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데 힘들어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의 곤란함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면 취준생, 백수 등...
늘 그렇듯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잊고 살아간다.
필요한 어느 순간을 제외하고는
나 또한 마찬가지기에
그들의 타박할 처지가 아닌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가.
내가 약자인 그 순간에는
사람은 부당함에 대해 참 재빠르게 인지한다.
'니들도 그랬으면서 참 야박하게 군다
너무하네..'
차별과 편견과 비교가 만연한
이 사회에 괜스레 한 번 더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직업이라는 것은
참 편리한 사회적 수식어이다.
구태여 여러 문장을 덧붙이지 않아도 나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직업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은 반전이라며 놀라고
비슷하다면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며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참 편리한 수단이다.
여러 번의 퇴사.
계속 바뀌는 직업.
그 횟수에 비해 아직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는
쉴 수가 없다.
불안해서.
하루의 잠깐뿐인 공백시간을 여유로이 즐길 처지가 못 된다는 것도 알고.
항상 스스로를 재촉하는 성미 급한 성격이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어떤 직업을, 어떤 일을 해야 헤아릴 수 없는 열정을 마음 편히 쏟아낼까 고민한다.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가 늘어난다는 것.
그래, 그 수식어는 다양한 것이 될 수 있다
취미도, 취향도
그 사람만이 가진 분위기도
뭐- 그 사람만이 유난히 즐겨하는 행위라던가
물건 따위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성을 꽤나 그럴듯하게 꾸며 낼 수 있는 것들이다.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설명되는 사람이고 싶다
그걸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하던가
사실 그런 건 모르겠고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낙천적임으로 주제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 따위가 아닌,
내가 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즈음
진짜로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리숙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려 애써보기도 하고
어떤 것을 흉내 내며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지만-
그저 껍데기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참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매일 질문을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게 왜 좋은지,
한순간의 감정적으로 이끌린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다른 이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될수록.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 낼 단어가 없다는 게
그 수식어가 없다는 게
이 사회에 속하지 못한 부적응자 같은 기분이라.
그것은 썩 유쾌하지 않아
이렇게 오늘도 나는 아등바등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그들과 섞이고 싶어서
나의 수식어를 찾아 헤맨다.
아마
오늘도.
내일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