,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면서, 어쩌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난 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닐는지에 대해 말했다.


Dynamics

시험 중 언급된 것 중 하나는, 어떤 물질이 안정한 상태에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였다. 나는 그것이 thermodynamics에 관련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엔탈피를 이용해야 했고, 격자를 이루는 물질의 혼합물의 엔탈피에서 각 순물질이 엔탈피를 뺀 값이 0보다 작다면 그 결정은 안정하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Statics

회사에 다닐 때 했던 일 중에 하나는, ANSYS라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정역학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정역학(Statics)은 정지해 있는 물체(평형을 이루고 있는)에 대한 것을 다루는 것이고, 시간에 대한 변화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시뮬레이션을 할 때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에서 시간은 흐르고,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달라진다.


Dynamics

가족과의 통화가 끝난 후엔 Berk와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로 나눴다. 나는 내 영어실력에 대한 푸념을 했고, 그는 당연히 언어는 빠른 시간에 늘 수 없다고 위로해 줬다. (you can learn a language only so fast) 지난주부터 Berk는 여자친구인 kate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아크로바틱 요가를 세션을 다니고 있었고, 그것이 오늘 오후 3시 반에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모임에서 그는 첫 수업 때 짝을 이뤄 한 동작을 나에게 보여줬다. 서로를 신뢰하며 몸을 버텨야 하는, 일 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루어진 동작들은 꽤나 멋있었다. Berk와 Kate가 요가 수업을 끝낸 후에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Statics

나는 내가 꽤 정적인/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한 번 정하면, 그것을 되도록이면 유지하거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나아가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성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지인이 '난 이럴 거야'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다시 물어보았을 때 '이럴'대신 '저럴'거야라고 말하면, 그 변동성에 대해 절반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절반은 그 선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Dynamics

전자기학에서 자기장은 전류가 변화해야 생긴다. 정전기(electrostatic)으로는 자기(magetic)을 만들 수 없다. 전기의 변화는 자기를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변화도 전기를 유도한다. 이것이 맥스웰의 방정식 중 세 번째, 네 번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Statics

Berk가 아크로바틱 요가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 가서 월요일에 있을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이 진작에 끝난 사람들이 많은지, 도서관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벽 쪽에 붙어있는 2인용 좌석을 차지한 채, 다른 책상에 가방을 올려 둔 채 수업자료를 읽다가, 시간이 조금 아까움을 느끼고 유튜브에서 해당 과목을 한국어로 설명한 영상을 찾아서 보았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미동도 않고 천천히, 한국어로 설명하는 트랜지스터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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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k와 Kate를 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만났고, 카페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간쯤 지난 후, Kate는 식료품 가게가 문을 닫기 전에 장을 봐야 해서 마트로 갔고, 나와 Berk만 저녁을 먹으러 그가 자주 가던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늘상 팔던 Bluscheeseburger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에 Berk는 조금 실망했지만, 이내 다른 메뉴를 시켰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험 이야기도 당연히 포함됐고, 이윽고 나의 영어실력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Everything changes) 변한다는 사실 만이 변하지 않는다. (change is the only thing that doen't change)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잘 흔들리고 변하는 사람이다. 오늘 시험만 해도 그렇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을 잔뜩 했다. 어쩌면 dynamics가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시간에 대한 함수다. 그렇다고 statics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부터 dynamics를 이끌어낸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도서관에만 앉아있지 않고, 친구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서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삼 년 전의 나는 내가 영어나 독일어로 구두시험을 보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일들이다. 앞으로의 시간도 남아있다. 석사까지 일 년, 박사도 만약에 한다면 사 년의 시간을 더 여기서 보낼 것이다. 그만큼 또 나는 달라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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