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 :
<독립시대> - 가장 어려운 각본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양은 단연컨대 내가 알고있는 감독중에서 이것을 가장 잘하는 감독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한편 나는 언제쯤 대만에 가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영화가 찍힌 시점은 대만의 부흥기가 정점에 다다를 때였고, 등장인물들은 영어로 된 이름들, 예컨대 '몰리' '버디' 그리고 '래리'로 서로를 부른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벗어날 탈> - 기대를 너무 하고 봐서 오히려 아쉬웠던 영화. 혹은 내가 아직 불교의 가르침을 깨닫기에는 부족하고, 요 근래에는 너무 오랫동안 아시아대륙을 벗어나 있었다고 생각했다.
루프트한자 기내식으로는 이제 유럽식 파스타 대신 태국식 카레가 나온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카라타 에리카를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봤다. 연기력은 확실히 더 좋아진 것 같다.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는 미학적인 혹은 영화 역사적인 의미는 없었다.
집에 도착 한 후 :
치킨은 (거의) 언제나 맛있다. 파닭은 더 맛있다.
<외계+인 2부> - 1부를 봐버려서 2부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1부보다 더 형편없었다.
엄마가 새로운 요리를 개발(혹은 어딘가에서 보신 듯 하다.)했다. 길고 얇게 썬 소고기로 배추가 당근 따위를 속에 넣고 돌돌말아 물로 쪄가면서 먹는 반半샤브샤브였다. 배부른 식사를 했다.
<유량지구> - 외계+인 2부와 비슷했다. <삼체>를 기대했으나 돌아온건 얄팍한 신파가 섞인 허접한 SF였다.
서울을 돌아다니며 :
<와일드 투어> - 유럽에서나 접할 수 있을 만한 느낌이 드는 실험적 영화라고 느껴졌다. 가끔씩 진짜 삶과 영화를 결합시키려고 시도하는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 예술 자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영화는 시작해야될 지점에서 시작되고, 끝나야할 지점에서 적절하게 끝난다.
<콘클라베> - 후보들이 이미 모인 시점부터 어느정도 영화의 끝이 어떻게 될지 보이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벗어날 탈>과 비슷하게 이곳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감독이 어쩌면 다음에 교황이 될지도 모르는 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일까라고도 생각했다.
을지로 근처에서 맛이 좋다는 돈가스 집에 가서 히레까스 정식을 먹었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양배추는 바삭했다.
금호역 근처의 술집에서 차돌두부조림을 먹었다. 다음에 다시 가보고 싶은 술집이다.
<브루탈리스트> - 처음엔 건축가가 자신의 건물을 어떻게 완성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일줄 알았으나, 영화가 끝나고 돌이켜보니 영화의 구조가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훌륭한 교향곡 한 곡을 들은 느낌이기도 했다. 이동진 평론가가 유투브에서 아카데미시상식에 대해 코멘트를 했을 때 이 영화가 음향상을 받아야된다고 주장했는데,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이미 영화가 시작될 때 'Overtune'이라는 말이 나올 때 부터 약간은 노골적으로 그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만약 칸딘스키가 미술 대신 영화 찍는 일을 했다면 클래식으로 남았을 작품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인 라즐로도 마침 칸딘스키가 교수로 있었던 바우하우스 출신이라는 설정도 있었다. 음악은 영화를 따라 흐르고, 영화의 구조(Structure)도 마치 제목인 Brutalist의 건축사조 버전인 Brutalism처럼 서서히 맞아 떨어져간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지면서 사람들은 우아함을 감추고 잔혹성을 드러낸다. 결국 나는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라즐로가 '강간당한 나라'에서 자신이 그 나라를 '건축적으로 강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아직까지 의문에 남는 것은 라즐로의 조카 캐릭터다. 그녀는 왜 말을 하지 않았다가, 다른 배우로 나왔다가 종단에는 (1980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에필로그) 마치 대역까지 쓴다. 인터미션 조차 영화의 일부이고, 계속해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감독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영상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년 베를린날레에서 본 <아키텍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이 '콘크리트'라는 재료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 어쩌면 이 영화도 그 '콘크리트'라는 물질과 그 물질의 속성을 건축가의 인생에 깊숙히 새김으로써 그 잔혹성을 드러내고 싶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올해에 작품에 속하는 것이 이미 결정나버렸다.
꼼장어의 맛이 궁금해서 친구들과 만나 양재에서 그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상상처럼 쫄깃하지도 그렇다고 맛이 있지도 않았다. 나는 해물타입이 아니란 것을 또 한번 확인했다. 소갈비살은 맛있었고, 2차로 간 술집에서는 얆은 삼겹살 부위로 만든 육전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