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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s Feb 06. 2016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소설의 시작은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팔 년 만에 걸려온 그의 전화는 ‘나’로 하여금 그 간의 공백,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가 전화를 건 것은, 윤 교수님이 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윤 교수는 그와 윤이 보낸 대학시절을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체이며, 더 나아가 그들의 어지러운 청춘시절의 정신적 지주이자 버팀목이 되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윤 교수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윤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하는 그의 말에 윤은 고개를 젓는다. 이 둘에게 지난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남기며 소설은 윤의 스물 한 살 시절로 돌아간다.



 은 대학 첫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낯선 곳에서의 대학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집에 내려와 아버지와 1년가량을 보내게 된다. 윤은 도시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결코 친구를 사귀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늘 혼자가 좋은 사람처럼, 혼자 낯선 도시를 걷고, 혼자 검은 도화지를 붙인 방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냈다. 자신을 아픈 당신에게서 떨어뜨려 놓고 싶어 했던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일까.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일까.


 기억에 남는 것은 윤과 미루, 명서가 처음 만난 장면이다. 꽃무늬 플레어치마와 어울리지 않는 쭈글쭈글한 미루의 손, 윤 교수는 미루가 그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강의를 청강해도 좋다는 말을 한다. 이 후, 명서와 윤이 다시금 만나게 된 것은 뜻밖에도 길거리였다. 시위가 일어난 뒤의 황폐화되고 엉망이 된 길거리에서 명서는 윤의 뒷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윤은 명서를 보자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신발과 가방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상처가 난 윤을 등에 업고 명서는 윤의 가방을 찾아주고 미루에게 연락해 신발도 구해다준다. 미루는 자신의 언니의 신발을 윤에게 가져다주고, 셋은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 미루는 참으로 아픈 캐릭터이다. 상처가 너무 많아 얼굴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아이. 너무나도 사랑하고 동경하던 언니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바뀐 그녀는, 하루를 살아냈다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먹은 음식물을 노트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갑자기 사라진 언니의 그 남자를 찾아 길거리를 헤맨다.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서와 윤은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고, 윤과 미루 또한 더욱 더 특별한 관계가 된다. 미루가 윤에게 자신의 아픔을 모두 말했기 때문이다. 명서와 윤은 그런 미루를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윤을 사랑하는 이 이 도시로 찾아왔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윤을 보고 가기 위해 들른 그와 함께, 이전에 미루가 살던 빈집에 가서 다 같이 즐거운 날을 보낸다. 단은 이후에 편지로 이 때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고 말한다.


 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단 또한 낯선 도시로 대학을 갔고, 그 곳에서 하루하루 다를 게 없는 현실과 마주치며 내적인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끝없는 시위, 친구였던 전경들과의 대치. 이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어 선택한 군대에서조차 그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폭력의 굴레에서 희생당해 부상을 입고, 특전사 부대에서 해안 야전부대로 파견을 가게 된다. 단이의 심리 상태는 단이가 윤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윤이를 사랑하는 마음 뿐 아니라, 윤이만이 단이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말들. 윤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이는 윤이에게 기대고 또 그녀를 원한다. 이런 단이가 군대에서 의문의 총격사로 죽게 되자. 윤은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된다. 단의 죽음을 안 뒤에도 단이에게 경복궁에 언제 한번 같이 가자고 편지를 쓰는 부분이나, 명서에게 단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사이 미루가 사라진다. 명서와 윤은 미루를 애타게 찾지만, 그들이 듣게 된 것은 미루의 죽음이었다. 미루는 그동안 외할머니의 집에 에밀리와 함께 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이를 잃은 윤. 미루를 잃은 명서. 이 둘은 서로 소중한 친구를 잃고서 마주하게 된다. 고통 속에서 죽어간 친구들로 인해 이 둘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외할머니 집에 있던 미루의 노트를 들고 와 윤 교수의 책장에 끼워 놓는다. 34살 이전에 요절한 천재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장에 미루의 노트를 넣어두고, 그 둘은 윤 교수를 만나러 간다. 윤 교수는 그들에게 소중했던 여자를 잃은 자신의 경험과 함께 조언을 해준다.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 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퍼하고 절망하되, 자신을 해치지는 말라는 윤 교수의 조언. 힘든 일이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 교수의 말은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아프다는 말에 쉽게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누군가를 가슴 속에서 잊는 것도 충분히 아픈 일인데,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잃는 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좀 더 신경써주지 못했을까.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과 후회가 반드시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 소설 속 윤과 명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여러 번 잃게 된다. 이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을 겪게 되고, 이 아픔들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못해 계속해서 찾게 된다.


 하지만, 명서는 알게 된다. 누군가를 잃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더욱 구속하고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 순간 사랑이 흉측하게 변해버리고 말 것이란 것을. 명서와 윤은 그렇게 힘겹게 서로를 놓게 된다.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윤 교수의 병원에 가는 것을 윤을 망설이게 된다. 가게 되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윤 교수의 죽음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전화에 윤은 병원으로 향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윤 교수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련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손가락으로 써준 말은, 요약하자면,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 자신은 갈 때가 돼서 갈 뿐이며, 별은 죽어서도 하늘에 떠 있으니, 그대들은 별이 되어달라는 말.


 윤 교수는 곧 모두의 곁을 떠나게 되고, 윤과 명서 또한 다시금 헤어지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명서가 자신에게 줬던 갈색노트를 펴보던 윤은, 노트의 커버 안쪽에 쓰인, 언.젠.가. 언.젠.가.는.정.윤.과.함.께.늙.고.싶.다. 는 글귀를 발견하게 된다. 벅차오르는 감정. 윤은 그 아래에. 내.가.그.쪽.으.로.갈.게. 라고 써넣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소설은 끝이 난다.



에필로그 중 강연에 선 윤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이십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말에 윤은 이렇게 대답한다.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오늘을 잊지 말자. 우리가 보낸 이 순간을 기억하자. 하는 사람을 만나고, 또 언제든 내가 그쪽으로 갈게. 네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가 너한테 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 빛나는 눈동자와 뜨거운 숨을 가진 사람과 지고지순한 사랑이 하고 싶어지는 말이었다.


이 소설은 신경숙 작가가 청춘에게 보내는 청춘소설이라고 한다.

청춘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지금 이 청춘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혼자라는 벽에 갇히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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