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
나보다 더 소중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봄날 우연히 시작되어 뜨겁게 타올랐던 우리의 마음은, 그 해 가을 결실을 맺었고, 나는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길 바랬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했던 것일까,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을 사랑했던 것일까.
어느 순간 나는, 사랑 그 자체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더 간절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내 눈과 판단을 흐렸는지도 모른다.
우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사랑으로 시작했던 내 마음은 집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불명예 제대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나는 내 진심 어린 마음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하찮게 취급 당하고 버려졌다는 사실에 슬프고 화가 났다.
괴로워하는 나를 위로하는 누군가 ‘진주조개가 진주를 품으려면 모래가 살 속에 박히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묘 위로했다.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다시 오게 될 거라며.
그 따위 진주, 너나 많이 품어라! 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치받았지만, ‘친절하고 착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는 수식어에 길들여진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웃음짓는 것 뿐이었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던 고통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그 고통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였다.
내 모든 사랑과 고통이 뒤섞인 한국을 뒤로 하고 무작정 가방 하나에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이유.
주변의 모든 이야기와 시선과 추억이 나를 괴롭히는 이 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몇 개월이 될 지, 몇 년이 될지도 모를 인고의 시간을 실컷 슬퍼할 수도 없는 곳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줄 알았다.
다시는 내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저앉자 비로소 하늘이 보였다.
그렇게, 잃는 순간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왜 이탈리아여야 했을까?
200여 개의 뼈마디 전부가 시린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내 마음은 왜 이탈리아를 향하고 있었을까?
이탈리아에서 3년 간 공부하다가 귀국한 뒤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익숙함만이 이유였다면 오히려 길을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훨씬 본능적인 이유에서였다.
뜨거워진 공기가 밖으로 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그 자리를 메우듯, 원래 차 있었던 공간이 비게 되면 그 곳을 채울 그 무언가를 찾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나를 던졌다.
<이제 다시 시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